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다고 미리 땅 사지 마세요"
철저한 준비·가족동의 있어야 실패 막을 수 있어 … 농업은 '블루오션'
"귀농할 수 있겠어?"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40대 중반의 남자 둘이 이야기를 나눈다.
"글쎄, 가면 무엇해서 먹고 살지? 애들 교육은? 마누라는 동의할까?"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정부가 귀농·귀촌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30~40대 가장이 귀농을 생각한다면 현실에서 넘어야 할 과제가 이들의 문답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일자리와 소득, 자녀 교육, 그리고 가족의 동의 등. 가족의 동의에는 영화 쇼핑 등 편리한 문화생활과 단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불편함이 섞여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년(2011년 1월~12월)간 도시지역에서 농어촌지역(읍·면)으로 귀농·귀촌한 가구는 1만503호다. 인구는 2만3415명으로 귀농·귀촌 가구당 평균 2.2명이다. 2010년 4067가구보다 158% 증가했다.
귀농·귀촌 연령층은 퇴직 후 인생 2막을 농촌에서 보내겠다는 50대가 33.7%로 가장 많지만 40대와 30대도 각각 25.5%와 13.7%로 나타났다. 일자리와 소득, 자녀 교육, 그리고 익숙한 도시생활을 떠나는 두려움을 극복하며 농촌에서 새로운 삶에 성공하고 있는 30~40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남편 농기계 교육 끝나면 나도 받을 것 =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귀농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두려웠다. 하지만 귀농학교에 함께 다니면서 내가 빨리 내려가자고 재촉했다."
홍정희(39)씨는 남편 이민수(45)씨와 함께 지난 2010년 10월 전북 정읍시에 땅을 임대해 논농사와 밭농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귀농을 결정하기 전에 6개월간 산촌유학을 보냈는데, 잘 적응했다. 귀농지로 정읍을 택한 것은 아이들이 산촌유학을 한 곳이어서 아이들을 배려한 마음도 있었다.

연봉 6000만원 대기업을 그만두고 전북 정읍에서 논농사 밭농사를 하는 이민수, 홍정희 부부는 첫 해 농사를 망쳤지만 "농사를 배웠다"고 말한다. 이들은 "귀농하면서 3년간 소득이 없을 것에 대비했다"고 말했다. 사진 농림수산식품부 제공
이들 부부는 귀농 1년전부터 전국귀농운동본부 생태귀농학교를 다녔고, 그곳에서 운영한 소농학교에서 주말마다 사계절 작물을 재배하면서 농업기술을 익혔다.
서울에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내려왔지만 귀농 후 첫 해 농사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배추를 4200속 계약재배로 심었는데 뿌리혹병에 걸려 심은지 얼마되지 않아 모두 썩어 버렸다. 홍씨는 "수확한 것은 겨우 150포기 정도였다"고 말했다. 함께 농사짓던 사람들이 배추병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은 게 야속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밭에 심었던 옥수수는 멧돼지의 습격을 받아 3분의 2를 망쳤다. 홍씨는 "그래도 결산해보니 이런 저런 비용을 제하고 조금 벌었다"고 말했다. 홍씨는 "한살림으로 출하했던 생강농사가 잘 돼 돈을 벌었고 파, 깻잎도 좀 팔았다. 옥수수도 3분의 1 건졌다"고 말했다. 이전부터 농사짓던 사람들이 유기농 재배를 해 유기농으로 팔 수 있어 가격을 높게 받았다. 팔지는 않았지만 벼농사로 식량도 해결했다. 홍씨는 "처음 3년은 소득없이 벌어놓은 돈을 까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왔다"면서 "첫 해 농사를 망쳤지만 다음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배운 셈 친다"고 말했다.
단, 이들은 귀농하면서 미리 땅을 사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살면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지역이면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하는데 땅을 사두면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농사짓는 땅도, 사는 집도 모두 빌렸다. 홍씨는 "농촌에서 살겠지만 이곳에서 계속 살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며 "여러가지 경험을 해보고 정말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면 그 때 터를 잡고 살 것"이라고 말했다.
