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겐하임 유치 후 한해 관광객 100만명
도시재생사업 세계적 성공모델로 주목
도시디자인이 광풍처럼 전국 지방자치단체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세계무대에 내놓을 만한 도시를 찾기는 어려운 게 국내 도시들의 현실이다. 도심의 간판 디자인 정도를 바꾸거나 거액의 예산을 들여 세계적인 건축가나 작가의 작품을 세워놓은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수변정비와 도시 공공디자인을 과감히 접목해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도시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1930년대 소설 '정오의 죽음'에서 '무덥고 추한 광산의 도시'로 묘사한 빌바오시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유치하면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문화관광도시로 다시 태어난 얘기는 도시 재생의 신화로 기록됐다.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방문한 스페인 북부지방의 조그만 항구도시 빌바오(스페인어 Bilbao, 바스크어 Bilbo)시의 첫 인상은 '작지만 강하다'였다. 도시재생사업의 세계적 본보기 도시 답게 공항부터가 이색적이었다.
2000년 11월 문을 연 빌바오 공항은 흰 비둘기 날개모양의 터미널 건물에 언덕에 반쯤 파묻혀 있는 공항 주차장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건축계의 모차르트'라 불리는 스페인의 거장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작품이었다.
빌바오시는 면적 41.3㎢, 인구 35만명의 바스크자치지방 비스카야주의 중심도시다. 주변지역을 포함하면 약 100만명의 인구규모로 스페인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다.
이 도시를 여행하다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통역가이드도 모르는 언어가 각종 간판이나 안내판에 병기돼 있다. '빌바오와 빌보'처럼 스페인어와 함께 자신의 고유 언어인 바스크어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바스크인들은 20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인구의 85%가 RH-혈액형을 가지고 있다. '아슬레틱 빌바오'라는 축구클럽은 순수 바스크인 선수만 고집하고 있다.
빌바오는 '바스크 그리고 자유'를 뜻하는 바스크 독립을 위한 무장단체인 ETA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빌바오는 고유민족이 고유언어를 사용하는 비타협적이고 독립적인 도시지만 1980년대 후반 대규모 도시개생사업에 착수하면서 외국의 천재 건축가와 예술가를 대거 불러들여 활로를 모색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산업화의 시궁창' 네르비온강부터 살려 = 빌바오는 비스케이 만에서 불과 10㎞ 정도 떨어진 항구도시다. 영국 프랑스와 교역했고 산업혁명이후 철강과 제철 조선산업이 발전하면서 20세기 초반까지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했던 도시였다. 1970년대 이후 이들 산업의 주도권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에 내주면서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1980년대 철강과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았다. 제철과 조선업의 젖줄 역할을 했던 네르비온강은 시궁창이나 다름없었다. 강물이 범람해 홍수피해도 수시로 발생했다.
바스크 지방자치정부는 도시재생 사업에 앞서 가장 먼저 레르비온강부터 정비했다. 도심을 동서로 흐르는 12㎞ 길이의 네르비온강 정화에만 15년 이상이 걸렸다. 예산도 8억 유로 이상이 들었다. 이 돈은 구겐하임 미술관 건설비의 6배에 가까운 규모였다.
강이 정화된 후에는 본격적인 강변개발이 이뤄졌다. '빌바오 리아 2000'이라는 이름의 빌바오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도화선 = 강변개발의 첫발은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현대미술의 거장인 제프 쿤스의 퍼피(꽃강아지), 루이 부르주와의 거대 거미(MAMAN), 리처드 세라의 스네이크(150피트 규모 뱀모양 철판구조작품) 등의 콘텐츠도 담았다.
