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의 노래 ‘길’을 들으며
최영희 발행인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god의 노래 ‘길’.
10대 아이들이 죽고 못사는 그 가수들의 노래에 그들이 알면 기겁을 하겠지만 흰머리가 허연 내가 그냥 빠져들었다. 10대의 우상들이 부르는 노래인데도 그나마 가사 전달이 되었기에 다행이었다. ‘알 수 없지만’을 울 듯 말 듯 되뇌는 대목은 때가 때인 만큼 입시원서를 들고 대학 창구 앞에서 몇 번씩 지웠다 다시 쓰는 수험생들의 심정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과외비를 대준 아버지, 무릎이 망가지도록 기도해준 어머니와 함께 펼치는 눈치작전과 첩보전은 합격한다 해도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운타령이 뻔한데 이 얼마나 비교육적인가.
모든 국민들이 가슴아파 하고 분노하는데도 이 젊은 아이들이 겪고 있는 지옥의 고통을 벗겨줄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내가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고 ‘무우즙’ 사건이 나서 장관이라는 직함이 뭔지 알기 시작한 이래 모든 교육부 장관은 다 국민들에게 욕을 먹고 물러났다. 그래도 교육부장관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계속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입시전쟁 통과한 ‘전쟁영웅들’, 직업없어 재수 삼수
이제 선택은 끝났다. 일부 학교의 논술과 면접을 거치면 합격자의 기쁨과 탈락자의 좌절이 잠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그 기쁨으로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도 god의 노래처럼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를 끝없이 되뇔 것이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라는 노랫말이 실감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선택했건, 성적에 맞춰 붙고 봤건, 부모의 강요에 밀려 왔건 간에 대학의 온갖 고시반의 젊은이들이 고3 입시생과 비교가 안되게 도서관과 고시원에서 젊음을 삭이고 있다. 파란 가을하늘이 눈에 보여도 안되고 크리스마스와 흰눈에 마음이 설레어도 안 된단다. 그렇게 해서 통과한 사법연수원생들은 이젠 갈곳이 없다고 한다. 입시전쟁에서 당당히 살아남았던 ‘전쟁영웅’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이 없어 재수 삼수를 하고 있다. god의 노래 ‘길’을 따라 부르며 고뇌하는 이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까.
사실 나 자신도 이미 저만치 떠나 와버려 다시 돌아갈 수 없는데도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를 문득문득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길은 끝까지 가 봐야 한다. 요령과 술수만 배운 한 젊은이가 자기능력이 아닌 더러운 권력과 짜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요즘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탄탄대로를 가던 사람들이 돌부리에 걸린 것도 아닌데 퍽퍽 고꾸라지는 것을 목격한다. 권력에 취해 만용을 부리다 제 다리에 제가 꼬여 넘어지거나, 똑바로 앞을 보고 걷질 않고 사심을 갖고 두리번거리다 독버섯을 주워먹고 두엄통에 뛰어들어 인생을 망치고 있다. 또 권력 근처에서 쥐털 만한 인연을 갖고 덜그럭 덜그럭 끊임없이 소리내던 사람들이 줄줄이 끌려 내려오고 있다. 검찰은 바쁘고 구경꾼도 바쁘다. 영화로 치면 동시상영이 많아 출연진이 헷갈려 누가 어느 영화에 출연한 사람인지 구분조차 안 된다.
30명 리스트 운운에 밤잠 못자고 떠는 정치인들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수지 김 사건에서 유탄을 맞은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여론이다. 애매모호한 단체 이름 붙여 언론사로 보낸 비겁한 사람들의 투서가 아니라도 그 자리에 그가 앉으면 그리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잘도 앉아있다.
결국 올 것이 왔고, 앞으로도 올 것이 많이 있다.
터지는 사건마다 검찰 자신들의 관계가 들먹여진다.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고, 그래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권력 말기에 힘을 내는 것은 관례였다. 또 지금이라도 그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앞으로 올 것은 얼마나 크고 광범위할지 가늠이 안 된다. 명성 얻은 정치인들이 감옥의 담장 위를 걷는다더니, 정치인 30명의 진승현리스트 운운에 밤잠 못 자고 떠는 이들이 눈에 선하다.
지금 입시전쟁을 치른 아이들이 세상의 주역이 될 때는 제발 이런 일이 없어야 되겠지만, 고등학교 3년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는 학벌위주의 사회, 눈치와 요령으로 무장하고 재수타령만 하게 만드는 입시제도가 계속된다면 별 희망이 없다. 도전의 기회를 많이 주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제자리를 찾아 제대로 역할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다.
