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준/동아대 교수/정치외교학
얼마 전 필자의 수업시간에 미국의 유명한 핵전문가를 초대했다. 그는 핵 안보, 동북아정세, 그리고 북핵위기에 대해서 강연을 했는데 학생들을 향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삼성생명과 북한의 공통점은? 그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도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했는데, 학생 한명이 자신 있게 손을 들고 말했다. "둘 다 '삼대세습'입니다!" 머리가 띵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연사가 기대한 답은 북한의 총생산과 삼성생명의 매출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북한은 비록 핵을 개발하지만, 남한과의 국력차이가 너무 커 북한의 도발은 곧 정권의 자멸을 의미한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다. 그러나 미국 전문가와 한국 대학생은 재벌에 대해 건널 수 없는 시각차를 가지고 있었다. 전자는 재벌을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보고 있고, 후자는 재벌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보았던 것이다. 어떻게 젊은 학생들이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재벌을 악의 축인 북한과 유사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
양극화는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질병
20대 대학생은 분명 미래의 주인공이지만, 이들은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엄청난 양극화의 위화감부터 느끼고 있다.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했지만, 소수의 선택받은 학생만이 재벌의 일류회사에 취업하고 대다수 학생은 월급이 절반밖에 안 되는 중소기업에 취업해야 한다.
나머지는 부모님 눈치 보며 취업 재수, 삼수에 들어간다. 그나마 몇 년 이내에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동료 문화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영원히 취업이라는 열차를 놓치게 된다. 그리고 하층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다. 날로 깊어만 가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 위협은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양극화는 1997년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고 그 진행 속도는 빨라지고 범위는 넓어지고 있다. 서민을 대변한다는 민주당이 집권한 10년 동안에도 진행되었다. 기업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정부는 성장을 통해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창출하기는커녕 그들을 '중소기업 외면하는 게으름뱅이'로 몰아쳐서 심리적 양극화마저 진행시켰다.
정권의 혜택을 받은 재벌은 이윤을 주변으로 적셔주는 낙수효과를 제공하기는커녕 골목상권마저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이제 양극화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이자 언제 터질지 모를 시간폭탄이다.
2002년 지구의 정반대 쪽에 위치한 한국과 브라질에서 서민의 권익을 대변하겠다고 공언한 개혁정권이 동시에 탄생했다. 한 정권은 처음은 요란하게 출발했지만 나중엔 숨을 곳을 찾았고, 다른 정권은 시작은 서툴렀지만 마무리는 완숙했다. 한국의 노무현 정권은 많은 기대속에 출발했지만 임기말 지지율이 12%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반면에 브라질의 룰라는 임기 말에 87%의 경이적 지지율을 세우며 명예롭게 퇴장했다. 전자는 정권을 보수 세력에 넘겨주었지만, 후자는 차기 정권을 창출했다.
룰라는 어떻게 선거에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집권에도 성공했는가? 룰라의 성공 방정식은 의외로 간단했다. 세계 최악의 양극화를 물려받은 그는 중산층을 늘렸던 것이다. 룰라가 집권하는 동안 브라질 국민의 10%가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계층 이동을 했다. 브라질에서 중산층이 두터워지자 빈부 격차는 줄어들었다. 소비가 늘어나고 기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선거라는 형식의 '승리'보다 집권이라는 내용에서 '성공'해야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정권이 선거라는 형식에서만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이라는 내용에서 '성공'해야 할 것이다. 선거는 달콤한 약속을 통해 순간적 민심을 잡으면 승리할 수 있겠지만, 집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터운 중산층을 키워야 한다.
사회계층간 소득의 양극화, 중앙과 지방의 양극화,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양극화. 이것이 다음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한국 사회의 과제인 것이다. 이제는 당선 때의 지지율보다 더 높은 지지율로 퇴장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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