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나선 금융당국, 기업의존 수익체계·시장독과점 해소책 내놓을지 주목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부실평가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기업 눈치를 보며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뻥튀기 평가', 평가사별로 다를 바 없는 '붕어빵 평가', 기업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여 뒤늦게 등급을 조정하는 '뒷북 평가'가 반복되면서 신평사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다.
◆기업 눈치보는 신평사 = 최근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포스코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포스코의 장기기업신용등급과 채권등급을 'A'에서 'A-'로 강등했다. S&P는 이에 앞서 LG전자의 장기채권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떨어뜨렸다. 반면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요지부동이다. 포스코에 'AAA', LG전자에 'AA' 등 최고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내 신평사들이 기업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신용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신평사들은 국제신평사와 국내신평사들의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 신평사 관계자는 "신평사마다 잣대가 다를 수 있다"며 "국제 신평사가 등급을 낮추는데 국내 신평사가 하향조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 신평사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다른 잣대'를 찾아보기 어렵다. 삼성전자(AAA), 현대차(AA+), 기아차(AA), SK텔레콤(AAA), LG화학(AA+), LG유플러스(AA-)등 국내 주요기업에 대한 국내 3대 신평사들의 신용등급은 동일하다. 삼성전자에 대해 무디스와 피치는 각각 같은 등급에 해당하는 'A1'과 'A+'를 부과했지만 S&P는 한 등급 아래인 'A'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신평사들이 '붕어빵 평가'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실제 신용도에 비해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인플레이션' 문제도 수없이 지적돼왔다.
우리투자증권 신환종 연구원은 "국내 신평사들은 신용등급을 올리기만 할 뿐 내리지 못한다"며 "신용등급 거품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평사의 평가대상 기업은 지난 6월말 현재 370개로 2007년말 406개보다 11.5% 줄었지만 같은 기간 AA등급은 39개에서 80개로, A등급은 100개에서 123개로 증가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인 BBB등급은 105개에서 66개로, 투기등급인 BB이하는 154개에서 93개로 감소했다.
이렇게 신용등급이 높아졌다면 기업들의 재무상태도 좋아져야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영업현금흐름을 부채로 나눈 비율을 보면 6월말 현재 AAA등급 은 23.5%로 2007년 37.9%보다 14.4%p나 줄었고, AA등급은 21.9%에서 18.4%로, A등급은 19.6%에서 7.1%로 각각 낮아졌다.
'뒷북평가'논란도 끊이질 않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부산저축은행이다. 한기평은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부산저축은행 무보증 후순위채권에 대해 BB- 등급을 부여했다가 영업정지를 당하기 직전인 2월 중순에서야 CCC로 강등했다. 한신평도 지난해말까지 부산저축은행에 대해 BB- 등급을 유지하다가 영업정지를 당한 직후 CCC로 낮췄다.
◆투자는 않고 이익 챙기기만 = 국내 신평사가 부실한 평가를 반복하는 데에는 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수익구조가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수익의 대부분을 신용평가 대상인 기업에 의존해야하는 신평사들로서는 구조적으로 '갑'에 종속된 '을'일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의뢰기업의 '기대수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자신에게 유리한 신평사를 찾아다니는 이른바 '등급 쇼핑'을 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평사의 지배구조와 시장의 독과점 구조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국내 신평사 시장은 무디스가 소유한 한신평과 피치사가 대주주인 한기평, 개인 회사인 나이스신용평가가 32~33%의 점유율로 삼등분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의 대주주인 나이스홀딩스는 한신평 지분 50%-1주도 보유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보다는 무사안일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한신평은 지난해 순익 82억원 중 80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해 배당성향이 90%를 넘었다. 한기평도 배당성향이 지난해에는 65.0%, 2009년에는 99.7%에 달했다. 배당성향이 90%라는 건 순이익의 90%를 고스란히 주주들에게 나눠줬다는 의미다. 신용평가 능력 향상을 위해 투자하는 대신 이익챙기기에만 급급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금융당국이 신평사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작업에 나선 것은 업계 자율에 맡겨놓아서는 신평사의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제기됐던 문제점들을 심도 있게 짚어보고 개선과제를 도출, 필요하다면 제도나 관행을 고쳐나간다는 계획이다.
