<내일시론>권노갑과 유금필 장군의 경우 (최영희 2001.11.19)
최영희 발행인
어젯밤 TV드라마 『태조왕건』에서, 병부령 최응은 태조 왕건에게 이렇게 고언한다.
“저들이 하나를 원할 때 열을 주십시오”라고.
고려 태조 왕건이 있기까지 세 명의 의제 신숭겸, 유금필, 박술희의 공로야 그 크기와
양을 표현할 말이 없지만 유금필이 자신의 공과 왕건의 신뢰를 바탕으로 도가 지나치
자 왕건의 동생과 신료들이 삭탈관직을 건의한 것이다.
서경에서 황제를 대신해 만세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자격이 있다고 유금필을 감싸던
왕건을 최응은 그 한마디로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왕건이 삼한을 통일하고 탄탄대로를 가는 길 요소요소엔 꼭 있어야할 인물들이 지키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금필의 면전에서도 삭탈관직을 주장하는 신료들, 일이
이리된 것은 유금필 장군의 잘못이 아니라 폐하의 죄라고 직언하는 최응, “신하가 주
인의 자리를 더럽혔으니 더 할말이 없다”는 유금필. 그래서 왕건은 유금필을 삭탈관
직뿐만 아니라 유배까지 보내는 결단을 내린다.
왕건 실세 유금필 유배, DJ 실세 권노갑의 외유거부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권노갑 전 의원의
발언이 불길한 느낌으로 남는 것은 왜일까.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내 정치, 대통령후
보 경선 등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데, 권 씨는 평소 해오던 일을 계속 할 것이
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그가 ‘해오던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말이 많
았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는 “당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겠다
면 도와주고 더 큰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준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런데 그 ‘누가’가 문제이다. 하고 싶은 사람과 해야할 사람에 대한 구별이 별로 없
었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특히 인사문제엔 그의 입김이 가장 큰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유능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국민의 정부 인사는 국민의 불
만을 사고, 권 씨 자신이 각종 비리 의혹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하가 그 주인의 자리를 더렵혔다”는 실세 유금필 장군과 같은 비판을 받은 셈이
다.
공식 직함 없이도 실세라는 꼬리표가 계속 붙어 다니고, 그가 있는 곳엔 기자들이 들
끓고, 다음 대권을 쥐겠다는 사람들도 그의 말 한마디에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
권심’을 ‘김심’으로 느끼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권심을 물러나게 하라는 주장
이 민주당 내부에서 쏟아졌으니 그가 ‘해오던 일’이 분명히 당에 도움이 되고 박수
받을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과거에도 시중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실세들의 행적은 그들이 아직 실세인 이상 그 근
거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절대 떠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
이 가고 권력 누수가 생기면서 사실로 드러난 경우가 많았다.
설만 분분하지 근거가 나온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지 여론 조사에서 권노갑 전 의
원은 각종 비리의 의혹을 받아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었으므로 외유 등 스스로 물러나
라는 의견이 68.7%나 되었다. 비리나 권력남용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외유 등을 요구
할 수 없다는 의견은 18.3%였을 뿐이다.
신숭겸같은 충신은 오늘날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것
권 씨는 “내게 신숭겸이 되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가 죽을죄를 진 것처럼 몰아대는
데 이렇게는 못나간다.”라고 했다 한다.
그러나 그가 신숭겸이 되고자 했다해도 이미 그 기회는 지나가 버렸다. 물론 필자는
본란을 통해 신숭겸처럼 되라는 것이 아니라 “신숭겸처럼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
닌데 동지라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말고 말없이 떠나라”고 고언한 적이 있다.
신숭겸은 아무나 될 수 없다.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을 때 고려의
운명은 그냥 그렇게 끝나고 말 수도 있었으나 신숭겸의 충절로 고려를 이어가게 했다.
왕건은 지묘사를 창건해 그의 명복을 빌어주었으며, 오늘에도 그 같은 장수를 갖고
있던 왕건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세를 누가 만들어주나? 사랑하는 유금필을 유배보내라는 건의를 받고 진노한 왕건에
게 책사 최응은 물러서지 않고 지적한다. 바로 전하의 죄라고. 우리 청와대엔 지금 책
사 최응이 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민주당 총재직 사퇴가 열을 준 것이라 생각하겠지
만 지금 국민들은 어젯밤 왕건의 마지막 장면을 기대할 것 같다.
“유금필을 삭탈관직하고 유배 보내도록 하라.” 태조 왕건의 준엄한 고함소리가 천년
이 훨씬 지난 지금 국민을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제일 수도 있다.
