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1990년 정치체제의 붕괴

지역내일 2011-10-04
언론광장 공동대표

이명박 대통령이 9월 29일 부산에서 지역유지들이 참석한 네 군데 행사를 소화하며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의 말 중에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섭섭해 하는 분이 많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도 부산에 내려가 재래시장을 둘러봤다. 10·26 재보선에 이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심상찮다는 부산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다급하게 움직이나 부산-경남의 민심이반은 갑작스런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6·2 지방선거가 예고했다. 김두관 무소속 후보의 경남지사 당선은 돌풍이었다. 김정길 민주당 후보가 부산시장 선거에서 석패했지만 득표율 45%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야권의 약진이 한나라당의 아성이라는 PK를 뒤흔들 만큼 위력적이었다. 광역단체장 1명, 기초단체장 10명, 광역의원 23명, 기초의원 174명의 당선이 그것이다.

PK는 전통적인 야성지역이었다. 3·15 부정선거 규탄봉기의 진앙지가 마산이다. 유신체제에 종언을 고하는 궁정동의 총성도 부마항쟁이 방아쇠를 당겼다.

1990년 그 PK에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PK의 맹주 YS가 이끄는 통일민주당이 신군부의 민주정의당, 충청지역에 기반을 둔 유신주역 JP의 민주공화당과 합당한 것이다. 3당합당에 따라 거대여당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당시의 의석분포는 민정당의 퇴조에 따라 헌정사상 초유의 여소야대였다. 이로써 야권은 호남에 기반을 둔 DJ의 평화민주당과 3당합당을 반대한 통일민주당 잔존세력의 속칭 꼬마민주당으로 축소됐다.

그 후 PK 표심은 대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요변수로 작용해왔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PK 유권자는 전체의 16.1%인 605만명이다. 경기도 822만명, 서울 805만명에 이어 3번째로 많고 TK 399만명보다 51.6%나 많다. 2002년 14대 대선에서 YS는 PK에서 62.5%를 득표함으로써 10.9% 득표에 그친 DJ를 누르고 당선됐다.

대권 향방 결정했던 PK 표심

PK에서 두 후보의 표차는 217만표로서 전국표차 193만표보다 많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PK 투표율이 이인제 30.0%, 이회창 53.8%로 양분됐다. 이인제의 선전이 YS와 대척관계를 설정했던 이회창에게 패배를 안겨준 것이다. 승자 DJ와 이회창의 전국표차는 39만표에 불과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 노무현은 PK 출신이다. 그 까닭에 호남정당 후보란 약점에도 불구하고 PK에서 29.4%를 득표하여 승기를 잡았다. 한나라당의 이회창은 14대보다 높은 65.3%의 득표율을 올렸으나 호남에서 노무현의 몰표에 밀려 패배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정동영의 PK 득표율은 13.0%표에 머물렀다. PK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은 이명박은 호남을 제외한 전지역에서 우세를 보여 당선됐다. 영남권에서 PK와 TK가 합세한 1992년, 2007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승리했지만 분열한 1997년, 2002년 대선에서는 패배한 것이다.

3당합당은 군사정권하에서 형성된 민주 대 반민주란 정치구도를 뒤집었고 그 대신 영남 대 호남이라는 지역주의를 고착시켰다. 그 탓에 1988년 총선에서 낙선했던 PK출신 신군부가 1992년 민자당 간판을 달고 부활했다. 반면 민자당 합류를 거부한 PK의 민주화 세력은 낙선했다. 대표적 예가 허삼수의 당선, 노무현의 낙선이다.

민주화의 진앙지였던 PK가 민주자유당→한나라당의 철옹성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20년간 고착되었던 1990년 정치체제가 요동치며 붕괴의 소리를 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PK의 민심이반을 노무현 서거,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표피적인 분석에 불과하다. 근원은 불통정치와 TK우대-PK박대 인사이다.

화제의 인물은 모두 PK 출신

YS의 은퇴와 함께 최형우 이기택 박찬종 등 PK출신 중량급 정치인들이 모두 퇴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2008년 18대 총선후보 공천에서 차세대급 PK 정치인 김무성 박종웅 등을 낙천시켰다.

역풍이 커지자 집권세력이 김형오 박희태를 국회의장으로 내세웠지만 그들은 자생적 정치인이 아니고 민주화 투쟁과도 거리가 멀다. 그 까닭에 PK의 자존심이 대안세력을 비정치권에서 모색해왔을지 모른다. 조직성도 없고 우연성이 크지만 심정적 동의가 이뤄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하루 아침에 나타난 안철수 문재인 김두관 박원순 등 화제의 인물들이 모두 PK출신이다. PK에서는 이미 반한나라당, 비민주당이란 제3세력이 태동하고 있다.

그 풍력이 날로 드세지자 한나라당이 공포에 질린 모습이다. 그 풍향이 총선, 대선에서 야권연대의 방향을 결정하고 정권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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