6일 현재 이씨는 10일간 이어지는 농기계 교육을 받고 있다. 남편이 돌아오면 홍씨도 교육을 받을 생각이다.
◆부모 농사 이으려고 대학교수에서 농부로 = 김기원(49)씨는 지난해 안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에서 김포 농부로 변신했다.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도시에서 공부하고 결혼해 대덕연구단지, 벤처기업 경영자, 대학교수를 거쳐 다시 농촌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가 도시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한 이유는 '부모의 농사를 이어받기 위한 것'이다. 그는 "2009년 귀농을 처음 생각했는데, 당시 아버지는 74세, 어머니는 71세였다. 고령의 부모님이 1만7000평 농사를 짓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인건비는 비싼데다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농지를 팔기는 싫었다. 부모님이 1961년에 배 농장을 개원해 52년째 농사를 하는데, 그동안 투자한 것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2년간 다양한 귀농교육을 받은 후 지난해 낙향했다.
부모님 농사를 단순히 물려받는 게 아니라 더 많이 투자해서 부모님보다 20~30% 더 많은 소득을 내면 농업기반도 지키면서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2010년 김포시엘리트농업대학 농산가공학과 과대표를 맡으면서 인적네트워크도 넓게 만들었다.
서씨는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게 농업이라고 생각했다면 귀농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양한 가공품을 개발하고 체험농장을 운영하는 등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대학교수 출신이 귀농한다며 열심히 교육을 받는 모습은 눈에 띄었고, 그는 지난해 후계농업경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벤처기업운영, 대학교수 등의 경험을 살려 '농촌에듀팜 육성사업'에 신청했는데, 선정돼 50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귀농을 반대하던 아내도 그의 설득에 동의를 했다. 하지만 그는 무리해서 가족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는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과 1학년, 중학교 3학년이 된 세 아이와 아내는 김포와 가까운 서울 강서구 집에 그대로 지낸다.
그는 주말부부로서 김포와 서울을 오가며 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본격 귀농생활은 올해부터 시작이다.
◆중국학 전공한 나의 첫 직업은 농부 = 이병기(36)씨는 농업이 첫 직업이다. 대학에서 중국학을 전공한 그는 2006년 졸업 후 바로 천안연암대학에서 마련한 귀농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장래희망을 '농부'라고 적어 학교에서 혼이 나기도 했던 그가 막연했던 자신의 꿈을 이룰 계기를 잡은 것이다.
귀농교육을 마친 그는 2007년 아산시 도고면에서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했다.
현장실습교육을 받았던 농장 가까운 곳이어서 그때 그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지은행에서 밭을 3년간 임대한 그는 봄감자를 재배해 첫 수확을 올렸다. 이씨는 "임대받은 땅은 잡초가 무성하고 여기저기 자갈도 널려 있었다"며 "그곳을 개간해 토양관리에 매진했고, 처음으로 자색감자가 나왔을 때 감정이 북받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내가 재배한 감자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맛있다'고 말했을 때 '이 맛에 농사를 짓는구나' 생각이 들고,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농사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토양관리에 더욱 집중했지만 임대기간이 끝나자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는 "내 땅의 소중함을 이 때 느꼈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인생의 정착지를 찾던 그는 그 해 겨울 충남 청양군 관산리 은골구기자마을의 빈집을 임대하고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결혼은 귀농 이듬해인 2010년에 했다. 아내는 부모님께 표고버섯 재배법을 배운 후 경기도 안성에서 표고버섯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마을주민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민들의 경조사를 꼼꼼히 챙겼고 일손이 부족한 어른들의 농장 일은 농기계로 도와주었다. 정성을 쏟는 그를 주민들은 받아주었고, 고추를 주작목으로 선택하도록 도와주었다. 땅도 빌려줬다.
이씨 부부는 지금 떨어져 있는 고추농사와 버섯농사를 2014년까지는 합칠 계획이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이들 부부는 농업으로 맺어진 동지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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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준비·가족동의 있어야 실패 막을 수 있어 … 농업은 '블루오션'
"귀농할 수 있겠어?"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40대 중반의 남자 둘이 이야기를 나눈다.