1991년 착공해 1997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엄청난 건설비용 때문에 예산낭비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개관 후 연평균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리면서 개관 3년 만에 건설비를 회수했고 5년 만에 모든 투자금을 되찾았다. 10년간 2조1000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려 '빌바오 효과'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빌바오 효과로 표현되는 도심재창조 프로젝트의 성공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명성과 네르비온강을 따라 진행된 도신혁신에서 나왔다. 강변 36만㎡ 부지에 미술관, 컨벤션홀, 음악당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왼쪽 사진은 빌바오시 도심재생의 상징인 구겐하임 미술관. 이곳 시민들은 미술관 외벽의 타타늄 패널이 맑은 네르비온강 수면위에 반사되는 모습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오른쪽 위 사진은 네르비온강변공원. 산업화 후유증때문에 죽음의 강으로 변한 도심하천을 정비하고 수변에 공원과 문화예술작품 등을 배치해 네르비 온강변을 시민통합과 소통의 장으로 바꿨다. 아래 왼쪽 사진은 빌바오시 도심 도로. 빌바오 도심의 도로 대부분은 보행자나 자전거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오른쪽 사진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빌바오공항 전경. 빌바오=최세호 기자>
◆빌바오효과는 민관협력과 천재들의 합작품 = 바스크 정부는 도심재창조 사업을 추진하면서 전문분야는 철저하게 전문가에게 맡겼다. 프랑스와 스페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2000년 이상을 유지했고 도시창건 700년의 역사에 걸맞은 자존심을 가졌음에도 도심재창조프로젝트에는 세계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를 참여시켰다. 천재들이 총출동했다. 지하철역과 고가철교, 트램 등은 영국의 공공디자이너 노먼 포스터가 맡았고 수변개발을 비롯한 도시디자인 개발은 아르헨티나 출생의 미국 건축가 세자르 펠리가 담당했다.
일본의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는 주상복합건물 이소자키 타워를 설계했고 이라크 출신으로 프리츠커 건축상 최초의 여성수상자인 자하 하디드가 도시확장개발의 마스터플랜을 맡았다. 페데리코 소리아나가 디자인한 유스칼두나 콘서트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한 주비주리다리도 도시건축학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빌바오 효과는 단순히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자치정부의 결단과 추진력, 전문가의 참여, 민관협력 등이 성공요인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구겐하임 미술관 설계자인 프랑크 게리도 최근 "건물 한 개가 지역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술관과 같은 문화시설, 공항, 지하철, 항만 등 도시 전체에 대한 비전과 종합전략 등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빌바오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본 아레소 빌바오시 부시장은 "철강과 조선업이 무너지고 강은 오염됐고 실업자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을 했을 뿐"이라며 "도시와 시민을 살리기 위해 전문가그룹의 조언을 믿고 자치정부가 강력히 추진한 결과,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협찬 (사)디자인정책연구원
스페인 빌바오=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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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사업 세계적 성공모델로 주목
도시디자인이 광풍처럼 전국 지방자치단체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세계무대에 내놓을 만한 도시를 찾기는 어려운 게 국내 도시들의 현실이다. 도심의 간판 디자인 정도를 바꾸거나 거액의 예산을 들여 세계적인 건축가나 작가의 작품을 세워놓은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 북부 빌바오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수변정비와 도시 공공디자인을 과감히 접목해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도시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1930년대 소설 '정오의 죽음'에서 '무덥고 추한 광산의 도시'로 묘사한 빌바오시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유치하면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문화관광도시로 다시 태어난 얘기는 도시 재생의 신화로 기록됐다.
7일부터 9일까지 3일간 방문한 스페인 북부지방의 조그만 항구도시 빌바오(스페인어 Bilbao, 바스크어 Bilbo)시의 첫 인상은 '작지만 강하다'였다. 도시재생사업의 세계적 본보기 도시 답게 공항부터가 이색적이었다.
2000년 11월 문을 연 빌바오 공항은 흰 비둘기 날개모양의 터미널 건물에 언덕에 반쯤 파묻혀 있는 공항 주차장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건축계의 모차르트'라 불리는 스페인의 거장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작품이었다.
빌바오시는 면적 41.3㎢, 인구 35만명의 바스크자치지방 비스카야주의 중심도시다. 주변지역을 포함하면 약 100만명의 인구규모로 스페인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다.
이 도시를 여행하다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통역가이드도 모르는 언어가 각종 간판이나 안내판에 병기돼 있다. '빌바오와 빌보'처럼 스페인어와 함께 자신의 고유 언어인 바스크어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바스크인들은 20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인구의 85%가 RH-혈액형을 가지고 있다. '아슬레틱 빌바오'라는 축구클럽은 순수 바스크인 선수만 고집하고 있다.
