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 철근노동자 신씨, 체불임금 받기 10미터 고공시위

지역내일 2012-01-25 (수정 2012-01-26 오전 11:20:39)
"목숨 걸어야 임금받아요"
"불법 다단계하도급 몸서리" … 원청-하청-재하청 책임 떠넘기기


설 연휴를 앞둔 지난 20일 오후 7시 서울 창동의 한 성당신축공사장에선 체불임금 때문에 고공시위가 벌어졌다. 사진은 신영선(사진 오른쪽)씨가 '20일까지 체불임금을 지급하겠다'고 원하청 현장소장들이 서명한 확약서를 보여주는 모습 사진 강경흠 기자


"돈 내놔. 이놈들아. 1400만원 내놓으면 내려간다니까. 안줘? 사람 죽는 꼴 볼껴? 확 뛰어내린다니까."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0일 오후 7시 서울 노원구 창동 소재 한 성당 신축공사장. 마감작업중인 건물 외벽에 얽어놓은 '아시바(강관파이프로 만든 안전난간대)' 맨 끝에 '철근 오야지'인 신영선(61)씨가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신씨는 소주를 몇잔 마신 상태였다. 높이 10미터가 넘는 곳에서 '밀린 노임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파이프를 손과 발로 흔들 때마다 연결핀과 고정클램프가 '끽끽' 소리를 냈다.

자살소동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기자가 신씨로부터 체불임금 제보를 받아 공사현장에 도착한 것은 6시 30분. 이미 한달전부터 신씨로부터 수차례 하소연을 들어오던 터였다. 신씨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후, 공사장 한켠 간이사무실에서 원청 소장의 설명을 듣던 중이었다.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10여명의 인부들이 '사람 죽는다'며 발을 굴렀다. 신씨에게 "내려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원청 소장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동료들은 신씨를 설득했다.

인근 파출소 경찰들이 출동했고, 신씨는 30분만에 동료들에게 끌려내려 왔다. 신씨는 "돈을 받아야 설을 쇨 것 아니냐"며 "인부 20명이 고향에도 못가고 나만 쳐다보고 있다"고 소리쳤다.

C성당에서 지난해 발주한 이 공사는 원청인 W사에서 수주해 S종합건설서 하청을 줬고, 다시 K산업에 재하청을 준 불법 다단계 사업장이었다. K산업으로부터 지난해 10월 철골부문을 다시 재하청 받은 신씨는 동료 20여명과 함께 2개월간 이 현장에서 일 해왔다.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 12월28일. K산업이 경영난으로 이 공사에서 손을 뗐다. 신씨가 K산업에서 받아야 할 돈은 1397만원이었다. 11·12월치 20명 노무비와 절곡기 등 사용료 3197만원 가운데 일부 지급된 건설기계료를 제외한 금액이었다.

K산업은 원청인 S종합건설에서 기성금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신씨는 지난해 12월31일 공사현장을 찾아가 W사 현장소장과 S종합건설 현장소장으로부터 '1월 20일까지 밀린 노임을 주겠다'는 확인서를 받았다.

하지만 이 확인서는 쓸모없는 문서였다. 다단계 하청구조 때문에 벌어진 복잡한 임금체불관계는 해결이 쉽지 않다. K산업은 "기성금을 전액 받지 못했다"며 S종합건설에 책임을 미뤘다. S종합건설은 "W사로부터 기성금을 받아야 하고, 거래 당사자인 K산업을 통해서만 노임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이었다. S종합건설은 "하청업체에서 보고한 시공률이 47%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38%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한 임원은 "기성금을 내려주더라도 하청업체의 경영 부실로 신씨에게 전달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그동안 이렇게 내려보낸 후 떼인 돈이 수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신씨는 이날 목숨 건 시위를 벌인 후 9시께 W사로부터 일단 직불금 800만원을 받아냈다. 그는 "다단계 하도급 때문에 몸서리가 난다"며 "이렇게라도 안하면 설을 쇨 수 없겠다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건설현장 체불임금은 전체 체불액 1조870억원의 15.5%인 1680억원. 노동계는 건설업종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에 체불임금이 잦고 해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건설노조 이정훈 정책국장은 "원청에서 발생한 체불임금은 10%도 안된다"며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구조에서 건설노동자 임금지급이 점점 늦춰지고, 하청사들이 경영난을 겪다가보면 결국 체불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날 자살소동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 관계자도 "최근 건설현장에서 이런 극단적인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며 "조사해보면 대부분 다단계 하도급과 관련 있고 유형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한편 신씨는 24일 "2월 25일까지 잔금 600만원을 주겠다는 각서를 받아뒀지만 어떻게 될지 몰라 속을 태우고 있다"고 전해왔다.
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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