"글쎄, 가면 무엇해서 먹고 살지? 애들 교육은? 마누라는 동의할까?"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면서 정부가 귀농·귀촌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30~40대 가장이 귀농을 생각한다면 현실에서 넘어야 할 과제가 이들의 문답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일자리와 소득, 자녀 교육, 그리고 가족의 동의 등. 가족의 동의에는 영화 쇼핑 등 편리한 문화생활과 단절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불편함이 섞여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년(2011년 1월~12월)간 도시지역에서 농어촌지역(읍·면)으로 귀농·귀촌한 가구는 1만503호다. 인구는 2만3415명으로 귀농·귀촌 가구당 평균 2.2명이다. 2010년 4067가구보다 158% 증가했다.
귀농·귀촌 연령층은 퇴직 후 인생 2막을 농촌에서 보내겠다는 50대가 33.7%로 가장 많지만 40대와 30대도 각각 25.5%와 13.7%로 나타났다. 일자리와 소득, 자녀 교육, 그리고 익숙한 도시생활을 떠나는 두려움을 극복하며 농촌에서 새로운 삶에 성공하고 있는 30~40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남편 농기계 교육 끝나면 나도 받을 것 =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귀농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두려웠다. 하지만 귀농학교에 함께 다니면서 내가 빨리 내려가자고 재촉했다."
홍정희(39)씨는 남편 이민수(45)씨와 함께 지난 2010년 10월 전북 정읍시에 땅을 임대해 논농사와 밭농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귀농을 결정하기 전에 6개월간 산촌유학을 보냈는데, 잘 적응했다. 귀농지로 정읍을 택한 것은 아이들이 산촌유학을 한 곳이어서 아이들을 배려한 마음도 있었다.

연봉 6000만원 대기업을 그만두고 전북 정읍에서 논농사 밭농사를 하는 이민수, 홍정희 부부는 첫 해 농사를 망쳤지만 "농사를 배웠다"고 말한다. 이들은 "귀농하면서 3년간 소득이 없을 것에 대비했다"고 말했다. 사진 농림수산식품부 제공
이들 부부는 귀농 1년전부터 전국귀농운동본부 생태귀농학교를 다녔고, 그곳에서 운영한 소농학교에서 주말마다 사계절 작물을 재배하면서 농업기술을 익혔다.
서울에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내려왔지만 귀농 후 첫 해 농사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배추를 4200속 계약재배로 심었는데 뿌리혹병에 걸려 심은지 얼마되지 않아 모두 썩어 버렸다. 홍씨는 "수확한 것은 겨우 150포기 정도였다"고 말했다. 함께 농사짓던 사람들이 배추병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은 게 야속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밭에 심었던 옥수수는 멧돼지의 습격을 받아 3분의 2를 망쳤다. 홍씨는 "그래도 결산해보니 이런 저런 비용을 제하고 조금 벌었다"고 말했다. 홍씨는 "한살림으로 출하했던 생강농사가 잘 돼 돈을 벌었고 파, 깻잎도 좀 팔았다. 옥수수도 3분의 1 건졌다"고 말했다. 이전부터 농사짓던 사람들이 유기농 재배를 해 유기농으로 팔 수 있어 가격을 높게 받았다. 팔지는 않았지만 벼농사로 식량도 해결했다. 홍씨는 "처음 3년은 소득없이 벌어놓은 돈을 까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왔다"면서 "첫 해 농사를 망쳤지만 다음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배운 셈 친다"고 말했다.
단, 이들은 귀농하면서 미리 땅을 사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살면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지역이면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하는데 땅을 사두면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농사짓는 땅도, 사는 집도 모두 빌렸다. 홍씨는 "농촌에서 살겠지만 이곳에서 계속 살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며 "여러가지 경험을 해보고 정말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면 그 때 터를 잡고 살 것"이라고 말했다.