빌바오는 '바스크 그리고 자유'를 뜻하는 바스크 독립을 위한 무장단체인 ETA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빌바오는 고유민족이 고유언어를 사용하는 비타협적이고 독립적인 도시지만 1980년대 후반 대규모 도시개생사업에 착수하면서 외국의 천재 건축가와 예술가를 대거 불러들여 활로를 모색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바스크 지방자치정부는 도시재생 사업에 앞서 가장 먼저 레르비온강부터 정비했다. 도심을 동서로 흐르는 12㎞ 길이의 네르비온강 정화에만 15년 이상이 걸렸다. 예산도 8억 유로 이상이 들었다. 이 돈은 구겐하임 미술관 건설비의 6배에 가까운 규모였다.
강이 정화된 후에는 본격적인 강변개발이 이뤄졌다. '빌바오 리아 2000'이라는 이름의 빌바오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도화선 = 강변개발의 첫발은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현대미술의 거장인 제프 쿤스의 퍼피(꽃강아지), 루이 부르주와의 거대 거미(MAMAN), 리처드 세라의 스네이크(150피트 규모 뱀모양 철판구조작품) 등의 콘텐츠도 담았다.
1991년 착공해 1997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엄청난 건설비용 때문에 예산낭비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개관 후 연평균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리면서 개관 3년 만에 건설비를 회수했고 5년 만에 모든 투자금을 되찾았다. 10년간 2조1000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려 '빌바오 효과'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빌바오 효과로 표현되는 도심재창조 프로젝트의 성공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명성과 네르비온강을 따라 진행된 도신혁신에서 나왔다. 강변 36만㎡ 부지에 미술관, 컨벤션홀, 음악당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왼쪽 사진은 빌바오시 도심재생의 상징인 구겐하임 미술관. 이곳 시민들은 미술관 외벽의 타타늄 패널이 맑은 네르비온강 수면위에 반사되는 모습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오른쪽 위 사진은 네르비온강변공원. 산업화 후유증때문에 죽음의 강으로 변한 도심하천을 정비하고 수변에 공원과 문화예술작품 등을 배치해 네르비 온강변을 시민통합과 소통의 장으로 바꿨다. 아래 왼쪽 사진은 빌바오시 도심 도로. 빌바오 도심의 도로 대부분은 보행자나 자전거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오른쪽 사진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빌바오공항 전경. 빌바오=최세호 기자>
◆빌바오효과는 민관협력과 천재들의 합작품 = 바스크 정부는 도심재창조 사업을 추진하면서 전문분야는 철저하게 전문가에게 맡겼다. 프랑스와 스페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2000년 이상을 유지했고 도시창건 700년의 역사에 걸맞은 자존심을 가졌음에도 도심재창조프로젝트에는 세계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를 참여시켰다. 천재들이 총출동했다. 지하철역과 고가철교, 트램 등은 영국의 공공디자이너 노먼 포스터가 맡았고 수변개발을 비롯한 도시디자인 개발은 아르헨티나 출생의 미국 건축가 세자르 펠리가 담당했다.
일본의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는 주상복합건물 이소자키 타워를 설계했고 이라크 출신으로 프리츠커 건축상 최초의 여성수상자인 자하 하디드가 도시확장개발의 마스터플랜을 맡았다. 페데리코 소리아나가 디자인한 유스칼두나 콘서트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한 주비주리다리도 도시건축학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빌바오 효과는 단순히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자치정부의 결단과 추진력, 전문가의 참여, 민관협력 등이 성공요인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구겐하임 미술관 설계자인 프랑크 게리도 최근 "건물 한 개가 지역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술관과 같은 문화시설, 공항, 지하철, 항만 등 도시 전체에 대한 비전과 종합전략 등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빌바오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본 아레소 빌바오시 부시장은 "철강과 조선업이 무너지고 강은 오염됐고 실업자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을 했을 뿐"이라며 "도시와 시민을 살리기 위해 전문가그룹의 조언을 믿고 자치정부가 강력히 추진한 결과,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협찬 (사)디자인정책연구원
스페인 빌바오=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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