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동 논설고문
한국경제에 디플레이션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저성장, 투자위축과 자산가치 하락, 실업증가와 수요위축, 물가하락의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 디플레이션 징후가 역력하게 나타난다. 디플레이션이 현실화되면 가뜩이나 불안한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에 불이 붙는 최악의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진다.
전문가들은 "아직은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그렇다고 먼 장래의 이야기도 아니다"고 진단한다. 대외적인 경제상황 악화와 장기적인 부동산시장 침체 속에서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문턱에 와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경제가 디플레이션의 현실화 과정을 밟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다. 우선 경제성장률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고 전망치도 잇달아 하향조정됐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3.7%(작년 12월) 3.5%(지난 4월)에 이어 이달 들어 3.0%로 낮췄다. 국제통화기금(IMF)도 3.25%까지 내렸다. 내년에는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백화점까지 '떨이 세일'하고 '깡통아파트' 늘어나
세계 교역량도 크게 둔화되고 있다. IMF는 세계경제의 불황으로 올해 교역량 증가율이 2010년(12.8%) 2011년(5.9%)에 비해 크게 둔화된 3.8%로 예상했다. 우리나라 수출증가율도 상반기 2.6%에 그쳤다. 성장을 견인해온 수출 증가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를 기록한 것이다. 원자재 자본재 소비재 수입도 동반감소했다. 국내 투자위축과 내수침체 등으로 수요가 줄어든 때문이다.
자산시장도 가라앉고 있다. 부동산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주택거래량이 30% 이하로 줄었고 가격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서울의 아파트 값은 2년 사이에 20조원이 증발했다. 주식도 1년 새 150조원이 증발했다. 골프 회원권은 4년 새 반토막이 났다. 자산가치가 추락하자 소비심리도 얼어붙는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열지 않는 것이다. 백화점까지도 옷을 무게로 달아 '떨이 세일'을 할 정도로 불황이 심화되고 있다.
디플레이션으로 가는 길목엔 거대한 함정이 도사려 있다.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주택가격 하락은 가계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계부채의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인데 연체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소득이 줄어 원금을 갚지 못하고 이자만 내는 주택담보대출이 77%에 이른다. 이젠 집을 팔아도 빚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른바 '깡통 아파트'가 늘어나는 것이다. 은행 부실화와 가계파산 양산의 전조현상이 아닐 수 없다.
디플레이션은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이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이다. 경제의 저혈압증세다. 물가가 내리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서민가계에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가하락은 경기침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 국면에서는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소비자들은 소비를 줄인다. 따라서 기업매출이 줄고 실업이 늘어나는 악순환 고리에 걸리게 된다. 그 결과 금융기관 부실이 늘어나고 경기침체와 성장둔화가 가속된다. 끝내는 경제기반부터 흔들리게 된다. 'D의 공포'다.
'D의 공포'를 경험한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이다. 1929년 대공황이 대표적인 디플레이션으로 꼽힌다. 주가가 최고가 대비 90% 하락했고 은행과 기업들이 줄도산했다. 산업생산이 반 가까이 줄었고 실업자가 양산됐다. 노동자 4명 중 1명의 실직했다. 혹독한 홍역을 치러야 했다. 글로벌금융위기 직후 2009년에는 소비자물가가 1년간 마이너스 행진을 보여 디플레이션 상황을 겪기도 했다.
저소득층 채무조정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해야
일본은 거의 20년째 디플레이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그동안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대비 200%를 넘어섰다. 재정위기를 앓고 있는 남유럽국가보다 더 하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자리도 중국에 넘겨줘야 했다.
한국은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기는 했지만 실제로 경험하지는 않았다. 허나 이번 경고는 심상치 않게 들린다. 정부가 경기부양책과 부동산경기 회복책을 내놓고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도 D 공포를 미리 차단하기 위한 처방이다. 허나 그 정도로는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보다 치밀한 선제적 대책이 필요하다. 투자 소비 고용시장 활성화대책과 함께 저소득층 채무조정과 부채 만기연장 같은 실효성 있는 장단기대책을 병행 처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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