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 다시, 정치적 무관심을 경계한다(고세훈 2001.12.04)

지역내일 2001-12-04 (수정 2001-12-05 오후 10:10:54)
내년 전반기의 지방선거와 연말의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부산하다. ‘정치적 경기순환’, ‘선거케인즈주의’ 등 말들이 시사하듯, 우리는 경제조차 선거를 위해 얼마든지 활용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작금의 정치현실이 가관일지언정 그것이 ‘정치계급’ 내부의 손익계산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국가에서 선거란 여론의 매개이며 그것이 정치엘리트의 충원 그리하여 정책산출에 직접 연결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엄연하다. 당연히 유권자 편에서는 정치적 무관심 그 자체가 부메랑과 같이 자기패배적 효과를 낳는다.
민주국가에서 정치적 무관심은 낮은 투표율에서 일차로 드러난다. 한 때 저조한 투표율이야말로 마침내 우리가 선진국에 접어들고 있다는 징후라는 진단이 나돈 때도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이 가볍고 무책임한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선진국 가운데 낮은 투표율을 보이는 나라는 미국 등 몇몇 앵글로색슨 국가들에 국한된 것이다. 원래 이들은 정치(국가)에 대한 시장의 우위, 즉 상대적으로 낮은 정치지분의 전통이 확연한 나라들이다. 따라서 이익대표체계로서 정당의 배열도 이데올로기나 이념적 지향과는 별무상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의 자정능력은 절망적
그러나 거기에서조차 최소한 절차적 수준에서 정치는 자신의 본래기능을 상식적이고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만일 민주적 기본질서나 관행이 왜곡되거나 위태로울 조짐이 조금이라도 비친다면, 아마 이 나라들의 모든 유권자는 만사를 제치고 투표장으로 달려가거나, 언론은 정치권으로 향해 연일 계속되는 시위 등 ‘참여폭발’ 현상을 보도하고 자극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 외 서유럽의 이른바 정치선진국들에선 여전히 총선에 대한 국민적 참여율은 매우 높거니와, 거기에서 이념과 정책노선에 따라 조직된 정당체계는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끊임없이 유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해방이후 반세기 한국정치사란 통제 받지 않은 무소불위의 정치와 거기서 비롯된 폐해들의 누적사(累積史)에 다름 아니었다. 최근 시민사회 각 층위에서 나타나는 갈등의 진폭(振幅)에서 드러나듯, 시민사회의 거리(街)가 소란한 정도는 정당 등 이익대표체계가 불완전하고 정치사회가 불합리한 정도에 정확히 비례하는 법이다. 우리의 시민사회는 지난 세월 잘못된 정치가 형성한 각종 적폐들(계층, 부문, 지역 간 불균등 구조 등)로 몸살을 앓으면서도 그것의 광정(匡正)을 하소연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갈등을 치유해야할 정치가 먼저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정치가 먼저 나서서 지역감정 남북긴장 빈부격차 등을 선동하고 있으니 한국의 시민운동은 시민사회의 전통적 의제들을 정치화시키는 이외에, 정치과정 자체를 민주화시켜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정치의 자정능력이 절망적이고 개혁과제가 산적해 있을수록 정치사회의 인적 재편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임은 자명하다.
정치적 무관심은 결코 소극적 ‘의사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운명을 타인의 손에 맡긴다는 ‘적극적’ 권리포기다. 거기에는 비판마저도 포기한다는 ‘결의’가 동반되거니와 비판이란 비난이 아니기 때문에, 준엄한 책임추궁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초에 책임의 이양 자체가, 그리하여 소위 ‘대리인 문제’의 소지 자체가 없다면 도대체 누가 누구를 추궁한단 말인가. 천문학적 예산이 낭비 유용 되고, 정치권 안팎으로 연결된 부패의 사슬은 끝이 없으며, 정쟁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여론을 호도하고, 인사는 망사(亡事)로 치달아도, 우리는 결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왕왕 우리의 비판이 무책임한 냉소나 비난을 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도 정치만이 희망이다
맑스주의자들은 정치는 근본적으로 무력하니 거리의 혁명만이 대안이라 외치고, 신(neo)-자유주의자들은 정치가 무능하므로 시장논리의 극대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인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떤 이론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본래 정치적’이라는 말도 사치에 불과하다. 오늘날 정치는 사람들의 일상에 너무 깊고 넓게 침투해 있어서 나와 내 이웃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정치가 쌓아온 업보가 엄청나서 정치 스스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한국적 상황은 더욱 재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의 딜레마는, 정치가 혐오를 부추기고 타기(唾棄)의 대상일수록, 정치의 가능성마저 포기한다면 정말 희망은 없다는 역설에 있다. 일찍이 엥겔스는 “혁명은 투표소에서!”라고 갈파한 바 있다. 물론 엥겔스의 낙관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혁명적 개혁일수록 그것은 투표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계몽된 참여’가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 고세훈 고려대학교 교수 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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