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이명박 대통령이 말할 차례다(문창재)

지역내일 2012-05-18
문창재 논설고문

'VIP께 일심(一心)으로 충성하는 별도비선'이란 무슨 말일까.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통할 수 없는 VIP란 말이 지금 한창 화제다. 일심으로 충성한다는 말은 마치 조폭사회 구성원이 '두목'에게 바치는 헌사 같다. 별도비선이란 말은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뒤돌아보게 한다.

이제는 사어가 된 줄 알았던 말들이 사전 책갈피를 뚫고 나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런 아부로도 모자라 '절대충성' '친위조직' '특명사항'이란 말까지 쓰였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곳이 이명박 대통령을 받들어 모시자는 뜻으로 창설된 직후, 스스로 다짐한 언약과 운영지침을 담은 문서에 나오는 말들이다. 검찰수사에서 확보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이름의 문건이다.

멀리는 절대군주 시대, 가까이는 군사정권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서약과 지침이 실제로 지켜졌다는 대목에 이르면, 민주주의라는 말을 입에 담기 부끄러워진다. 충성이니 일심이니 친위조직이니 하는 말들은, 잘 보아 주자면 '주군'을 잘 모시자는 갸륵한 뜻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비선조직 운영방침과 라인까지 문서에 담은 것은 상상의 범위를 초월한다.

비밀조직 만든 것은 국민 몰래 할 일이 많았다는 뜻

공식기구와 부서를 두고 그런 음습한 조직을 운영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국가 경영에 정보는 꼭 필요하다. 그래서 국가정보원도 있고 경찰의 정보부서도 있는 것이다. 그런 공조직을 놔두고 대통령이 비공식 라인으로 보고받는 비밀조직을 만든 것은 국민 몰래 할 일이 많았다는 뜻이겠다.

2008년 8월 28일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이 문서의 제1항 조직신설 목적 난을 보면 참 기가 막힌다. '새 정부 출범에도 불구하고 노 정권 코드인사들의 음성적 저항과 일부 공직자들의 복지부동으로 인해 VIP의 국정수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에 총리실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신설한다고 했다. 구정권 인사들을 제거하기 위한 불법조직임을 인정한 셈이다.

당면과제 난에는 '전 정권 말기에 대못질한 코드인사 중 MB 정책기조에 부응하지 못 하거나 저항하는 인사에게 사표제출 유도'라고 적혀 있다. 괄호 속에 '9월 공기업 임원 39명'이라고 제거 시기와 구체적인 숫자까지 박아 놓았다. 그 시절 공기업 임원이나 단체장 인사를 둘러싼 잡음들의 진원지가 바로 그곳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조직운영 방침을 밝힌 대목에서는 '통상적인 업무는 국무총리가 지휘하되 특명사항은 VIP에 절대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비선에서 총괄지휘'한다고 돼 있다. '특명사항'이란 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어떤 명령이 특명이냐는 것은 우문이다. 'VIP·MB·충성심·일심' 같은 말들의 행렬에서 특명이 무엇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때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지낸 이영호씨가 TV 카메라 앞에서 목을 빳빳이 쳐들고 "맞습니다. 제가 몸통입니다"하고 외친 이유를 이제 알겠다. 총리실 주무과장이 그를 통해 대통령 또는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비선 보고라인이 정해져 있었다.

2010년 이 사건이 터진 뒤 청와대와 총리실에는 이해하지 못 할 일이 많았다. 총리실 직원들이 증거를 없애려고 관련 자료를 폐기하고, 직원들은 보안을 지킨다고 대포폰을 사용해 청와대와 통화했다. 청와대는 기소된 총리실 장진수 주무관의 입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거액을 안겨주었다. 그 돈이 서민들은 구경도 해 본 일이 없는, 돈 공장에서 막 나온 관봉 돈다발이었다는 사실에 국민은 또 한번 배신감을 느꼈다.

'불법사찰' 몸통이 MB 자신임이 만천하에 드러나

이제는 내부문건까지 유출되었다. 정권말기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도 검찰의 수사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고, 청와대는 "아니다" "모른다"로 일관하고 있다. '일심의 충성심'으로 봉사한 친위대가 비선조직 지휘로 특명사건을 처리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부정하는 표정은 측은하고 딱해 보인다.

이 문건의 유출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몸통이 이명박 대통령 자신임이 입증되었다. 더 이상 모른 체, 아닌 체 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사건의 당사자로서 침묵과 부정으로 고비를 넘기려는 태도는 비겁하다. 과오를 인정하고 양해를 구하려는 노력 없이 평화로운 '하산'을 기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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