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게임회사 CEO 고평석씨, 온라인게임을 고발하다

지역내일 2011-08-22
"아이들 게임에 중독시키는 게 목표"
스스로 게임중독 체험후 실상 고발 … 자녀 게임중독 탈출법 상세 소개

전직 게임회사 CEO가 온라인게임의 실상을 고발하는 책을 펴내 화제다. 주인공은 고평석씨다. 고씨는 "우리 회사뿐 아니라 거의 모든 게임회사가 아이들을 게임에 중독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고백했다.

그는 당초 게임이 미래의 레저이자 성장동력이란 확신으로 가득찬 게임회사 CEO였다. 그러나 게임을 알아갈수록 회의가 커져갔다. 게임이 아이들에게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것을 실제 사례와 과학적 데이터를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게임의 본질에 대해 더 정확히 알고 싶어서 게임 체험실험을 5개월 동안 매일 1시간씩 해보았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패배가 흥미 떨어뜨려 = 고씨는 게임회사 CEO이긴 했지만 평소 게임을 하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게임에 아무리 빠져도 중독까지 가지는 않을거야'라고 확신했다. 오히려 실험을 앞두고 게임에 중독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들기까지 했다.

평소에 관심을 두고 있던 온라인게임 중 축구게임을 실험대상으로 골랐다. 스포츠게임이라 게임분위기가 그리 어둡지 않고, 게임의 룰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되는 점이 이 게임을 고른 이유다.

2010년 10월, 드디어 본격적인 실험에 돌입했다. 그런데 며칠 만에 게임을 하는 게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고씨는 "특히 처음 며칠 나를 지치게 한 것은 게임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이라며 "계속되는 패배는 게임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중요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11월, 실험을 시작한 지 두달째에 접어들면서 차츰 상대와의 대결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임에 시간을 들인 만큼 노력의 대가가 뒤따른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는 순간, 이제부터는 게임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게임속 행동 해보고 싶은 충동" = 11월 어느날, 고씨는 "처음에는 게임을 끝내고 나서 어지럼증이 1~2시간 지속됐다"며 "이 실험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2011년 3월에는 어지럼증이 무려 5~6시간 지속됐다"고 말했다.

실험을 시작한 지 두 달째 또 다른 증상을 경험했다. 고씨는 "게임을 하고 난 뒤, 게임 속에서 한 행동을 현실에서 직접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애초에 총이나 칼로 상대와 힘을 겨루는 게임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고백했다. 총을 쏘는 게임을 실컷 즐겼다면 분명히 진짜 총을 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또 "게임을 즐긴 한 시간 동안, 나의 뇌는 직접 축구장을 뛰어다닌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며 "게임이 끝난 뒤에도 그 착각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뇌의 이런 착각 상태를 즐긴다"며 "이런 느낌이 강렬하게 드는 게임을 잘 만들어진 게임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전화도 안받고 아들도 귀찮아" = 승부에 집착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게임 아이템 구입에 관심이 갔다. 그는 "아이템을 사용해 게임을 하면 내가 조종하는 캐릭터들이 훨씬 빨리 뛰어다닐 수 있게 됐다"며 "아이템을 살수록 더 좋은 아이템을 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이템이 없을 때는 열 번의 대결 가운데 한 번을 이길까 말까 했는데, 아이템을 사용한 뒤로는 다섯 번쯤 이겼다"며 "이기는 경우가 많으니 게임이 점점 더 재밌어졌다"고 말했다.

실험을 시작한 지 3개월쯤 지나자,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백퍼센트 집중하고 싶은 심리상태가 됐다. 그는 "그전까지는 게임 도중 전화를 받고 누가 부르면 대답도 했지만, 12월말부터는 그런 것들이 모두 싫어지고 오로지 게임에만 집중하고 싶어졌다"며 "심지어 사랑스런 아들이 다가와서 뭐라고 말을 걸어도 짜증이 났다"고 고백했다.

그는 "게임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몰입성"이라며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동안 몰입하게 하는 것, 사실 이것이 게임회사의 과제이자 목표"라고 말했다.

밥도 안먹고 업무시간에도 게임 = 실험을 시작한 지 4개월쯤 되자, 고씨는 "게임을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몹시 불안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일이 바빠서 밤늦게까지 게임할 시간을 내지 못할 때는 불안감이 엄습했다"며 "그 불안감으로 인해 예전 같으면 결코 화를 내지 않았을 일에 화를 내고, 이유없이 문을 쾅쾅 닫기도 하는 등 불안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나도 모르게 자주 분출됐다"고 말했다.

고씨는 "내가 직접 겪어보니 게임 때문에 부모님과 충돌하는 아이들의 심정이 생생히 느껴졌다"며 "아이들 역시 게임을 시작한지 3~4개월이 지나면 금단현상이 찾아와 게임을 안하면 불안감을 느낄 것이고, 바로 이때 부모가 게임을 못하게 하면 아이들은 거칠 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마침내 업무시간인 대낮에도 게임을 하게 됐다. 또 처음에는 식사를 거르고 게임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아침이나 낮에는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애초의 규칙은 완전히 효력이 없어졌다.

