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한 지역을 관찰하였다. 남겨진 자와 떠난 자의 중간에서 관조하며 벽을 사유했다. 도시의 실상은 재개발이 한창인 그곳 신앙촌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진전 ‘벽의 사유’ 도록에 쓰인 이 문구에는 김종옥(43) 씨의 마음이 사진처럼 찍혀있다. 요즘 같이 빠르게 달라지는 세상 속에서 도시개발은 흔한 일이라지만 오랫동안 호흡하며 살아왔던 이웃을 기억하려는 안타까운 마음이 이 글을 통해 읽혀지는 것이다.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둔 이웃 신앙촌이 한 순간에 사라졌어요. 떠나버린 그 자리에 남아있던 흔적들을 벽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었죠. 그 장면들을 시각화하자고 결심했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녀가 찍은 사진들 속에는 녹슬고 갈라진 벽의 세계가 들어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벽에 걸린 빛바랜 달력, 어둔 집 밖으로 보이는 또렷한 바깥 풍경, 사람 떠난 대문에 꽂힌 배달된 신문, 썰렁한 집을 지키다가 벽과 함께 살고 있는 빗자루나무들을 지난 3년 간 바라보며 열심히 촬영해왔다. 이런 종옥 씨의 사진들은 새로 태어난 아파트와 사라져가는 신앙촌의 명암을 깊이있게 대비시키며 그녀의 작품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삶에 조용한 울림을 주고 있다.
깊어진 가을의 이른 아침 종옥 씨는 빈 마을로 남겨진 범박동 길을 산책한다. 내년이면 이곳 신앙촌이 완전히 없어진다는 동네사람의 말을 듣고서다. 그녀가 걷는 길은 아파트가 많이 서있는 도심 속 시골길. 그곳을 바라보며 자신을 돌아본다는 그녀의 모습이 조용히 걷기만 하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를 생각나게 한다. 지난 6월 첫 번째 개인전 ‘벽의 사유(思惟)’展 속에 사라져가는 범박동을 담아내어 소리없는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그녀를 지난 19일 만났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배우다’
사진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있어서일까. 종옥 씨의 눈빛은 차분하면서 예리하다.
그녀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서 카메라 앵글 속에 세상을 담아내는 방법을 배웠고 지난 2003년부터 8년 간 ‘창호의 아름다움’, ‘풍경 속의 사리탑’, ‘그대 마음을 밝히는 등, 석등’, ‘아름다운 인연’ 등의 단체전을 통해 스스로를 연마했다. 또한 부천에서 제일 오래된 사진동우회인 ‘심상’과 10년을 함께 하며 자신의 작업에 몰두해왔다.
불교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결혼 후 아이를 임신하고 절에 다니며 자신의 내면을 보살피게 된다. “절집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어요. 하나하나의 뜻을 알아가다 보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이면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났지요.” 그러다 아직은 어렸던 두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지난 2000년, 그녀는 대학 때 만졌던 카메라를 다시 집어들었다.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이 가장 힘들었지만 당찬 마음으로 사진작업에 들어갔다. 그런 그녀를 곁에 있던 남편은 묵묵히 거들어줬다. “남편이 못했던 일이 있었어요. 딸 아이 머리 묶는 일이요. 그래서 잠자는 아이의 머리를 묶어놓고 출사를 나가곤 했답니다. 하하하.”
김종옥 만의 사진 위한 내면 작업에 ‘몰두’
“기계를 사용한 또렷하고 있을법한 사진들은 누구나 찍을 수 있어요. 하지만 찍는 것만 알아서는 사진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문학과 철학 등으로 감수성을 키우고 미학적인 느낌을 담아낼 수 있는 자신만의 내면 작업이 필요하죠.” 현재 그녀는 김종옥 만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범박동 길을 걷듯 걸어가고 있다. 성격이 느긋해서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는 그녀는 가까운 사람들과 가족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다보면 자신의 길이 찾아질 거라고 했다.
지금 종옥 씨는 칙칙하다는 생각에 관객이 외면할 거란 걱정과는 달리 첫 개인전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작품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승화시켜 추상화한 작품 또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 마애불의 모습을 앵글에 담아낼 예정이다. 그녀가 마애불의 웃음 속에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은 인간의 내면이 담긴 복합적인 우주의 원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란다.
“2012년이면 모두 사라질 신앙촌에 요즘 자주 가보고 있어요. 처음엔 바짝 다가서서 관찰했지만 이젠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보는 신앙촌의 모습을 다큐적인 것과 함께 담아내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예쁘고 아름다운 작품도 하고 싶어요. 저의 내면이 담긴 사진작품들을 많이 기대해주세요.”
임옥경 리포터 jayu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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