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6~29일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석면포럼에 참석했다. 4월 초 우리나라에서 터져 나온 베이비파우더 석면탈크 사건의 전말에 대해 주최 측에서 발표를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간 노동자 대표와 석면피해자,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관계자들은 28일 아침을 먹은 뒤 곧바로 홍콩 도심에 있는 한 공원을 갔다. 많은 홍콩 노동자들이 검은 티셔츠를 입고 모여들었다.
중앙무대에서는 몇 명의 홍콩 노동자들이 기타를 치며 우리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산자여 따르라)'을 중국말로 부르면서 행사의 분위기를 돋구고 있었다.
한국은 어느덧 노동가요까지 수출한 나라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이날은 다름 아닌 세계 산재사망자 추모의 날이었다. 내일(28일)이 바로 16번째를 맞는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며칠 전 한 통의 전자우편이 날아들었다. 그 편지에는 <나는 꼼수다="">를 벤치마킹해 '국내 유일 건강권 헌정방송'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내건 <나는 무방비다=""> 제4회가 소개돼 있었다. 우리의 산재·직업병 실태를 고발하는 팟캐스트방송이었다.
'일과 건강' 홈페이지에서 격주로 내보내는 이 방송은 이번 회에서 산재 사망자 추모 주간 행사와 1988년 7 월2일 15살의 어린 나이에 수은중독으로 숨진 문송면군 추모 특집을 다뤘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저항하며 온몸을 불사른 전태일이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노동열사라면 문송면은 열악한 작업환경 탓에 수은중독이라는 직업병의 희생물이 된, 대한민국 산재 사망자의 상징이다.
산재 사망자의 상징, 문송면
문송면의 죽음과 같은 해, 같은 달에 터져 나온 대한민국 최대의 직업병 사건인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집단 중독 사태'와 맞물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7월을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로, 그리고 2일을 '산재사망자 추모의 날'로 정해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노동환경을 없애기 위한 각종 행사를 벌여왔다.
그런 가운데 1993년 5월, 태국의 케이더라는 장난감 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이곳은 미국의 유명한 애니메이션인 '심슨가족'의 캐릭터 인형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이날 화재로 188명이 목숨을 잃었다. 174명이 여성노동자였고 많은 수가 문송면과 같은 어린 노동자였다. 화재가 발생하자 일하던 노동자들은 밖으로 피하려 했으나 공장 문은 안에서 열리지 않았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공장의 인형을 훔쳐 나갈까봐 관리자들이 밖에서 늘 문을 잠가두었기 때문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대형 참사가 생긴 것이다. 이 사건으로 선진국에서는 "선진국 어린이들의 꿈이 담긴 장난감에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피와 죽음이 묻어 있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사건 발생 3년 뒤인 1996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지속가능 발전위원회' 회의장 앞에서는 촛불이 밝혀졌다. 회의에 참석했던 국제자유노련 노조 대표들이 중심이 돼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를 위한 '촛불 밝히기' 행사를 연 것이다. 국제자유노련은 "노동자를 죽이고 몸을 망가지게 하는 발전은 지속가능한 발전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국제자유노련은 세계 각국 회원 조직에게도 이날 행사를 벌일 것을 요청했고, 70여개 나라에서 촛불 밝히기 행사가 진행되면서 4월 28일 추모행사가 시작되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이날을 공식추모일로 정했다.
우리나라도 22002년부터 국제적인 추세에 발을 맞춰 4월 28일을 산재사망자 추모의 날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우리가 먼저 산재사망자 추모의 날을 정해 기념해왔는데 이날을 버리고 국제 추세에 발맞춰 다른 날로 바꾼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날짜가 뭐 그리 중요하랴. 필요하면 7월에 한 번 더 열면 될 일이다.
산재·직업병 희생양 안되도록
우리가 죽은자를 추모하는 것은 산자를 위함이다. 산재사망자 추모를 하는 것은 살아 있는 노동자가 더는 산재와 직업병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다짐이다. 우리나라에서만 하루에 7명의 노동자가 산재의 제물이 된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2~3명이 일하는 자그마한 가내공장은 물론이고 삼성같은 세계 일류기업에서도 산재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이 무방비로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우리가 산재사망자 추모를 하루만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65일이 산재사망자 추모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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