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국민은행 인재개발원 팀장
우리는 알게 모르게 두터운 고정관념에 갇혀 산다. 사람을 알기도 전에 외모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단정해버리거나 어떤 대상에 대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막연히 그럴 것이라고 지레 짐작해버린다. 맞벌이에 대한 고정관념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맞벌이가 홑벌이 보다 2배로 버니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맞벌이 부부를 가리켜 작은 중소기업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을 보면 의의로 홑벌이 가정이 맞벌이 가정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맞벌이라고 해서 홑벌이 보다 형편이 나을게 없다는 얘기다. 소위 맞벌이의 역설이다.
이런 사실은 통계수치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일전에 한국신용정보가 맞벌이의 역설을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20~40대 맞벌이·홑벌이 부부를 상대로 소득과 총자산(부동산 포함)을 비교해 보았다. 예상대로 맞벌이부부는 연평균 소득이 7000만원~1억 원인 경우가 전체의 17.1%, 1억 원 이상인 경우는 6.2%로 홑벌이 부부에 비해 각각 2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다음은 총자산을 비교해보는 순서다. 소득이 2배 가량 차이나니 자산격차도 그만큼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기 쉽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산이 5억~10억 원인 가정은 맞벌이 부부가 전체의 10.3%, 홑벌이 가정은 9.5%로 엇비슷했다. 자산이 10억 원 이상인 경우도 거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맞벌이가 더 나을 게 없어
결론은 맞벌이에 대한 고정관념은 절반만 정답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버니 아무래도 소득은 많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경제적인 여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앞으로 벌고 뒤로 샌다"는 말처럼 버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쓰기 때문이다.
"둘이 버니까" 라는 느긋한 마음에 혹은 맞벌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돈을 쓸 때 긴장감이 떨어져 지름신의 강림도 빈번하고 씀씀이도 헤퍼지기 쉽다. 예컨대, 홑벌이 가정보다 외식도 잦고 똑같이 외식을 하더라도 비싼 뷔페나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는 식이다.
또 주변에서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맞벌이 하는 마당에 부모님 용돈에 인색할 수 없다. 친구나 가족 모임에 나가도 "둘이 버니까"하면서 한 턱 쏘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얘기를 듣다 보면 분위기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열게 된다.
여기에 아이까지 태어나면 그만큼 돈 쓸 데가 늘어나고 돈 모으기는 더 어려워진다.
나중에는 돈이 어디로 새나가는 줄 모를 정도가 되고 저축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한 마디로'속 빈 강정'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맞벌이 가정은 홑벌이 가정에 비해 재무위험에 보다 많이 노출되어 있다. 만약 부부 중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두거나 실직할 경우 가정경제가 뿌리 채 흔들릴 수 있다. 소득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해서 씀씀이까지 바로 반으로 줄어들지는 않는다. 소비는'하박경직성'을 갖기 때문에 일단 늘어나면 줄이기가 아주 힘들기 때문이다.
돈은 아껴서 모으는 것
맞벌이의 역설이 빚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1+1=2'라는 단순한 숫자놀음에만 빠져있기 때문이다. 소득이 많으니까 가정경제도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에만 기대 살다 보면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기 일쑤고 적자투성이 가계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돈 잘 버는 사람도 잘 지키는 사람은 당하지 못한다. "돈은 벌어서 모으는 게 아니라 아껴서 모으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부 중 한 사람의 소득은 무조건 저축한다는 굳건한 마음의 다짐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소득은 애초에 없었다고 생각하고 나머지 한 사람의 소득만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아끼고 절약하는 소비습관을 들여야 한다. 방심에 빠져 잠을 잔 토끼가 아니라 꾸준한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긴다고 했다. 바로 맞벌이의 역설에서 벗어나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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