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번역가
"4대강 사업으로 비 피해가 거의 사라졌습니다"라는 대통령의 히트발언이 가뭄이 한창일 때에 나온 것은 폭우와 홍수의 와중에 "이제 물 부족 현상은 없어졌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의미심장하다. 아하, 우리는 이제 국민을 천치로 아는 위정자 밑에 살고 있구나 하는 서글픔도 느껴진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말이 하도 많이 나와서 이젠 온천지가 손바닥으로 가득하다.
정부 발표와 통계까지도 의심스러워진다. 50~60대의 비정규직 취업이 늘어 고용 지표를 끌어올리고 조사대상 품목 조정으로 물가 상승률은 끌어내려 모든 지표를 '수학적으로' 안정시킨 것도 업적이라면 업적이다. 그래도 불안하다. 사방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중산층의 몰락은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중국 속담처럼 "길바닥을 파면서 내리막을 굴러내리는" 마차 같은 굉음이 들려온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 "먼저 먹으면 후 답답" 같은 한국 전래속담은 빚이란 개인의 경제관념과 과소비 습관 탓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래선지 실직, 대출, 차압, 유리걸식(노숙자), 심하면 자살로 이어지는 오늘날 한국 사회 가계부채의 혹독하고 잔인한 밑바닥 풍경보다는 왠지 한가하게까지 들린다.
증권계의 실력있는 애널 출신 퇴직지점장이 어느 아파트 경비원이 되었다는 소식, 동네 병원장이 친구 목장 잡역부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 같은 건 이제는 하도 많아 뉴스도 못된다. 취업난 시대 재취업을 위해 '눈높이를 낮춰라'는 충고와 함께 언론에 소개되는 퇴직자의 더 심한 경우도 많지만, 나는 그런 사례를 인간승리처럼 보도하는 것조차 개인적으로 반대다. 애널 전성시대에 그만한 인재가 경비원이 된 것은 경비직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빚에 몰려 이자라도 내기 위해서, 생계비 조달의 한계에 이르러서 그런 것 아닌가.
가계부채 911조원 시대 실감
그건 나라가, 경제 제도가, 사회 구조가 뭔가 잘못된 것이고 국가적 낭비라 여겨지며, 무조건 가슴이 아프다. 그들의 경제적 인간적 상처에 대한 절절한 실감 때문이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3월말로 911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가계부채 폭탄'이 스페인이나 다른 나라의 문제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시한폭탄이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2008년 미국의 부동산거품으로 인한 금융위기가 지금까지 세계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한국도 엄청난 가계부채와 바닥을 친 부동산 경기로 위기설이 파다하다.
부동산 열풍이 몰아치던 5~6년 전 빚을 내어 산 아파트의 담보대출로 또 다른 아파트를 사는 방식으로 51채까지 아파트를 사들인 사람도 있었다지만 그런 부자들이 과다한 대출 때문에 몰락했든 종합부동산세 실시 후 어떤 방식으로 빠져나갔든 나는 관심이 없다. 문제는 내 집 마련이나 집을 늘리기 위해 빚을 냈다가 과도한 부채를 안고 허둥대는 사람들, 특히 구조조정이나 정년퇴직 후 생계형 대출로 연명하고 있는 엄청난 인구다.
평생을 임금노예로 살다가 이젠 원금은 고스란히 안은 채 이자를 벌기 위해 아무 일에나 몸을 던져야 하는 사람들 …. 급기야는 고층 아파트나 바위 벼랑에서 실제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구제될 아무 희망이 없는 판에 스페인에서 부동산과 저축은행 PF폭탄이 터져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54.9%로 스페인의 140.5%보다 높은 데도 정부는 정부대로 무서운 속도로 부채를 늘여 공기업 부채까지 하면 1160조원으로 GDP의 100%(기획재정부발표)가 된다니 미래까지 암담하다.
'임금노예'에서 '이자 노예'로
가뭄에 비 피해가 없다고 말하는 정권이니 저축은행 서민 피해자들이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같이 회사의 복직약속 불이행으로 개인과 가정이 철저히 파탄이 난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가 눈에 들어올리 없다.
자영업자의 몰락과 노점상화, 노점주나 자동차 행상의 지하철 잡상인화, 거기에서 다시 구걸자로 내려가는 판에 정부가 한일은 고작 경범죄처벌법을 개정해서 내년부터 '잡상인과 구걸자를 처벌'하도록 한 것 뿐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은 가려도 "잡상인의 물건, 사지도 팔지도 맙시다"라는 지하철 경고문이나 붙이며 생계형 밑바닥 생활자를 처벌해서 경제를 되살릴 수는 없다. 몰락자 인구의 이 엄청난 상처와 분노를 어떻게 할 셈인가? 신자유주의와 시장(市場)을 신으로 모시는 나라님께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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