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는 교과서식 수업을 통해 이리저리 분해되어 참맛을 읽어버린 시들을 다시 불러내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시읽기의 맛을 선사한다.
책 중간쯤을 펼치면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가 나온다. 어디 한 번 음미해보자.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요새 출판계에 유명세를 떨치는 '아프니까 ㅇㅇ이다' 시리즈의 원조격 같지 않는가. 저자는 정호승 시인이 읊은 외로움을 니체의 철학과 연결시킨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이웃에게 가고,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기 위해 이웃에게 달려간다. 그대들 자신에 대한 그대들의 잘못된 사랑은 고독 때문에 자신의 감옥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저자는 정호승 시인의 시를 니체적 틀로 재해석 해보며 한 번쯤 외로워도 그 외로움을 견뎌보라고 권한다.
사랑에 대한 철학과 시도 있다. 4050세대에게는 송창식 가수의 노랫말로 더 기억이 나겠지만 김남조 시인의 '그대 있음에' 한 구절.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마음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삶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저자는 상식대로라면 먼저 내가 있어야 '그대'가 있지만 이 시에서는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라고 노래한 대목을 음미해보라고 권한다. 복잡한 철학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가을을 지나 이제 겨울의 입구에 다다른 계절, 연인이든 부부이든 한번쯤 다정히 손잡고'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라고 속삭여볼 일이다. 삶이 한결 운치 있지 않을까.
안찬수 편집위원
웅진 지식하우스 / 김용규 지음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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