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뮤직]권용욱(43)은 라이브 카페촌 미사리의 '유명가수'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무명가수지만 미사리에선 유명짜한 실력파다. 그가 이곳 라이브카페 '벤허'에서 노래한 건 햇수로 15년. 청춘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다. 팬카페 회원수만 1500명을 거느린다. 하지만 그는 요즘 좀 쓸쓸하다. 미사리가 옛 명성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어서다. 한때 60여곳이 성업 중이었던 이곳 라이브 카페는 현재 5곳만 남았다.
카페촌 앞에 왕복 2차선 도로가 8차선으로 넓어졌고,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사람들이 떠났다. 보금자리 주택단지 선정, 카페끼리 대형가수 유치 경쟁이 낳은 후유증도 한몫했다. 거기다가 '세시봉 열풍'으로 도심지에도 라이브 카페가 많이 생긴 것도 이유가 됐다.
▲ 15년간 한국 라이브 카페의 미사리 메카에서 노래를 불러온 '라이브의 지존' 권용욱이 '벤허'에서 열창을 하고 있다.
그는 요즘도 목,금,토요일 밤 11~12시면 어김없이 통기타를 들고 '벤허'의 무대에 선다. "순수하게 리얼로 노래하고 싶다. 단 한 명이라도 팬이 있는 한 미사리에서 영원히 노래하고 싶다"는 가수 권용욱. '길' '인생' 등 자신의 노래는 물론 톰 존스의 '딜라일라' 등 다양한 레퍼토리와 열정적인 목소리는 "역시 라이브의 지존"이라는 말을 절로 나오게 했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여름의 끝물, 8월 어느 토요일밤에 그의 라이브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 미사리 옛 영화 그립지만 '라이브 정신' 그대로
미사리는 서울의 동쪽 한강변에 위치한 라이브 카페촌을 통칭하는 말이다. 주소로는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과 창우동 일대다. 한때 60여곳에 이르던 라이브 카페는 5년 전부터 안좋아지더니 현재 5곳만 남았다. 올해 안으로 2곳마저도 떠날 예정이다.
카페촌이 처음 형성되었을 무렵인 1998년 그는 5번째로 생긴 '벤허'의 오픈멤버였다. 그래서 그는 미사리의 쇠락을 가장 안타까워 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벤허의 경우 예전에는 9~11시면 손님들로 40테이블이 꽉 들어찼다. 요즘은 토요일 정도 만석이고 평일에는 10테이블 정도 찬다"며 경제적인 어려움과 팬들의 매몰참을 아쉬워했다.
미사리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그는 "예전에는 불륜의 원산지, 음식값이 너무 비싸다 등 말이 많았다. 실제로는 20, 30, 40대 정도의 소규모 공연을 즐기는 곳이었다"며 "커피값의 경우 2만원씩이나 해 너무 비싸다고 하는데, 콘서트 가도 최소 4만~5만원하지 않은가. 왜 공연비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 권용욱은 언제나 열창하는 프로다2001년 첫 음반 'Hope'를 낸 그는 이제까지 나이트클럽에는 서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통기타 라이브 가수다. 반주기가 많이 보급되었지만 웬만하면 통기타를 고집한다. 그의 음악에 대한 고집은 "순수하게 리얼로 노래하고 싶다"는 라이브 정신이다.
"비록 대중들에게는 얼굴이 안 알려진 무명가수지만, 미사리 라이브 카페에는 실력파 은둔가수들이 수두룩했다. 저는 스스로 장난스럽게 하지 않고 진실로 노래하자고 항상 되뇌인다. 열정을 갖고 노래하다보면 손님이 먼저 알아본다."
그는 공연 때 악보를 보지 않는다. 대신 다 외운다. "악보가 있으면 가사 안 틀리고 좋지만 왠지 벽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시선 두는 곳도 장애가 된다. 그래서 처음 라이브 설 때부터 악보를 다 외워 연습을 했다."
