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재 본지 논설고문
벼룩시장이나 중고품 몰에서 산 물건이 도난물이어서 장물취득죄로 처벌을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장물취득죄는 도난당한 물건인 줄 모르고 사거나 얻어도 죄가 될 수 있다. 범죄의식 유무와 관계없이 처벌받을 수도 있는 위험한 법이다.
동아리 선배에게 밥을 얻어먹은 대학생들이 밥값의 30배에 달하는 과태료를 물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문득 무고한 장물취득죄가 떠올랐다. 모순이 많지만 법은 법이니까 어쩔 수 없다 할 것인가. 얻어먹은 밥값 맥주값이 2만원 정도라니, 1인당 60만원씩 물어내게 된 학생들이 얼마나 황당할까 싶다.
작년 12월 28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어떤 대학 야구동아리 학생들의 송년회가 열렸다. 1인당 1만2000원짜리 뷔페식당에 동아리 선배가 찾아와 밥값을 내 주었다.
회비를 내지 않게 된 학생들은 예상하지 않았던 행운이 즐거웠을 것이다. 자리를 옮겨 호프집에 갔을 때 비로소 선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국회의원 비서인 선배는 "지역구에 사는 친구들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주소지를 옮겨서라도 당내경선에 참여해 의원님을 지지해달라"는 노골적인 부탁과 함께 명함까지 받았다. 4·11 총선이야 내년의 일이니까 먼 장래의 일 같았고, 공밥 먹은 게 선거법 위반인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범법'이었다. 누구든지 선거와 관련하여 제3자로부터 기부를 받을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해 음식물 등을 제공받은 자는 그 값의 10배 이상, 또는 50배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돼 있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법이 그러니 벌을 받게 된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인가.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학생들이 선배의 참석을 몰랐던 송년회 자리였지만 음식물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과태료를 물린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서울지역에서 처음 적발된 기부행위여서 엄정하게 조치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박희태 의장은 언제 조사하나
우리는 억울한 처벌을 말할 때 흔히 장발장의 은촛대 이야기를 떠올린다. 성경을 읽으려고 촛불을 훔친 것이 죄인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같은 범주다. 그들의 범죄는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훔쳐야겠다는 범의(犯意)에서 비롯된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경우는 참석자 11명 모두에게 그것이 없었다. 선배에게 밥 얻어먹는 것이 선거법 위반인 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상참작의 요인이 되는 미필적 인식조차 없었다.
알았건 몰랐건 법을 어겼으니 벌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그만일까. 위로는 대통령부터 정당대표와 최고위원 국회의원 교육감 도지사 시장 군수 등 모든 선출직 공직자부터, 대학총장 선거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선거에 그런 부조리가 있다는 것은 국민의 상식이 되었다. 그런 일들이 다 같은 잣대로 처리되었다면 누가 토를 달 것인가. 선거로 뽑힌 사람들 가운데 그 문제에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당장 돈 봉투 사건을 보자. 당 대표를 뽑은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박희태 후보 측은 국회의원과 대의원들에게 밥을 사준 정도가 아니라 돈 봉투를 뿌렸다.
이 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한 것을 보고 있는 국민 눈에 '공밥 먹은 죄'를 엄하게 물은 것이 참 잘한 일로 비추어질까. 후보직을 사퇴한 인사에게 2억원을 준 곽노현 서울 교육감이 벌금형으로 석방되어 나온 것을 본 사람들이 그 '엄정성'에 박수를 칠까.
돈 봉투 사건 수사는 이제 겨우 국회의장실 보좌관 한 사람을 불러 조사했을 뿐이다. 선거운동 때의 상황실장, 의장 수석비서관 같은 측근들의 역할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설 지나면 부르겠다" "이달 말이나 되어 봐야 알겠다" 하고 있다.
나만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을 나라
의혹의 정점에 있는 박 의장에 대해서는 부르겠다 말겠다 말조차 없다. 야당 대표 돈 봉투 의혹에 대해서는 즉각 압수수색과 강압수사에 착수한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어디 선거 사범뿐이겠는가. 벼슬 높은 공직자들은 세상에 독이 되는 잘못을 저질러도 이런저런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고, 재벌이나 잘난 사람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게 대한민국 형사사법의 현실이다. 전국 각지의 교도소에 바글거리는 수만 명의 재소자 가운데 힘깨나 쓰는 사람이 몇%나 되는지는 굳이 따져볼 것도 없다.
