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 관악기 전문 레메니악기사 박창순 대표는 1975년 사회 첫발을 악기와 시작했다.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었던 박창순 대표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올라가 악기제조 공장에 취업했다. 그러나 곧 손재주를 인정받아 현악기 모든 부분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혔다.
박창순 대표는 “내 이름으로 된 악기점을 1983년 7평짜리 제조공장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그 때의 설렘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후 100평, 200평 늘려가며 사업이 번창했죠”라고 회고한다.
그러나 IMF의 시련은 박창순 대표에게도 다가왔다. 오히려 고난은 박창순 대표의 열정을 악기에 쏟게 만들었다. 좀 더 좋은 소리를 만드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한 박창순 대표는 연주자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힘들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기술적인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금도 현악기의 조임에 관한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준비하고 있다.
박창순 대표는 “37년 동안 현악기를 만들며 살아왔습니다. 부드럽고 고운 나무를 찾아 더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지내다 보니 세월이 흘렀네요. 강원도가 고향이라 이제 원주에서 남은 열정을 다하려고 합니다. 서울생활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 수제현악기를 만들 시간이 많아져서 행복합니다”라고 한다.
한 직업을 40여년 유지 할 수 있는 것은 현대인들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 일지 모르나 우리 사회 한 쪽에서는 외길을 고집하며 전문인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박창순 대표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
신효재 리포터 hoyjae@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