■ 가족팬-골수팬 많은 터주대감 "나는 가수다"
안동 태생인 권영욱은 부산 대학시절 첫 무대에 섰다. '벤허'가 처음 생길 무렵 부산을 떠나 천리타향 이곳까지 찾아왔다. 이후 4집 가수로 25년 동안 노래해왔다. 남들처럼 딱 떠오르는 빅히트곡은 없지만 미사리에서는 박강성과 함께 '라이브의 황제'로 통한다.
하지만 때론 내세울 간판이 없어 속상했다. "손님들이 오자마자 누구 나와요 물어요. 유명가수를 보러오는 사람이 많은 거죠. 저는 음반을 4장이나 내면서도 방송 활동의 중요성을 몰랐어요. 히트곡이 없다보니 지방에 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힘들어요."
하지만 미사리에서는, 아니 월화수요일에 나가는 백운호수 쪽 '쉘브르'에서는 그의 실력을 다 안다. 그에게는 가족팬과 골수팬이 많다. 아들을 입대시킨 후 우연히 들러 그의 '이등병편지'(김광석)을 들었던 부부는 단골이 되었고, 그때 입대한 아들은 후에 딸의 생일 축가를 요청해왔다. 사업실패 후 우울증으로 자살 생각을 했던 한 50대는 벤허를 찾았다가 그의 노래에 반해 1주일 동안 계속 찾아와 듣고 나서 새 삶을 시작했고, 지금도 단골이다.
그의 팬클럽 'Hope in Hope'은 90년대 말 자발적으로 생겼다. 회원은 열성팬 1500명으로 요즘도 매일 100여명이 활동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이날 '벤허'에서 만난 'Hope in Hope' 회원 박지희(47)씨는 "20년 권용욱 팬이다. 그의 노래가 듣고 싶을 때면 애들 몰래 보러 온다. 그의 노래는 중독성이 있다. 노래하는 모습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회원인 유명희씨(40)는 "권용욱 3집 CD를 듣고 반했다. 권용욱 때문에 하남으로 이사 왔다. 그의 노래가 끝나면 카페를 나선다"고 했다.
■ "손님이 적거나 많거나 열정적인 프로정신"
이날 그는 생일을 맞은 손님에겐 생일 축하곡을, 결혼 기념일을 맞아 찾아온 손님에겐 '내가 만일'(안치환)을 불러주었다. 그가 부른 노래는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톰 존스) '귀거래사'(김신우), '너를 위해'(임재범), 고래사냥(송창식) '이름모를 소녀'(배호) '딜라일라'(톰 존스)와 자신의 노래 '길/ 세상끝에서' '인생'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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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를 치며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보여주는 권용욱 |
그는 이날 손님들에게 자신의 노래 '인생'을 이렇게 소개했다. "속상한 일 있으면 치료방법이 고함지르며 술 한 잔 하는 거다. 그때 불러보라고 지었다"며 부드럽게 감싸주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능수능란한 무대 매너로 폭풍 가창력을 선보이며 팬들을 사로잡았다.
벤허의 홍세희(48) 사장은 "권용욱은 손님이 많으나 적으나 대충하는 법이 없다. 한결같이 노래에 최선을 다한다. 열정이 강하게 드러나는, 프로정신으로 똘똘 뭉친 보배 같은 가수"라고 칭찬했다.
이날 '벤허'의 라이브 공연 홀에는 커플석과 단체석이 거의 다 찼다. 예전 잘나가던 시절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무대도 손님도 열정적이었다.
권용욱은 평생 라이브카페 가수 이외에는 직업을 가진 적도, 회사 명함을 판 적도 없다. 25년 오로지 외길 가수 인생을 달려왔다. "다시 태어나도 가수를 할 것 같다"는 그는 팬들에게 "진실로 노래 잘하는 가수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뜨겁고 달디단 미사리의 밤이었다.
하남= 박명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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