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기/세계무역기구(WTO)참사관
한미 FTA 협정이 금년 3월 15일자로 WTO에 통보되었다. 지금 WTO 사무국은 이 협정문을 분석하고 있는 중이다. 분석이 완료되는 대로 회원국에 배포하고 11월경에 WTO 지역통상협정위원회에 상정, 한-미 협정문이WTO 협약 (GATT 제 24조)의 요건을 갖추었는지 심의할 예정이다. 언론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지난 6월 19일 한-EU FTA 협정문도 이 위원회의 심의를 받았다. 호주,캐나다, 대만, 멕시코, 일본과 미국이 한-EU 협정문을 상세하게 분석하여 총 60개의 의문점을 제기하였다. 제기된 의문점이 해소될 때까지 당사국은 문서로 협의를 계속하게 된다.
필자는 그동안 한국이 맺은 FTA의 가장 큰 문제점은 원산지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서 한-미 원산지규정은 미국 체제를 따르고, 한-EU원산지규정은 EU 체제를, 한-아세안 원산지규정은 아세안 체제를 따르고 있다. 이 규정들은 서로 전혀 달라 수출업자들이 특혜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수출국에 따라 생산공정을 바꾸어야 할 판국이다.
세계 원산지 규정 '각축전'
예를 들어 해외에서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소주를 보자. 비단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애주가도 늘어가고 있는 소주는 외국에서 주정을 수입, 국내에서 희석하여 만드는 것이다. 한-EU 원산지 규정에 따르면 이렇게 만든 소주는 한국산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한-아세안 규정에 따르면 국내에서의 부가가치가 40% 이상이 되어야 한국산으로 인정된다. 희석과정을 통하여 부가가치가 40%나 증가할 수 있을까? 한-미 원산지 규정은 발빠르게 소주에 관한 특별규정을 두었다. 수입주정을 희석해서 소주를 만들면 한국산으로 인정하도록 되어 있다. 정부가 잘 대응한 것이다.
정부는 한-중-일 FTA를 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삼국에 공동 적용될 원산지 규정에 대해 정부가 대체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보면 미국과 EU는 FTA를 맺을 때, 모두 자국의 체제를 고집하였다. 협상상대국은 약자의 입장에서 이 주장을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양측의 세력범위에 따라 미국 체제 혹은 EU체제가 적용되고 있고, 한나라가 두가지 원산지규정을 동시에 적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최근에는 중국까지 이 각축전에 뛰어 들어 원산지 삼국지가 전개되고 있는 양상마저 보인다. 전 지구가 잘 섞어놓은 스파게티 국수발처럼 각기 다른 원산지 규정으로 얽혀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바그와티 교수가 표현한바 있다.
최근 미국과 EU가 FTA를 맺을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시작하였다. 가장 큰 걸림돌은 원산지 규정이 될 것이다. 과연 미국과 EU가 통일 원산지에 합의할 수 있을가에 대해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거리측정을 위한 기준인 미터와 피터를 통일하지 못해 각기 달리 쓰고 있는 사람들이 기적이 아니면 어떻게 통일 원산지를 만들 수 있을까.
세계무역 동양이 이끌 수도
WTO는 '국가간에 상품이 흐르지 않으면 탱크가 굴러간다'는 교훈에 따라 설립된 기구라는 것을 새삼 상기하게 만든다.
한-중-일 FTA 협상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원산지 전쟁을 진정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도 생각된다. 멋진 한-중-일 원산지 규정이 만들어 지면 모든 FTA원산지 규정을 이 모델에 따라 통일하자고 제의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무역은 이제 동양이 이끌어 간다고 선언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모양새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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