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와대는 심리적 무장해제 상태다. 대통령 친형이 구속된 데 이어 제1부속실장까지 저축은행 비리연루 의혹으로 사직했기 때문이다. 참모들 사이에는 '어디까지 무너져야 측근·친인척 비리가 끝이 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가득하다. 대통령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친형인 이상득 전의원이 구속된 것은 11일 새벽, 김희중 실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13일이다.
그러나 이 전의원이 소환된 것은 3일이고, 소환 방침이 알려진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이다. 사실상 중남미 순방을 마친 후부터 3주 가까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셈이다. 참모들을 통해 대국민 사과를 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부지하세월'이다. 이 전의원이 소환되던 때도, 구속되던 날도 다 넘겼다. 이 전의원이 기소될 시점이 사과시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그 사이 또 다른 비리의혹(부속실장)이 터졌다. 사과를 하더라도 이제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야 할 처지다.
최근에 이 대통령의 여름휴가 전에 대국민담화 형식으로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침묵하고, 청와대 핵심참모들은 "고민 중"이라는 말밖에 없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사과인 만큼 시기나 방법, 형식에 대해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차일피일 시간을 끄는 동안 민심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대통령 친형이 구속되고, 최측근까지 줄줄이 비리에 연루된 마당에 정치적 이해득실이나 효과를 따질 처지가 아니라는 의미다. 현정권 초기부터 각종 잡음이 들리던 이상득 전의원을 감싼 것이 대통령이고, 비리에 연루돼 줄줄이 옷을 벗은 측근들을 쓴 사람도 바로 대통령이다. 무슨 명분이 더 생겨야 사과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아울러 사과하면 레임덕이 빨라지고, 사과를 하지 않으면 레임덕이 늦춰질 것이라는 생각도 오판이다.
민심이 떠날 때 레임덕은 오는 것이다. 오죽하면 여당인 새누리당도 '이제는 청와대가 다 안고 가기만 바랄 뿐'이라며 진저리를 칠까. 결국 최근 일련의 사태는 정치적 참사에 가깝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잘못된 상황인식과 참모들의 직언 부재가 한 몫을 했다. 참사가 났는데 머뭇거릴 여유는 당연이 없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사과할 때를 놓치는 실기(失期)가 민심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잃어버리는 실기(失機)로 이어질까 안타까울 뿐이다.
정치팀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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