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대 오른 신용평가사│(상) 끝이 없는 신뢰도 추락

지역내일 2011-08-17 (수정 2011-08-19 오후 1:25:47)
'뒷북대응' 반복, 신용추락 자초했다
대한해운·진흥기업·부산저축은행 등 기업 부실 뒤엔 평가 부실 뒤따라
시장과점체제 속 적당주의 팽배 … 대주주는 수익 빼가기 몰두

신용평가사의 평가능력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한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신평사들에 대한 강도 높은 검사에 나섰다. 특히 금감원은 이번 검사에서 신용평가의 객관성과 공정성 여부까지 점검할 예정이어서 신평사의 부실평가 논란이 반복되는 구조적인 문제나 잘못된 관행을 밝혀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평사에 대한 시장의 평가와 문제점과 대안을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과거에는 신평사의 평가결과가 교과서였다면 지금은 참고서 수준에도 못 미친다. 신평사만 믿고 투자하는 일은 절대 없다." 10년 넘게 채권 관련 업무를 담당해온 한 투자자문사 관계자는 국내 신용평가사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시간이 갈수록 신평사에 대한 신뢰도가 쌓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신만 커져왔다는 얘기다.

무능력, 무책임으로 일관 = 사실 신평사들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한지는 오래됐다. 기업의 부실이 다 드러난 뒤에야 뒤늦게 신용등급을 강등하는 '뒷북 대응'이 반복돼온 까닭이다. 그래서 기업이 부도가 나거나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어김없이 신평사의 부실 평가 문제가 뒤따랐다.

부산저축은행은 대표적인 예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한기평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부산저축은행 무보증 후순위채권에 대해 BB- 등급을 부여하며 "부산저축은행은 원리금 지급능력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영업정지를 당하기 직전인 2월 중순에서야 "원리금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틀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신용등급을 CCC로 강등했다. 

한신평도 지난해말까지 부산저축은행에 대해 BB- 등급을 유지하다 영업정지를 당한 직후 CCC로 낮췄다.

신평사를 믿고 투자한 고객들만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한신평과 한신정평가도 지난해말 대한해운이 유상증자를 추진할 때 이 회사에 대한 신용등급을 투자등급인 BBB+로 제시했다.

하지만 대한해운은 불과 한달여만에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두 신평사는 뒤늦게 대한해운에 대한 신용등급을 D등급으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워크아웃 절차를 밟고 있는 진흥기업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의 기업어음은 지난 1월 한신정평가와 한기평으로부터 'A3'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진흥기업은 불과 한달여만에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두 신평사는 워크아웃 신청 사실이 알려진 뒤에야 진흥기업의 신용등급을 C로 낮췄다.

LIG건설 역시 지난해 12월 한신평과 한신정평가로부터 A3- 등급을 받았지만 불과 석달만에 자금난에 몰려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올들어 기업의 경영부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여지없이 국내 3대 신평사의 부실한 평가능력도 드러났던 셈이다. 이 과정에서 신평사들은 자신이 매긴 평가등급을 하루만에 재조정하는가 하면, 과거 평가기록을 은폐하는 등 무능력과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신평사에서는 기업 신용을 완벽하게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항변이 나온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올들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곳 중에는 모기업의 지원이나 상환의지만 있다면 정상경영을 할 수 있는 곳도 적지 않았다"며 "기업의 도덕적 해이나 상환의지까지 파악해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평사에 대한 시장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는데 비해 신평사의 평가능력은 제자리에 머물거나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해 신용평가기관의 평가결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투기등급인 'BB' 등급을 받은 기업의 부도율은 7.1%에 그친 반면 투자적격인 'BBB'등급을 받은 기업의 부도율은 8.9%를 기록해 '부도율 역전' 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도율 역전이란 투자적격등급을 받은 기업의 부도율이 투기등급을 받은 기업보다도 더 높은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그만큼 신평사의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부도율 역전 현상은 2008년 이후 3년째 반복되고 있다.

발행기업 눈치보기 급급 = 이처럼 신평사의 평가가 부실한 원인으로는 우선 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하는 수익구조가 꼽힌다. 수익의 대부분을 신용평가 대상인 기업에 의존해야하는 신평사들로서는 구조적으로 '갑'에 종속된 '을'일 수밖에 없단 얘기다. 신용등급을 낮췄다가 해당 기업이 거래를 철회하면 신평사들로서는 수익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의뢰 기업의 기대수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러다보니 '신용등급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등급이 갑자기 대폭 하향되는 '뒷북대응' 행태가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유리한 신평사를 찾아다니는 일도 적지 않다. 대한해운이 한신평과 한신정평가에 신용평가를 의뢰한 것은 한기평이 해운업에 대한 평가를 좋게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으로부터 신용평가업무를 수주해야 하는 신평사로서는 기업에 친화적일 수밖에 없다"며 "아무래도 기업에 대한 평가가 엄격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사의 지배구조와 시장과점체제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국내 신용평가 시장은 피치사가 소유한 한기평과 무디스가 대주주인 한신평, 개인 회사인 한신정평가가 삼등분하고 있다.

한신정평가의 대주주인 나이스홀딩스는 한신평의 지분 50%-1주도 보유하고 있다. 3대 신평사가 한정된 시장을 균등하게 나눠 갖고 있다 보니 치열한 경쟁보다는 무사안일에 빠지기 쉽다는 얘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에 대한 의존보다 다른 신평사의 평가에 의존하는 것이 더 문제"라며 "한 신평사가 일단 등급을 매겨놓으면 다른 신평사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곳이 정부의 개입이나 모기업의 지원 가능성 등 특수요인을 과대평가해 등급을 잘못 매겨도 다른 평가사들이 이를 반박하기보다는 따라가는 일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신평사 배당성향 90%에 달하기도 = 지난 2009년에는 신평사들이 신용평가 수수료를 담합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과징금을 낸 일도 있었다.

평가능력 향상을 위해 투자하기보다 수익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한 신평사의 행태도 문제다. 선진 금융기업 도입을 위해 글로벌 신평사에 시장을 개방했지만 정작 이들은 수익 빼내가기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피치가 대주주인 한기평의 경우 지난해 배당성향이 65.0%, 2009년에는 99.7%에 달했고, 무디스가 대주주인 한신평도 배당성향이 2년연속 90%에 달했다. 배당성향이 90%라는 건 순이익의 90%를 고스란히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나눠줬다는 의미다.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신용평가 시장은 증권사나 해외IB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신평사가 신뢰를 완전히 잃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변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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