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칼럼] 눈먼 자들의 정권

지역내일 2012-05-21
민병욱 언론인 · 전 동아일보 정치부장

그러나 어쩌랴. 전국시대 도둑의 말처럼 "오로지 금을 쥐겠다는 생각만 하면 금만 보이지 사람(국민)은 보이지 않는 법"이니…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남송 때 선승 허당 스님이 내놓은 법어, '축록자 불견산(逐鹿者 不見山)'이 바로 그 말이다. 법어는 다음 연, '확금자 불견인(攫金者 不見人)'과 합쳐져 "사람이 눈앞의 이익과 권력만 쫓다, 지킬 도리나 주변 위험을 알아채지 못하는 걸" 경고하는 말이 됐다.

뒤에 붙은 '확금자…'는 "돈을 훔쳐 움켜쥐려는 자에겐 다른 사람이 감시하는 게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전국시대 어느 도둑이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는데도 금을 훔친 이유를 묻자 "오로지 금을 쥐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사람은 안 보이고 금만 보였다"고 대답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1000년도 더 지난 옛 중국의 고사와 같은 일이 지금 고스란히 벌어지고 있다. 아니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탐욕과 권세욕이 매우 치사한 양태로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심장부, 국가를 대표하고 우리 정치의 최 정점이 돼야할 대통령과 그의 주변에서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자행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 지원관실에서 만든 이른바 '지휘체계' 문건을 보면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권력유지를 위해 법치주위, 민주주의 도리를 외면하면서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VIP(이명박 대통령을 지칭)에게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만든다"고 돼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특명사항'을 수행하는 '절대충성, 비선, 친위조직'이라고 지칭했다. 대통령을 보필하는 공직자가 아니라 거의 조폭두목을 받들어 모시는 듯한 의식수준이다.

국민 겁주면서 거액 뇌물 챙겨

그런 그들이 한 일이라는 게 "MB정책기조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저항하는 인사를 뒷조사해 쫓아내는 것"이었다. 누구든 VIP심기에 거슬리고 정권 걸림돌이라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잘라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처럼 '권력유지를 위해 어떤 일도 한다는' 충성문서를 만든 이들이 진짜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이들을 실무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박영준 전 총리실국무차장은 지난 주 파이시티인허가와 관련해 억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정가에선 현재 드러난 혐의는 빙산의 일각일 뿐 포스코의 시공사선정 등 엄청난 금전비리에 더 연루돼 있을 것이란 설이 파다하다.

그와 함께 정권 3대 실세로 불리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역시 파이시티비리와 관련해 구속됐다. 여기에 대통령 형이자 실세 중 실세로 꼽히는 이상득 의원도 조만간 여러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을 것이란 설이 유력하다. 이른바 '영포라인', 즉 대통령 고향인맥들로 채워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들 '3인 주주'의 지시로 움직였다는 설이 새삼 흘러나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그러니까 이 정권 핵심실세들은 무소불위 권력을 국민 불법사찰 같은 데 써 겁을 주면서 다른 손으로는 거액의 뇌물을 챙기며 잇속을 채웠다는 얘기다. 법도, 국민도 보지 않고 오로지 권력에 도취되고 또 돈에 눈이 멀어 한껏 국정을 농단했다는 말이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작년 연말 대학교수들은 2011년의 사자성어로 '엄이도종'(掩耳盜鐘)을 꼽았다. 사직의 종을 훔치러 간 도둑이 깨서 가져가려고 망치로 종을 쳐 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들을까 두려워 제 귀를 막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제 귀만 막으면 된다는 식의 어리석음에 빗대 이 정권의 몰염치와 소통부재를 꼬집은 말이기도 했다.

잘못 저지르면서도 제 귀만 막아

사실 재작년부터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비리가 끊임없이 불거지는 와중에도 대통령은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주장하는 등 '엄이도종'의 모습을 보여 왔다. 야당과 국민, 심지어는 여당 내부의 줄기찬 의혹제기와 비판에도 눈과 귀를 막고 딴소리만 한 것은 혹시 공직윤리지원관실 같은 '일심으로 충성하는 친위 비선조직'의 보고에만 의존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5년 후, 아니 3~4년이면 사실상 놓게 될 권력을 언제까지나 행사할 듯 설치며 돈에 눈이 멀었던 이 정권실세들의 추악상은 앞으로도 계속 터져 나올 개연성이 크다. 그들이 권력과 돈 노름을 하는 동안 전혀 그들 눈에 띄지도 않던 국민은 또 그때마다 분을 삭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전국시대 도둑의 말처럼 "오로지 금을 쥐겠다는 생각만 하면 금만 보이지 사람(국민)은 보이지 않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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