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인/희망제작소 대표
지난달 국제수로기구(IHO) 총회를 앞두고 벌어진 '미국 교과서의 일본해 표기를 동해 표기로 바로잡자'는 온라인 청원운동이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를 다운시킬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쉽게 소기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일본해 표기를 현행대로 유지하자는 일본 정부의 주장도 관철되지 못했다.
미국은 처음부터 '합의되지 않은 부분은 기존 표기대로 유지하자'며 일본 입장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은 이를 '맹방 미국의 배신'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이 한·일 외교현안에서 일본을 편든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러스크 서한'이다.
"독도, 또는 다케시마 내지 리앙쿠르 암(岩)으로 알려진 섬에 관해서는, 통상 무인(無人)인 이 바위섬은 우리의 정보에 의하면 조선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결코 없으며, 1905년경부터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 지청 관할 하에 있다. 이 섬은 일찍이 조선에 의해 영유권 주장이 이루어졌다고는 볼 수 없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7월 19일 이승만 정부는 미·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한국영토 조항에서 독도가 빠진 것을 발견하고, 제7차 협상의 초안처럼 독도를 다시 기재해 달라고 미 국무부에 요청한다. 그러나 미 국무부 극동담당차관보 딘 러스크는 8월 10일자 서한에서 수용불가 뜻을 밝힌다.
그 뒤 미 국무부 비밀문서들은 '러스크 서한을 통해 독도는 일본 영토가 됐다'고 썼다. 그리고 미·일행정협정에 따라 설립된 합동위원회는 1952년 7월 독도를 주일미군이 사용하는 폭격 훈련구역의 하나로 지정한다. 하지만 '러스크 서한'은 원천 무효라는 게 독도문제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의 의견이다.
'러스크 서한'은 일본 편든 대표적 사례
2차 대전 종전 후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을 작성하는 역할을 맡았고, 연합국 대표 11개국으로 구성된 극동위원회가 이 초안을 검토해 합의되는 대로 하나씩 조약(안)으로 확정했다.
그런데 호사카 교수가 미국의 다른 비밀문서에서 확인한 바, 러스크 서한은 비밀리에 한국 정부에만 송부됐고 일본에 보낸 적도 없으며 다른 나라에도 공표된 바 없다. 즉 극동위원회에서 검토나 합의를 하지 않은 채 미국만의 견해를 마치 연합국 전체의 공식 견해인 양 꾸며 한국 정부에만 보냈다는 것이다. 실제 러스크 서한은 1978년 4월 미 국무부가 외교문서 비밀을 해제할 때 비로소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에 단신 보도로 일부 내용이 공개되었고, 존재와 전체 내용은 1994년에야 츠카모토 타카시(塚本孝)에 의해 일본에 소개됐다.
불편한 진실 하나. 이승만 정부의 초안 수정 요구를 받은 미 국무부는 양유찬 주미 한국대사 등에게 독도의 위치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대사관 직원들은 "독도는 울릉도 혹은 다케시마 가까이에 있는 섬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1951. 8. 3. 국무성 메모)
독도와 다케시마를 다른 섬으로 착각한 엉터리 답변이다. 나흘 뒤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국무부 고문이던 덜레스 대사에게 서한을 보내 "지리학자 뿐 아니라 한국대사관에서도 독도와 파랑도(지금의 이어도)의 위치를 확인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 섬에 대한 한국 주권을 확실히 해달라는 요구를 고려하기 어렵다"(8. 7.)고 밝힌다. 그리고 사흘 뒤 러스크 서한이 한국대사관에 전달된다.
더욱 불편한 진실. 일본은 러스크 서한의 존재를 확인한 뒤 외무성 사이트와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포인트' 등 각종 홍보물을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주장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 근거로 활용
반면 우리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국민 대다수는 러스크 서한이 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지난해 가수 김장훈이 개설한 '독도의 진실' 사이트에서 호사카 교수 글은 삭제되었다.
"이런 사실을 밝히면 한국 국민들 사이에 반미감정이 일어날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감출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물론 대한민국이 '러스크 서한' 같은 문서가 나오지 않도록 덜레스와의 회담을 통해 1905년 이전에 한국이 독도를 영유했다는 사실을 증빙자료와 함께 증명했어야 했다. 한국이 반성할 점은 이런 점일 것이다."
(호사카, '대한민국 독도' 2010년)
여러 모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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