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프레시안 이사
책은 저자가 끊임없이 깨달음을 향한 구도자의 고뇌를 설파하면서도 스스로가 참여한 민중불교운동 등을 소개함으로써 불교가 역사에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석가탄신일을 얼마 앞두고 스님들의 엄청난 일탈이 적나라하게 폭로됐다. 양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포커를 치는 납자(衲子)의 모습.
구도자의 모습이라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막힌 동영상으로 인해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은 '부처님 우신 날'이 되어버렸다.
조계종으로부터 멸직(승적 박탈) 당한 스님은 문제의 동영상을 검찰에 제출한 뒤 더욱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고위직 승려들이 룸살롱을 출입해 성매수를 하고 은처(숨겨 놓은 부인)까지 있다고 추가로 폭로한 것이다.
아울러 조계종 총무원장 등 종단 집행부의 비리가 담긴 메가톤급 폭로가 이어질 것이라는 소문마저 무성하다. 조계종은 폭로를 주도하고 있는 스님을 고소하고 그의 과거 비리를 흘리고 있다.
이 볼썽사나운 맞불작전을 보면서 한국의 불교가 정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참담한 심경이 된다.
남한 인구의 20%에 이르는 1000만명이 불자라 하니 불교는 대한민국 최대의 종교인 셈. 그런데 불교가 중생을 계도하기는커녕 저자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으니 씁쓸할 뿐이다.
과연 한국 불교는 위기인가? 불교에 희망은 없는가?
여기 불교에 관한 책 두 권을 펼쳐보자.
◆'선방일기'(지허 스님 지음, 불광출판사, 9800원)
선방일기는 1970년대 초(?) 오대산 상원사에서 동안거(冬安居) 보름 전(10월 1일)부터 마지막날(이듬해 1월 15일)까지 대중(스님)들과 지낸 일상을 적은 일기다. 앞부분은 겨울채비에 가장 중요한 작업인 김장 울력(노동)과 메주 만들기, 그리고 장작 준비 등에 관해 기술했다.
김장 울력에서 저자는 검약 정신을 톡톡히 체험한다. 상원사 최고 어른인 조실 스님이 버려진 시래기 속을 자꾸만 휘저으며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식물로 되기까지 인간이 주어야했던 시간과 노동을 무시해 버릴 순 없잖아요."
김장과 메주 만들기가 끝난 후 절에 도착한 대중들이 장작 패기를 하는 불문율이 있다는 것도 산문의 정연한 질서를 보여준 사례.
드디어 각처에서 모인 36명의 대중이 각자 소임을 받고 동안거에 들어간다. 저자는 땔감을 담당하는 부목(負木). 조실 스님의 첫 법문이 끝나니 시간표가 나왔다.
기침(오전 2시30분), 참선, 조공, 참선, 오공, 참선, 약석, 참선, 취침(오후 9시 30분)의 동안거는 병영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단조로움의 연속. 하지만 선방도 사람 사는 곳이라 얘깃거리가 적지 않다.
견성(見成)을 빨리 이루기 위해 생식을 한다거나, 하루 한 끼만 먹는다거나, 묵언수행, 장좌불와를 하는 등의 독특한 수행방식을 택한 스님이 있는 가하면, 이과 출신과 문과 출신이 각기 육체 우위론과 정신 우위론으로 갑론을박하기도 한다.
스님들이라고 짓궂지 않을까. 기나긴 겨울밤 잠은 안오고 주전부리할 거라곤 감자밖에 없으니 알불만 남은 아궁이에 고방에서 훔쳐온 감자를 넣었다 빼 입언저리가 새까맣도록 먹어제끼곤 한다.
하지만 동안거의 핵심은 역시 참선이요, 참선의 요체는 화두다. 저자는 화두가 철학적 명제가 아닌 종교적 신앙이라고 못박는다. 각자 화두를 놓고 용맹정진하는 가운데, 저자는 지객이라는 스님과 속 깊은 대화를 한다. 인간 실존, 108번뇌, 그리고 열반에 관하여.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은 생명이 단절된 죽음의 저편에 따로 존재하는 세계를 말함이 아니고…."
"완성된 인간이 곧 신이 아닐까요. 그래서 인간의 의식이 가능했던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신이 창조되고 군림했던 게 아닐까요?" "전지전능하다는 신을 동경하고 메시아 재림을 가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런 시일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은 자유 없는 꼭두각시에 불과합니다."
그러고도 끝내 결론을 내지 못한 둘은 "좀 더 화두에 충실하자"는데 의기투합하고 산문을 내려간다.
이 책은 일기 형식으로 구성된 120쪽의 비교적 짧은 글이다. 저자로 알려진 지허 스님도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 명문대를 나왔다는 소문이 있으나 확인할 수 없고 1975년 입적했다는 설 또한 확실치 않다. 가장 확실한 것은 작은 책 속에 담긴 담론, 그리고 스님들의 민낯에 관한 일화들이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깨달음과 역사'(현응 스님 지음, 불광출판사, 1만3800원)
저자가 사제(師弟:법계상 아우뻘 되는 이)에게 보낸 서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자연 상당히 깊은 불교 담론이 설파되고 있다.
예컨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애매모호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문명인들을 그토록 비극적으로 분열시켜 놓은 현대의 도덕적 파탄은 인문 과학의 붕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월터 리프먼의 명언을 제시함으로써 명쾌하게 해석해 버린다.
그런가 하면, 불가의 오랜 쟁점 중 하나인 돈오점수설과 돈오돈수설을 놓고는 책 제목인 깨달음(bodhi)과 역사(sattva)가 무엇인가를 설명함으로써 논쟁에 접근한다. 그러면서 깨달음과 역사(또는 중생), 즉 보디사트바(보살)은 대승불교의 압권이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바로 보디사트바적 관점에서 두 가설은 각기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 결국 깨달음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수행은 선종의 가풍을 살려가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책은 저자가 끊임없이 깨달음을 향한 구도자의 고뇌를 설파하면서도 스스로가 참여한 민중불교운동 등을 소개함으로써 불교가 역사에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스무살 해인사 사미 시절, 춘정을 못이겨 초등학교 여교사 방에 난입을 시도했던 부끄러운 과거 등을 회고하는 에세이 몇 편까지 실려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불교계에서 20세기 가장 중요한 저작물 중 하나로 꼽힌다는 이 책은 1990년에 펴냈다 절판 된 것을 3년 전에 다시 펴낸 것이다. 저자는 불교단체 활동을 오래 하다 현재 조계종 교육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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