윤영환 신한금융투자 선임연구위원은 "구조적인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지속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발행업체에 대한 실사를 실질화하는 방안만 제대로 마련된다고 해도 신평사의 신뢰도는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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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용평가사들의 부실평가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기업 눈치를 보며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뻥튀기 평가', 평가사별로 다를 바 없는 '붕어빵 평가', 기업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여 뒤늦게 등급을 조정하는 '뒷북 평가'가 반복되면서 신평사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다.
◆기업 눈치보는 신평사 = 최근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포스코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포스코의 장기기업신용등급과 채권등급을 'A'에서 'A-'로 강등했다. S&P는 이에 앞서 LG전자의 장기채권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떨어뜨렸다. 반면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요지부동이다. 포스코에 'AAA', LG전자에 'AA' 등 최고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내 신평사들이 기업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신용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신평사들은 국제신평사와 국내신평사들의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내 신평사 관계자는 "신평사마다 잣대가 다를 수 있다"며 "국제 신평사가 등급을 낮추는데 국내 신평사가 하향조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 신평사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다른 잣대'를 찾아보기 어렵다. 삼성전자(AAA), 현대차(AA+), 기아차(AA), SK텔레콤(AAA), LG화학(AA+), LG유플러스(AA-)등 국내 주요기업에 대한 국내 3대 신평사들의 신용등급은 동일하다. 삼성전자에 대해 무디스와 피치는 각각 같은 등급에 해당하는 'A1'과 'A+'를 부과했지만 S&P는 한 등급 아래인 'A'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신평사들이 '붕어빵 평가'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실제 신용도에 비해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인플레이션' 문제도 수없이 지적돼왔다.
우리투자증권 신환종 연구원은 "국내 신평사들은 신용등급을 올리기만 할 뿐 내리지 못한다"며 "신용등급 거품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평사의 평가대상 기업은 지난 6월말 현재 370개로 2007년말 406개보다 11.5% 줄었지만 같은 기간 AA등급은 39개에서 80개로, A등급은 100개에서 123개로 증가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인 BBB등급은 105개에서 66개로, 투기등급인 BB이하는 154개에서 93개로 감소했다.
이렇게 신용등급이 높아졌다면 기업들의 재무상태도 좋아져야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영업현금흐름을 부채로 나눈 비율을 보면 6월말 현재 AAA등급 은 23.5%로 2007년 37.9%보다 14.4%p나 줄었고, AA등급은 21.9%에서 18.4%로, A등급은 19.6%에서 7.1%로 각각 낮아졌다.
'뒷북평가'논란도 끊이질 않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부산저축은행이다. 한기평은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부산저축은행 무보증 후순위채권에 대해 BB- 등급을 부여했다가 영업정지를 당하기 직전인 2월 중순에서야 CCC로 강등했다. 한신평도 지난해말까지 부산저축은행에 대해 BB- 등급을 유지하다가 영업정지를 당한 직후 CCC로 낮췄다.
◆투자는 않고 이익 챙기기만 = 국내 신평사가 부실한 평가를 반복하는 데에는 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수익구조가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수익의 대부분을 신용평가 대상인 기업에 의존해야하는 신평사들로서는 구조적으로 '갑'에 종속된 '을'일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의뢰기업의 '기대수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자신에게 유리한 신평사를 찾아다니는 이른바 '등급 쇼핑'을 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평사의 지배구조와 시장의 독과점 구조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국내 신평사 시장은 무디스가 소유한 한신평과 피치사가 대주주인 한기평, 개인 회사인 나이스신용평가가 32~33%의 점유율로 삼등분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의 대주주인 나이스홀딩스는 한신평 지분 50%-1주도 보유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보다는 무사안일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한신평은 지난해 순익 82억원 중 80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해 배당성향이 90%를 넘었다. 한기평도 배당성향이 지난해에는 65.0%, 2009년에는 99.7%에 달했다. 배당성향이 90%라는 건 순이익의 90%를 고스란히 주주들에게 나눠줬다는 의미다. 신용평가 능력 향상을 위해 투자하는 대신 이익챙기기에만 급급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금융당국이 신평사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작업에 나선 것은 업계 자율에 맡겨놓아서는 신평사의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제기됐던 문제점들을 심도 있게 짚어보고 개선과제를 도출, 필요하다면 제도나 관행을 고쳐나간다는 계획이다.
윤영환 신한금융투자 선임연구위원은 "구조적인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지속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발행업체에 대한 실사를 실질화하는 방안만 제대로 마련된다고 해도 신평사의 신뢰도는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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