최영희 발행인
최영희 발행인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god의 노래 ‘길’.
10대 아이들이 죽고 못사는 그 가수들의 노래에 그들이 알면 기겁을 하겠지만 흰머리가 허연 내가 그냥 빠져들었다. 10대의 우상들이 부르는 노래인데도 그나마 가사 전달이 되었기에 다행이었다. ‘알 수 없지만’을 울 듯 말 듯 되뇌는 대목은 때가 때인 만큼 입시원서를 들고 대학 창구 앞에서 몇 번씩 지웠다 다시 쓰는 수험생들의 심정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과외비를 대준 아버지, 무릎이 망가지도록 기도해준 어머니와 함께 펼치는 눈치작전과 첩보전은 합격한다 해도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운타령이 뻔한데 이 얼마나 비교육적인가.
모든 국민들이 가슴아파 하고 분노하는데도 이 젊은 아이들이 겪고 있는 지옥의 고통을 벗겨줄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내가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고 ‘무우즙’ 사건이 나서 장관이라는 직함이 뭔지 알기 시작한 이래 모든 교육부 장관은 다 국민들에게 욕을 먹고 물러났다. 그래도 교육부장관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계속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입시전쟁 통과한 ‘전쟁영웅들’, 직업없어 재수 삼수
이제 선택은 끝났다. 일부 학교의 논술과 면접을 거치면 합격자의 기쁨과 탈락자의 좌절이 잠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그 기쁨으로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도 god의 노래처럼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를 끝없이 되뇔 것이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라는 노랫말이 실감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선택했건, 성적에 맞춰 붙고 봤건, 부모의 강요에 밀려 왔건 간에 대학의 온갖 고시반의 젊은이들이 고3 입시생과 비교가 안되게 도서관과 고시원에서 젊음을 삭이고 있다. 파란 가을하늘이 눈에 보여도 안되고 크리스마스와 흰눈에 마음이 설레어도 안 된단다. 그렇게 해서 통과한 사법연수원생들은 이젠 갈곳이 없다고 한다. 입시전쟁에서 당당히 살아남았던 ‘전쟁영웅’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이 없어 재수 삼수를 하고 있다. god의 노래 ‘길’을 따라 부르며 고뇌하는 이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까.
사실 나 자신도 이미 저만치 떠나 와버려 다시 돌아갈 수 없는데도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를 문득문득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길은 끝까지 가 봐야 한다. 요령과 술수만 배운 한 젊은이가 자기능력이 아닌 더러운 권력과 짜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요즘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탄탄대로를 가던 사람들이 돌부리에 걸린 것도 아닌데 퍽퍽 고꾸라지는 것을 목격한다. 권력에 취해 만용을 부리다 제 다리에 제가 꼬여 넘어지거나, 똑바로 앞을 보고 걷질 않고 사심을 갖고 두리번거리다 독버섯을 주워먹고 두엄통에 뛰어들어 인생을 망치고 있다. 또 권력 근처에서 쥐털 만한 인연을 갖고 덜그럭 덜그럭 끊임없이 소리내던 사람들이 줄줄이 끌려 내려오고 있다. 검찰은 바쁘고 구경꾼도 바쁘다. 영화로 치면 동시상영이 많아 출연진이 헷갈려 누가 어느 영화에 출연한 사람인지 구분조차 안 된다.
30명 리스트 운운에 밤잠 못자고 떠는 정치인들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수지 김 사건에서 유탄을 맞은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여론이다. 애매모호한 단체 이름 붙여 언론사로 보낸 비겁한 사람들의 투서가 아니라도 그 자리에 그가 앉으면 그리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잘도 앉아있다.
결국 올 것이 왔고, 앞으로도 올 것이 많이 있다.
터지는 사건마다 검찰 자신들의 관계가 들먹여진다.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고, 그래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권력 말기에 힘을 내는 것은 관례였다. 또 지금이라도 그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앞으로 올 것은 얼마나 크고 광범위할지 가늠이 안 된다. 명성 얻은 정치인들이 감옥의 담장 위를 걷는다더니, 정치인 30명의 진승현리스트 운운에 밤잠 못 자고 떠는 이들이 눈에 선하다.
지금 입시전쟁을 치른 아이들이 세상의 주역이 될 때는 제발 이런 일이 없어야 되겠지만, 고등학교 3년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는 학벌위주의 사회, 눈치와 요령으로 무장하고 재수타령만 하게 만드는 입시제도가 계속된다면 별 희망이 없다. 도전의 기회를 많이 주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제자리를 찾아 제대로 역할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다.
최영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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