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전 간행물윤리위원장
어떤 꼼수도 안 부리고, 편 가르기-패거리 정치를 안하며,
정실인사나 밀실야합도 않겠다는 약속이 모두 공수표로 돌아와
날씨가 이상하다. 봄은 왔으나 어쩐지 봄 같지가 않다. 으스스 추운데다 우중충한 느낌마저 든다. 어쩌면 이런 날씨는 지금의 정치상황을 닮은 것도 같다.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총선거, 분명히 그 정치의 봄은 왔으나 정작 수혜를 누려야할 유권자는 따돌림 당하고 헛도는 것만 같으니 말이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국민이 열광한지 6개월이 지났다. '아이들 급식문제'로 대판 이념싸움을 벌이던 정치권이 결국 서울시장직을 걸고 붙게 되자 나타났던 그 현상은 지금 우리에게 다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때 우리 모두가 정치의 틀을 완전히 바꿔 새판을 짜자는 데 동의한 것 아니었던가?"
작년 여름까지 한국정치는 그야말로 진흙탕에서 헤맸다. 실업대란 전세대란 부채대란에 물가폭탄까지, 온갖 고달픈 현실이 국민을 짓눌렀지만 여야는 오직 권력싸움과 이념싸움에만 골몰했다. 여와 야로서뿐 아니라 여권 내부, 또 야권의 안에서도 '친ㅇㅇ계' 운운하며 작당해 다투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다 대통령은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로 장막을 치고 밀어붙이기에만 능했다. '친서민'이니 '소통' '공생' 등 그럴듯한 구호를 앞세웠지만 뒤로는 이너서클의 이익 챙기기에 더 몰두하지 않느냐는 의혹을 샀다. 반대의견엔 교묘하게 색깔을 칠해 국민을 이념적으로 양분하는 일도 많았다.
서민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고달픈데 정치권은 이렇게 딴 짓만 하니 '새 인물, 새판, 새 정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주민투표 무산으로 서울시장을 다시 뽑게 되자 그 요구는 더욱 거세졌고 마침내 '안철수 현상'이란 실체가 드러났다.
스스로 모든 것 바꾸겠다더니
안철수 교수와 시민운동가 박원순이 타협하고 양보하며 펼친 드라마는 많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다. 쥔 손을 펴 따뜻한 마음을 쓰는 사람들이 '정치꾼' 대신 나라 일을 한다면 서민살림도 한결 나아질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국민바람과 동떨어진 구태정치는 차제에 쓸어버려야 한다는 확신도 생겼다.
그러자 정치권이 "스스로 모든 걸 바꾸겠다"고 국민에게 공언하고 나섰다. 부랴부랴 비상대책위도 꾸리고 당명까지 바꿨다. 몸을 사리다 적절한 시기에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꽃가마를 탈 것 같던 박근혜 의원도 황급히 전면에 나와 "우선 나부터 더 많이 바꾸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민주당 역시 범야권 통합을 이뤄 새 정치 주역으로 나서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적극 개발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들로 당의 면면을 바꿔나가겠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 말을 믿었기에 국민들은 모바일 투표에도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4.11총선을 한 달 앞둔 지금, 여야의 모습은 약속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공언했던 새 정치, 새판은 거짓말처럼 지워졌다. 국민과 고충을 함께 하며, 어떤 꼼수도 안 부리고, 편 가르기-패거리 정치를 안 하며, 정실인사나 밀실야합도 않겠다는 약속이 모두 공수표로 되돌아왔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지금 여야정당이 벌이는 총선후보 공천 작업이 그렇다. 과거보다 나아진 구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참신한 새 인물을 못 고른 건 그렇다 쳐도 어쩌면 이렇게 말 많고 탈 많던 현역들을 고스란히 재공천 했는지 희한할 지경이다. 현역의원은 70%이상 공천을 받은 것 같고 소수의 탈락자들은 대개 당내 유력자와 척을 졌던 사람들이다.
끼리끼리 의식, 국민 무시 여전
이런 식의 철저한 나눠먹기 계파공천은 과거에도 흔치 않았다. 거기다 비리 의혹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공천장을 주었으니 이게 얼마 전까지 "새 인물로 새판을 꾸려 새 정치를 해보겠다"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맞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정치꾼들의 끼리끼리 의식과 국민무시 행태가 이번 공천에서 다시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불과 얼마 전, 야무지게 영글던 새 정치의 꿈은 이제 물거품이 되는 모양새다. 지금 같아선 이번 총선은 우리 정치인들의 함량이 이것밖에 안된다는 걸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할 듯하다.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최선'이 아닌 '차악'을 뽑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봄은 왔으나 봄 같지가 않은 연유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