생계형 절도범, 의심 없이 값싼 물건을 손에 넣었다가 화를 당한 장물사범 같은 일반범죄자들이 나만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을 나라를 기대할 수는 없을까. 모르고 먹은 공밥이 횡액이 되어도 당연하게 인식될 날은 언제나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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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이나 중고품 몰에서 산 물건이 도난물이어서 장물취득죄로 처벌을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장물취득죄는 도난당한 물건인 줄 모르고 사거나 얻어도 죄가 될 수 있다. 범죄의식 유무와 관계없이 처벌받을 수도 있는 위험한 법이다.
동아리 선배에게 밥을 얻어먹은 대학생들이 밥값의 30배에 달하는 과태료를 물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문득 무고한 장물취득죄가 떠올랐다. 모순이 많지만 법은 법이니까 어쩔 수 없다 할 것인가. 얻어먹은 밥값 맥주값이 2만원 정도라니, 1인당 60만원씩 물어내게 된 학생들이 얼마나 황당할까 싶다.
작년 12월 28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어떤 대학 야구동아리 학생들의 송년회가 열렸다. 1인당 1만2000원짜리 뷔페식당에 동아리 선배가 찾아와 밥값을 내 주었다.
회비를 내지 않게 된 학생들은 예상하지 않았던 행운이 즐거웠을 것이다. 자리를 옮겨 호프집에 갔을 때 비로소 선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국회의원 비서인 선배는 "지역구에 사는 친구들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주소지를 옮겨서라도 당내경선에 참여해 의원님을 지지해달라"는 노골적인 부탁과 함께 명함까지 받았다. 4·11 총선이야 내년의 일이니까 먼 장래의 일 같았고, 공밥 먹은 게 선거법 위반인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범법'이었다. 누구든지 선거와 관련하여 제3자로부터 기부를 받을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해 음식물 등을 제공받은 자는 그 값의 10배 이상, 또는 50배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돼 있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법이 그러니 벌을 받게 된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인가.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학생들이 선배의 참석을 몰랐던 송년회 자리였지만 음식물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과태료를 물린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서울지역에서 처음 적발된 기부행위여서 엄정하게 조치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박희태 의장은 언제 조사하나
우리는 억울한 처벌을 말할 때 흔히 장발장의 은촛대 이야기를 떠올린다. 성경을 읽으려고 촛불을 훔친 것이 죄인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같은 범주다. 그들의 범죄는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훔쳐야겠다는 범의(犯意)에서 비롯된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경우는 참석자 11명 모두에게 그것이 없었다. 선배에게 밥 얻어먹는 것이 선거법 위반인 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상참작의 요인이 되는 미필적 인식조차 없었다.
알았건 몰랐건 법을 어겼으니 벌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그만일까. 위로는 대통령부터 정당대표와 최고위원 국회의원 교육감 도지사 시장 군수 등 모든 선출직 공직자부터, 대학총장 선거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모든 선거에 그런 부조리가 있다는 것은 국민의 상식이 되었다. 그런 일들이 다 같은 잣대로 처리되었다면 누가 토를 달 것인가. 선거로 뽑힌 사람들 가운데 그 문제에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당장 돈 봉투 사건을 보자. 당 대표를 뽑은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박희태 후보 측은 국회의원과 대의원들에게 밥을 사준 정도가 아니라 돈 봉투를 뿌렸다.
이 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한 것을 보고 있는 국민 눈에 '공밥 먹은 죄'를 엄하게 물은 것이 참 잘한 일로 비추어질까. 후보직을 사퇴한 인사에게 2억원을 준 곽노현 서울 교육감이 벌금형으로 석방되어 나온 것을 본 사람들이 그 '엄정성'에 박수를 칠까.
돈 봉투 사건 수사는 이제 겨우 국회의장실 보좌관 한 사람을 불러 조사했을 뿐이다. 선거운동 때의 상황실장, 의장 수석비서관 같은 측근들의 역할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설 지나면 부르겠다" "이달 말이나 되어 봐야 알겠다" 하고 있다.
나만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을 나라
의혹의 정점에 있는 박 의장에 대해서는 부르겠다 말겠다 말조차 없다. 야당 대표 돈 봉투 의혹에 대해서는 즉각 압수수색과 강압수사에 착수한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어디 선거 사범뿐이겠는가. 벼슬 높은 공직자들은 세상에 독이 되는 잘못을 저질러도 이런저런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고, 재벌이나 잘난 사람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게 대한민국 형사사법의 현실이다. 전국 각지의 교도소에 바글거리는 수만 명의 재소자 가운데 힘깨나 쓰는 사람이 몇%나 되는지는 굳이 따져볼 것도 없다.
생계형 절도범, 의심 없이 값싼 물건을 손에 넣었다가 화를 당한 장물사범 같은 일반범죄자들이 나만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을 나라를 기대할 수는 없을까. 모르고 먹은 공밥이 횡액이 되어도 당연하게 인식될 날은 언제나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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