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상자 안주워도 생활이 되네요”

지역내일 2011-12-16
성북구 폐지수거노인에 공공일자리
'기아 · 자살 · 고독 없는 도시' 목표


성북구에서 폐지를 주워 생활을 꾸려오던 노인들에게 골목길을 청소하고 안정적인 급여를 받는 일자리를 마련했다. 사진 성북구 제공


"훨씬 편하지. 전에는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슬슬 걸어다니면서 운동 삼아서 한다니까."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혼자 사는 이 모(76) 할머니. 지체장애에 당뇨까지 앓고 있지만 자녀가 있어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을 받지 못했다. 기초노령연금은 치료비만으로도 턱없이 부족하고 할머니는 거리를 헤매며 종이상자와 전단지 벽보 등 폐지를 주워 생활비에 보탰다.

지난달부터 할머니 일상이 바뀌었다. 매일 오전 10시 집 근처에 있는 길음2동주민센터로 출근한다. 폐지 대신 동네 골목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기 위해서다.

◆통·반장 고물상 통해 전수조사 = 성북구가 폐지를 주워 생계를 잇고 있는 노인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해 눈길을 끈다. 복지사각지대에 방치된 노인들을 공공에서 끌어안겠다는 구상이다.

이 할머니를 비롯해 홀로 사는 이웃 조 모(80)·박 모(69) 할머니, 그리고 아내와 2인 가구를 꾸리고 있는 정 모(83)·서 모(76) 할아버지도 최근까지 폐지 줍는 일을 해왔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궂은 날을 빼고는 거의 매일같이 거리를 훑어도 종이 값이 낮아 살림에 큰 보탬이 안됐다.

"하루에 1000~2000원이나 될까. 집에 모아놨다가 (고물상에) 가져가도 5000원 1만원 받기가 어려워."

박 할머니 말이다. 1㎏에 130원 가량이니 5000원을 벌자면 40㎏은 모아야 한다는 계산이다. 폐지를 줍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거나 경쟁 끝에 구역다툼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단지 신문지상만의 소식은 아닌 모양이다. 이 할머니는 "우리 동네에는 왜 이리 가난한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종이상자) 하나 보여서 뛰어가면 벌써 채가고 없다"고 토로했다.

성북구는 지난 7월 중순부터 전 지역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통·반장과 고물상에서 찾아낸 폐지 노인은 총 175가구. 혼자 사는 노인 90명, 노부부 가정이 41가구 등이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20가정. 최저생계비 이하 생활을 하는 절대 빈곤층이지만 '부양의무자'인 자녀가 있어 기초노령연금만으로 살아가는 노인이 134명으로 대다수다.

공공일자리 참여를 희망하는지 물었더니 120명이 의사를 밝혀왔다. 자격여부를 따졌다. 다른 공공일자리에 참여하고 있거나 근로 능력이 안되거나 재산이나 건강보험 부과액 기준 초과자 등을 제외하니 22명이 남았다. 그 중 6명이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고 이씨와 박씨 할머니를 포함한 16명은 11월부터 하루 5시간 근로유지형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하루 5시간 일하고 50만원 = "담배 피우는 사람들 습관이 문제야. 불이 날 지 모르는데 막 던져." "왜 자기 집앞 청소를 안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아침마다 골목길을 다 쓸고 나와."

골목을 훑어가는 할머니·할아버지들 목소리가 흥겹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12시면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1시부터 다시 일을 시작, 3시면 끝나는 일정이 약간 재미나기까지 하단다. 노인들은 조를 나눠 환경미화원 손길이 닿지 않는 골목 청소를 주로 한다. 수거 차량이 지난 뒤 남은 쓰레기부터 담배꽁초 종이컵 등 행인들이 지나며 남긴 흔적, 전봇대나 담벼락에 붙은 각종 광고전단지를 치운다. 정 할아버지는 "동네가 많이 깨끗해진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정정수 일자리정책과 팀장은 "노동 강도가 약하지만 일반 노인일자리사업보다 급여가 높은 편이라 인기"라고 말했다.

폐지수거 노인들을 공공영역으로 끌어들인 건 성북구에서 진행하는 굶는 사람, 자살, 고독 없는 도시 만들기 사업과 맥을 같이 한다. 구는 내년에도 조사를 해 공공일자리 참여자 숫자를 확대할 방침이다. 동시에 공공일자리 참여를 원하지만 참여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서는 지역사회복지협의체를 통해 소득보전을 할 수 있는 방안, 고독을 덜 수 있는 방안 등을 모색할 계획도 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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