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류당시 "올 대선은 여야 떠나 준비된 대통령 필요"
최근엔 "MB정부와 선 긋지 않고는 여론지지 못받아"
김종인 비대위원은 한 때 야당에 몸담았던 재벌개혁론자다.
30대 교수시절에는 박정희 정권에 참여해 79년 근로자사회의료보험을 도입했다. 세계적으로도 선진화됐다는 평가를 받는 현행 국민의료보험의 기틀을 잡은 셈이다. 노태우 정부 당시에는 집값안정을 위해 반발을 감수하고 재벌의 부동산매각을 밀어붙였다. 이때부터 '재벌개혁론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87년 개헌 당시에는 헌법에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민정당 소속이던 김 위원이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담판 끝에 얻어냈다.
김 위원은 비대위 합류 뒤 의아해하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올해 대선은 대한민국의 50년을 결정하는 시기다. 인재풀이나 정책적으로나 준비된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또다시 노무현-이명박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야권에서는 준비된 후보가 없다. 여권에서는 박근혜가 유일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박 위원장의 약점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국민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는 후문이다.
여당 강령에서 '보수' 용어를 삭제하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뒤에도 그는 "박근혜 위원장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도 쇄신에 대한 큰 결심을 조만간 할 것"이라고 되뇌어 왔다.
그랬던 그가 거의 사퇴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1차공천결과와 결정과정을 지켜보며 "박 위원장의 변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은 "박 위원장이 (대선)본선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국민의 변화를 따라잡는 수준의 쇄신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적으로나 정책면에서 MB정부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홍식 기자 hss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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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MB정부와 선 긋지 않고는 여론지지 못받아"
김종인 비대위원은 한 때 야당에 몸담았던 재벌개혁론자다.
30대 교수시절에는 박정희 정권에 참여해 79년 근로자사회의료보험을 도입했다. 세계적으로도 선진화됐다는 평가를 받는 현행 국민의료보험의 기틀을 잡은 셈이다. 노태우 정부 당시에는 집값안정을 위해 반발을 감수하고 재벌의 부동산매각을 밀어붙였다. 이때부터 '재벌개혁론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87년 개헌 당시에는 헌법에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민정당 소속이던 김 위원이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담판 끝에 얻어냈다.
김 위원은 비대위 합류 뒤 의아해하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올해 대선은 대한민국의 50년을 결정하는 시기다. 인재풀이나 정책적으로나 준비된 사람이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또다시 노무현-이명박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야권에서는 준비된 후보가 없다. 여권에서는 박근혜가 유일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박 위원장의 약점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국민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는 후문이다.
여당 강령에서 '보수' 용어를 삭제하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뒤에도 그는 "박근혜 위원장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도 쇄신에 대한 큰 결심을 조만간 할 것"이라고 되뇌어 왔다.
그랬던 그가 거의 사퇴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1차공천결과와 결정과정을 지켜보며 "박 위원장의 변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은 "박 위원장이 (대선)본선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국민의 변화를 따라잡는 수준의 쇄신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적으로나 정책면에서 MB정부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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