6일 현재 이씨는 10일간 이어지는 농기계 교육을 받고 있다. 남편이 돌아오면 홍씨도 교육을 받을 생각이다.
◆부모 농사 이으려고 대학교수에서 농부로 = 김기원(49)씨는 지난해 안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에서 김포 농부로 변신했다.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도시에서 공부하고 결혼해 대덕연구단지, 벤처기업 경영자, 대학교수를 거쳐 다시 농촌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가 도시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귀농한 이유는 '부모의 농사를 이어받기 위한 것'이다. 그는 "2009년 귀농을 처음 생각했는데, 당시 아버지는 74세, 어머니는 71세였다. 고령의 부모님이 1만7000평 농사를 짓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인건비는 비싼데다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농지를 팔기는 싫었다. 부모님이 1961년에 배 농장을 개원해 52년째 농사를 하는데, 그동안 투자한 것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2년간 다양한 귀농교육을 받은 후 지난해 낙향했다.
부모님 농사를 단순히 물려받는 게 아니라 더 많이 투자해서 부모님보다 20~30% 더 많은 소득을 내면 농업기반도 지키면서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2010년 김포시엘리트농업대학 농산가공학과 과대표를 맡으면서 인적네트워크도 넓게 만들었다.
서씨는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게 농업이라고 생각했다면 귀농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양한 가공품을 개발하고 체험농장을 운영하는 등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대학교수 출신이 귀농한다며 열심히 교육을 받는 모습은 눈에 띄었고, 그는 지난해 후계농업경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벤처기업운영, 대학교수 등의 경험을 살려 '농촌에듀팜 육성사업'에 신청했는데, 선정돼 5000만원의 사업비를 지원받기도 했다. 귀농을 반대하던 아내도 그의 설득에 동의를 했다. 하지만 그는 무리해서 가족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는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과 1학년, 중학교 3학년이 된 세 아이와 아내는 김포와 가까운 서울 강서구 집에 그대로 지낸다.
그는 주말부부로서 김포와 서울을 오가며 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본격 귀농생활은 올해부터 시작이다.
◆중국학 전공한 나의 첫 직업은 농부 = 이병기(36)씨는 농업이 첫 직업이다. 대학에서 중국학을 전공한 그는 2006년 졸업 후 바로 천안연암대학에서 마련한 귀농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장래희망을 '농부'라고 적어 학교에서 혼이 나기도 했던 그가 막연했던 자신의 꿈을 이룰 계기를 잡은 것이다.
귀농교육을 마친 그는 2007년 아산시 도고면에서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했다.
현장실습교육을 받았던 농장 가까운 곳이어서 그때 그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지은행에서 밭을 3년간 임대한 그는 봄감자를 재배해 첫 수확을 올렸다. 이씨는 "임대받은 땅은 잡초가 무성하고 여기저기 자갈도 널려 있었다"며 "그곳을 개간해 토양관리에 매진했고, 처음으로 자색감자가 나왔을 때 감정이 북받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내가 재배한 감자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맛있다'고 말했을 때 '이 맛에 농사를 짓는구나' 생각이 들고, 기뻤다"고 말했다.
그는 농사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토양관리에 더욱 집중했지만 임대기간이 끝나자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는 "내 땅의 소중함을 이 때 느꼈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인생의 정착지를 찾던 그는 그 해 겨울 충남 청양군 관산리 은골구기자마을의 빈집을 임대하고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결혼은 귀농 이듬해인 2010년에 했다. 아내는 부모님께 표고버섯 재배법을 배운 후 경기도 안성에서 표고버섯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마을주민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민들의 경조사를 꼼꼼히 챙겼고 일손이 부족한 어른들의 농장 일은 농기계로 도와주었다. 정성을 쏟는 그를 주민들은 받아주었고, 고추를 주작목으로 선택하도록 도와주었다. 땅도 빌려줬다.
이씨 부부는 지금 떨어져 있는 고추농사와 버섯농사를 2014년까지는 합칠 계획이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이들 부부는 농업으로 맺어진 동지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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