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근/대한상공회의소/상근부회장
경제는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후보는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로 재선에 나선 조지 부시 대통령을 꺾고 당선됐다. 논어에서도 정치를 '식량을 충분히 쌓고(足食) 군사를 충분히 보유하고(足兵)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民信之矣)'이라 한 것을 보면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한편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르도가 '경제학(Economics)' 대신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러한 상호 관계를 보여준다.
선심성 공약과 연속성이 결여된 정책들
2012년은 정치의 해다. 올해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선거가 있지만 우리도 4월 총선에 이어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20년만에 입법부와 행정부가 함께 바뀌는 해답게 대중매체에는 정치 뉴스가 넘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정치를 바라보는 기업인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20년만에 양대 선거가 겹친 탓 불확실성이 커진 점을 고려하더라도 불안의 체감도가 크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선심성 공약과 연속성이 결여된 정책들이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인을 대상으로 지난 3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선거가 예년보다 경제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 56%로 과반을 넘었다.
정치는 국가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최근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BRICs 국가 중 고성장을 구가해 온 인도의 경제성장 마법이 풀려가고 있다는 기사를 냈다. 그 원인으로 이코노미스트는 인도의 정치를 지적했다. 개혁에 미온적인 정부, 당리 당략에 휩쓸리는 의회, 그리고 심각한 부정부패 때문에 2004∼2007년 평균 9.5%를 기록했던 인도 경제의 성장률이 지난해 4분기에는 6.1%로 급락했다.
이웃의 일본도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은 작년에 31년 만에 2조5000억엔의 무역적자를 기록하며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을 우려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인 국가부채를 줄이고 경쟁력 회복을 위해 경제개혁을 단행하려면 정치개혁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20년째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1년마다 바뀌는 총리와 불안정한 정치가 일본의 환골탈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늘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니다. 유로존 위기 속에서도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독일을 보자. 2005년 12.5%를 기록했던 실업률은 현재 5.7%로 통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독일 국채의 금리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경우보다 낮아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금융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가능케 된 데는 정권교체 여부에 관계없이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온 개혁정책과 정치적 안정이 큰 기여를 했다.
국민소득 2만불 수준에서 주저앉느냐
한국은 지금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달성한, 세계 현대사의 드문 사례로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느냐 아니면 국민소득 2만불 수준에서 주저앉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기업들도 선진사례를 좇아 빠르게 성장해 온 추격자(Fast Follower)의 입장에서 새로운 가치 창출과 제품 개발을 선도하는(First Mover)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에 있다.
정치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 올바른 정치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고 단합을 이끌어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가능케 한다. 좋은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경제의 적인 불확실성을 줄여 주는 정치, 당장은 쓰더라도 장기적으로 국민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는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책임 정치가 필요하다. 올해 우리에게 '문제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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