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를 통해 본 해방 직후 한국 혼란상

지역내일 2011-08-26

 ''삐라‘로 듣는 해방 직후의 목소리 / 김현식.정선태 / 소명출판


암흑 같은 일제 36년 세월이 종결되고 갑자기 찾아온 해방 공간. 좌우익의 심각한 이념 대립과 준비 없이 찾아온 해방으로 인한 혼란이 뒤섞인 한반도의 모습을 그 당시의 ‘삐라’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 출간되었다.
근대서지학회 이사이기도 한 김현식 대일광업 전무가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제공하고 정선태 국민대 교수가 분석과 체계를 세우고 해제를 덧붙인 ‘삐라로 듣는 해방 직후의 목소리’는1945년 8·15 해방 당일부터 3년 동안 수많은 유명·무명의 기관, 단체, 정당, 개인들이 공식·비공식으로 발표한 성명서, 선언문, 호소문, 결의문, 격문, 포고문, 포스터, 표어, 전단 등 443건을 수집하여 발간했다. 원본 그대로 컬러 인쇄하고 본문을 현대문으로 번역해 놓은 최초의 해방시기 삐라 자료집이다. 원본 문건을 통해 당시의 급박했던 시국 속의 다종다층의 목소리들을 있는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마치 당시의 현장 속에서 사건을 보는 직접 보고 듣는 듯한 생동감을 그대로 전달해 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에는 화려한 수사로 해방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단결을 도모하는 각종 단체와 개인 명의의 전단이 속속 등장했다.


“친애하는 삼천만 동포여! 오랜 굴욕의 날, 압박과 착취의 긴 날은 끝나고, 자유와 해방의 화려한 날은 왔다. 우리의 거룩한 조국, 아름다운 산천, 자랑스러운 민족의 머리 위에, 현란한 자유의 광망은 비치었다.”(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선언>, 1945.8.18)


“우리의 기다리고 바라던 날은 왔다. 굴욕과 압박에서 자유와 해방의 첫걸음을 걷게 된 우리의 감격과 환희는 표현할 말이 없다.”(임시정부 및 연합군환영회본부, <환영회취지서>, 1945.8)


그러나 신탁통치와 친일파 처리 문제 등을 놓고 좌우의 대립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됐고 각종 전단지 속 섬뜩하기까지 한 문구는 당시의 대립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삼천만 대한 전민족의 총궐기의 秋(추). 신탁통치 절대반대! 결사코 자유를 전취하자!! 살아서 노예가 되느니보다 죽어서 조국을 방호하라!!”(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 <성명서>, 1945.12.28)


“조선이 외국의 신탁관리를 당한다면 어느 누가 항쟁치 아니하랴? 그러나 조선민족을 일본제국주의의 질곡으로부터 해방하여 주었으며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피투성이의 싸움을 하여온 연합국이 우리에게 압박과 노예화를 기도할 리가 있는가? 단연코 없다.”(반파쇼공동투쟁경기도위원회, <파쇼분자의 반동적 책동을 분쇄하자!>, 1946.1)


편자인 정선태 교수는 “‘격’ ‘격문’ ‘급고’ ‘경보’ 등등의 표제를 앞세운 수많은 전단지들이 전하는 목소리는 해방 공간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갈등과 대립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3·1운동과 8·15해방 기념행사와 미·소공동위원회, 제주도 4·3 민중항쟁과 여수·순천사건 등 1948년까지 숨가쁜 사건들을 겪으며 쏟아진 목소리들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손때가 묻고 피가 얼룩진 ‘삐라’와 벽보들은 살균 처리되지 않은, 현장성이 선연한 기억의 조각들이다. 해방기 정치적 현실을 가장 생생하게 비춰주는 것은 물론, 60여 년 전의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자료들이 소설이나 시, 그리고 이 시기에 생산된 다양한 텍스트들과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해방 공간이라는 한국현대사의 원점을 입체적으로 투시할 수 있는 보다 풍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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