최영희 발행인내일시론>
최영희 발행인
어젯밤 TV드라마 『태조왕건』에서, 병부령 최응은 태조 왕건에게 이렇게 고언한다.
“저들이 하나를 원할 때 열을 주십시오”라고.
고려 태조 왕건이 있기까지 세 명의 의제 신숭겸, 유금필, 박술희의 공로야 그 크기와
양을 표현할 말이 없지만 유금필이 자신의 공과 왕건의 신뢰를 바탕으로 도가 지나치
자 왕건의 동생과 신료들이 삭탈관직을 건의한 것이다.
서경에서 황제를 대신해 만세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 자격이 있다고 유금필을 감싸던
왕건을 최응은 그 한마디로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왕건이 삼한을 통일하고 탄탄대로를 가는 길 요소요소엔 꼭 있어야할 인물들이 지키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금필의 면전에서도 삭탈관직을 주장하는 신료들, 일이
이리된 것은 유금필 장군의 잘못이 아니라 폐하의 죄라고 직언하는 최응, “신하가 주
인의 자리를 더럽혔으니 더 할말이 없다”는 유금필. 그래서 왕건은 유금필을 삭탈관
직뿐만 아니라 유배까지 보내는 결단을 내린다.
왕건 실세 유금필 유배, DJ 실세 권노갑의 외유거부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권노갑 전 의원의
발언이 불길한 느낌으로 남는 것은 왜일까.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내 정치, 대통령후
보 경선 등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데, 권 씨는 평소 해오던 일을 계속 할 것이
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그가 ‘해오던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말이 많
았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는 “당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겠다
면 도와주고 더 큰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준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런데 그 ‘누가’가 문제이다. 하고 싶은 사람과 해야할 사람에 대한 구별이 별로 없
었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특히 인사문제엔 그의 입김이 가장 큰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유능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국민의 정부 인사는 국민의 불
만을 사고, 권 씨 자신이 각종 비리 의혹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하가 그 주인의 자리를 더렵혔다”는 실세 유금필 장군과 같은 비판을 받은 셈이
다.
공식 직함 없이도 실세라는 꼬리표가 계속 붙어 다니고, 그가 있는 곳엔 기자들이 들
끓고, 다음 대권을 쥐겠다는 사람들도 그의 말 한마디에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
권심’을 ‘김심’으로 느끼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권심을 물러나게 하라는 주장
이 민주당 내부에서 쏟아졌으니 그가 ‘해오던 일’이 분명히 당에 도움이 되고 박수
받을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과거에도 시중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실세들의 행적은 그들이 아직 실세인 이상 그 근
거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절대 떠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
이 가고 권력 누수가 생기면서 사실로 드러난 경우가 많았다.
설만 분분하지 근거가 나온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지 여론 조사에서 권노갑 전 의
원은 각종 비리의 의혹을 받아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었으므로 외유 등 스스로 물러나
라는 의견이 68.7%나 되었다. 비리나 권력남용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외유 등을 요구
할 수 없다는 의견은 18.3%였을 뿐이다.
신숭겸같은 충신은 오늘날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것
권 씨는 “내게 신숭겸이 되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가 죽을죄를 진 것처럼 몰아대는
데 이렇게는 못나간다.”라고 했다 한다.
그러나 그가 신숭겸이 되고자 했다해도 이미 그 기회는 지나가 버렸다. 물론 필자는
본란을 통해 신숭겸처럼 되라는 것이 아니라 “신숭겸처럼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
닌데 동지라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말고 말없이 떠나라”고 고언한 적이 있다.
신숭겸은 아무나 될 수 없다.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을 때 고려의
운명은 그냥 그렇게 끝나고 말 수도 있었으나 신숭겸의 충절로 고려를 이어가게 했다.
왕건은 지묘사를 창건해 그의 명복을 빌어주었으며, 오늘에도 그 같은 장수를 갖고
있던 왕건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세를 누가 만들어주나? 사랑하는 유금필을 유배보내라는 건의를 받고 진노한 왕건에
게 책사 최응은 물러서지 않고 지적한다. 바로 전하의 죄라고. 우리 청와대엔 지금 책
사 최응이 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민주당 총재직 사퇴가 열을 준 것이라 생각하겠지
만 지금 국민들은 어젯밤 왕건의 마지막 장면을 기대할 것 같다.
“유금필을 삭탈관직하고 유배 보내도록 하라.” 태조 왕건의 준엄한 고함소리가 천년
이 훨씬 지난 지금 국민을 시원하게 해주는 청량제일 수도 있다.
최영희 발행인내일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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