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진단>대화·타협이 통하는 사회를 (홍장기 2001.11.01)

<내일진단>

지역내일 2001-11-02
<내일진단>대화·타협이 통하는 사회를 (홍장기 2001.11.01)
홍장기 기획팀장

“한국 사람은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처럼 산다.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곡예운전을 하면서 절대로 다른 차의 끼어들기를 허용하지 않더라. 무섭고 살벌한 생각이 들었다. 몇일간 머물면서 나는 한국에서 다시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학교 때 부모를 따라 호주로 이민간 친구의 처가 오랜만에 한국땅을 밟은 뒤에 털어놓은 소감이다. 그는 한국사회를 ‘정글’에 비유하며, 강자가 힘으로 약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여과없이 통용되고 있다고 평했다.
우리 사회를 살벌하게 느끼는 건 비단 외국사회에 익숙해진 사람들만이 아니다. 이 땅에서 살아온 직장인을 상대로 한 인터넷 사이트의 여론조사에서 11.7%만이 ‘한국에서 살고싶다’는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었다.

각종 게이트 사라진 것, 폭로정국 선거용이라는 증거
직장인 열명 가운데 아홉명이 ‘한국에서 살기 싫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기 살기로 정쟁을 일삼는 정치권, 터널의 끝이 안 보이는 불황, 무너진 교육현장 등이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뺏아가고 있다. 한국을 탈출하게 만들고 있다.
며칠전 나는 서울 강남에 사는 친구에게서 살벌한 교육환경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중학교 1년생인 아들이 전교 1등을 한 뒤에 함께 과외를 하는 학생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일이다. 화가 난 친구는 아들과 가까운 학생에게 이유를 묻자, 그 학생은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밟아야 하는 경쟁자잖아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들이 주동해서 친구 아들만 따돌린 채 새 과외모임을 구성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아내는 강남으로 이사가려 했던 계획을 포기했다. 첫째 딸이 내년이면 중학생이라 교육여건이 좋다는 강남으로 옮기려했으나 강남의 정글법칙을 딸이 적응하리라는 자신감을 잃은 탓이다.
어려서부터 체득된 정글법칙은 사회적으로는 ‘세몰이’ 양태로 나타난다. 한쪽이 다른쪽을 제압하고 나아가서 죽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력을 규합, 일시에 힘을 몰아치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풍토에서 합리적인 대화와 상식이 통용되기를 기대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10월 25일 재보선 이전의 잇단 의혹사건을 둘러싼 언론 보도와 정치권 싸움이 대표적인 세몰이 양태가 아닌가 싶다. 세몰이는 권위주의적 통치 아래서 실체적 진실에 이르는 지름길로 선전됐다. 그리고 권위주의적 잔재는 군사정권에서뿐 아니라 민주화가 됐다는 현재도 상당히 남아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용호 게이트와 분당 백궁역 게이트 등이 슬그머니 사라진 것은 세몰이 목적이 진술 추구보다 선거용이었다는 의심을 국민들에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의혹 규명을 위해 여야가 합의한 특검제가 조속히 도입돼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검찰 등 국가기관과 지자체가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도 세몰이 양태로 진행되고 있다. 선거 이전의 보도를 문제삼아 제기되는 소송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건당 액수는 10억을 상회하고 있다. 언론에 난타당한데 대해 집중적인 반격이 이뤄지고 있다. 억울한 시민들의 구제수단인 고소 고발 진정이 집권세력의 부실과 비리의혹의 해명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도 있다.

21세기 희망 물거품 만드는 약육강식적 권력투쟁
소송을 통해 구겨질대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검사들이나 지자체의 심정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분풀이 양상을 띠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세몰이로 제압하겠다는 뜻이 반영돼 있다면 또다른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이렇듯 국가기관이나 언론 및 정치권이 세몰이에 몰두해 상대를 죽이고 자신의 입지를 넓히는데 열중한다면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는가. 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민 대열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느는 현상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병적 증상을 반영하고 있다.
21세기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펼쳐질 것이라고 김대중 정부가 선전하면서 거창한 축제까지 했지만, 국정쇄신을 둘러싸고 권력투쟁에 매몰된 오늘이다. 존경할 만한 인물에 대한 조사에서 학생들 대부분이 이순신 장군 등 위인들을 꼽는 현상을 사회지도층은 곱씹어봐야 한다. 살아있는 사람 가운데 사표가 될 만한 인물이 없다는 얘기다.
이 땅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들의 발길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죽기 살기로 싸우는 정글법칙 대신에 합리적 대화와 상식적 규율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살벌한 약육강식의 아귀다툼을 이성이 통하고 대화와 타협이 통하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홍장기 기획팀장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