게임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체험 = 실험을 시작한 지 5개월이 지나자 이제까지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굉장히 심한 두통을 경험했다. 그는 "하지만 나는 게임을 그만두지 않았고, 이제는 실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게임이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드디어 게임에 중독이 된 것이다. 그는 마음과 몸이 더 많이 망가지기 전에 이 실험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스스로 결심한 뒤에도 게임을 그만 두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게임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쉬웠고 내 의지로 가능했지만, 게임을 끝내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며 "게임을 끊기 위해 일종의 전쟁을 벌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게임이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하고 더 이상 미래의 스타산업으로 불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 10년 동안 꿈과 땀이 서린 게임산업에의 도전을 포기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게임산업의 실상을 고발하는 책을 썼다.

'게임하지 마' 라고 하면 안돼 = 그는 자신이 게임중독 빠져 탈출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게임중독에 빠진 아이들을 둔 부모들에게 '게임중독 탈출법'을 조언했다.

그는 "먼저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에게 게임을 조금은 즐기게 해주자'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게임회사들이 아무 안전장치 없이 게임을 제작해 서비스하는 상황에서는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아이가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면 앞으로 절대로 시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가 이미 게임을 하고 있다면 안전하고 부드럽게 게임 수렁에서 구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가지를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 자녀에게 절대로 '게임하지 마'라고 말하지 말 것. 둘째, 절대로 '게임하지 말고 공부해'라고 말하지 말 것. 셋째, 게임 대신에 다른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게 도와줄 것.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것은 아이들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스트레스와 게임 자체가 지닌 중독적인 성격 때문이다.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피하고 그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려고 게임을 자연스럽게 찾는다는 것이다.

사실 아이들은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어른들과 사회에 에스오에스(SOS)를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여가활동을 즐기게 해야 = 그가 제시한 게임중독 탈출법 첫째, 부모와 아이의 애정관계가 강한 경우는 아이의 심리를 파악해 결단을 유도한다. 아이와 함께 테마여행을 가며 '너는 결단력이 강한 아이야'라고 칭찬을 해주며, 다른 여가활동으로 유도를 한다.

둘째, 아이가 야외활동을 좋아하는 경우는 친구들과 함게 여러 구기종목을 즐기게 해주자. 또 경기장을 가서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멋진 사진작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방법이다.

셋째, 아이가 실내활동을 좋아하는 경우는 보드게임에 푹 빠지게 해주자. 보드게임이란 블루마블 같은 이른바 말판놀이식의 게임이다.

보드게임을 하면 판단력이 좋아진다. 보드게임은 끝이 있기 때문에 중독성이 없고, 여러 사람이 어울려 하는 놀이라서 대인관계도 도움이 된다. 모노폴리 보드게임을 추천한다. 다양한 만화책을 골라주는 방법도 있다. 역사 만화나 과학 만화책 등 훌륭한 만화책이 많다.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게 하는 것도 좋다. 천문대를 가보거나 가족 천문교실 같은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해도 아이가 계속 게임에 빠져 있다면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게임수출 제3세계에 한정" = 그는 게임산업이 해외진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는 주장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게임산업은 해외시장보다 국내 시장이 더 크고, 해외시장도 제3세계에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국내 게임시장 규모가 10조원대를 앞두고 있지만, 순수하게 게임회사들이 벌어들이는 매출액이 아니라 게임과 관련된 여러 매출액을 더한 수치이고, 이 가운데 대부분은 온라인게임이라는 것이다.

또 한해 수출액만 1조5000억원에 달하지만, 우리나라가 강점을 보이는 온라인 게임은 주로 제3세계 국가들에서 소비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중독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함께 즐기기에 좋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위'와 같은 콘솔게임(게임기로 하는 게임)은 선진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며 "반면에 중독성이 강하고, 혼자 즐기기에 좋은 온라인 게임은 제3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부인이 관심 기울여야 = 그는 이어 게임회사의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게임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무척 큰데도, 게임 회사들은 적절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할 정도로 게임 회사의 수익률이 낮은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영업이익률이 무려 50%에 달하는 게임 회사들도 여럿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아이들은 계속 게임 앞에 붙잡아 앉혀놓고 돈을 뽑아내고 있다"며 "게임회사들은 이제껏 높은 순이익을 올리는 대신 많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면서도 자발적으로 이를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다. 국가가 나서서 게임세를 거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해배출 업체가 공해세를 내고, 칼로리 높은 식품을 파는 기업이 지방세(fat tax)를 내어 약간의 면죄부를 받듯이 게임회사들도 그런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대통령 부인이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미셀 오바마가 '움직이자(Let's Move)라는 아동비만 퇴치운동처럼 대통령 부인이 아이들의 유해 환경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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