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원/휘문고 교사/전국학부모지원단 고문
2012수학능력시험에서 언어와 수리, 외국어영역에서 만점을 받고, 과학탐구영역에서도 2개밖에 틀리지 않아 545점을 받은 수험생이 있었다. 수능이 쉽게 출제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점수를 받은 수험생은 전국적으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학생은 수시모집에서 2개의 대학을 지원했으나 모두 떨어졌고, 정시모집에서도 자신이 원하던 A대학에서 떨어졌다. 시험 운이 모질게도 없는 학생이다. 그러나 수능 성적이 520점으로 위의 학생보다 무려 25점이나 낮은 어떤 학생은 A대학 수시 모집에서 당당하게 합격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입학사정관제와 수시모집 특별 전형이 확대되면서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서울대나 카이스트와 같이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이 아예 없거나 매우 낮은 대학에서는 빈번히 나타난다.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은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수능 4개 영역 중 2개 영역 2등급 이내이며, 일반전형에서는 상당수 모집단위가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아예 없다. 학교생활기록부나 자기소개서 등과 같은 서류전형과 면접시험만 통과하면 수능성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대가 수능 성적을 중요하게 활용하는 전형은 정시 모집이다. 정시모집 1단계에서 수능성적으로 2배수를 선발하고, 2단계에서 구술시험 및 논술시험, 학생부성적, 수능 성적 등을 반영하여 최종 선발한다. 그러나 서울대 전체 입학정원 3124명 중 고작 629명만을 선발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화학부나 건축공학과와 같이 수시모집에서 100% 선발하고 정시모집에서는 아예 선발하지 않는 모집단위도 많다. 즉, 서울대 정시모집은 수시모집에서 탈락한 수험생들이 벌이는 패자부활전에 불과하다.
수능 성적을 중시하지 않는 서울대 전형
그러나 다른 대학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여전히 수능 성적이 가장 중요한 전형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연세대는 수시모집 일반전형에서 인문계는 수능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 모두 1등급인 수험생 중에서, 자연계는 수리<가>와 과학탐구 영역 1등급인 수험생 중에서 논술과 내신 성적으로 모집인원의 70%를 우선 선발한다. 일단 수능 성적이 좋아야 논술성적이든 내신 성적을 보겠다는 것이다. 정시모집에서는 수능 성적만으로 모집인원의 70%를 우선 선발하기도 한다.
고려대도 수능 성적을 중시하는 것은 연세대와 다르지 않다. 경영대 등 인기 모집단위에서는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 모두 1등급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자연계도 수리<가> 1등급, 외국어와 과학 탐구영역 중에서 1개 영역이 1등급인 수험생을 대상을 모집 인원의 60%를 우선 선발한다.
정시모집에서도 모집인원의 70%를 수능 성적순으로 선발한다. 성균관대나 서강대, 이화여대 등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들도 연세대나 고려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수능 성적을 각 전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2013학년도 입시부터 사정관제전형을 대폭 확대한 서울대와 다른 상위권 대학의 전형 구조가 크게 달라 일선 학교에서는 목하 고민에 빠져 있다. 대학입시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서울대를 선택한 수험생들은 수능 준비보다는 서류 준비와 구술 면접시험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입시를 책임져야 할 일선 고교는 서울대를 실패했을 경우도 대비해 줘야 한다. 성공하는 학생보다 실패하는 학생이 몇 배나 많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학교와 학부모
하지만 서울대와 다른 대학 전형 간에 공통분모가 그리 많지 않다. 일선 학교에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묘법이 딱히 없는 것이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학교가 포기하면 밖으로 빠져나가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형성할 것이다. 공교육의 역할은 줄어들고, 학부모와 학생의 부담은 가중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각 대학별로 대입전형 방법이 자율화되면서 일선 고교는 물론 수험생과 학부모들까지 대입 준비가 힘들어지고 있다. 물론 자율화에 따른 다양화가 수능 성적으로 대학이 서열화 되는 구조를 깰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다양화가 이제 공교육을 약화시키고, 학부모와 수험생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단계에 왔다. 차기 정권을 준비하는 정치권에서도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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