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지난 17일 일본 도쿄에서는 17만의 시민이 "사요나라 원전!"을 외쳤다. 작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래, 아니 1960년대 안보투쟁 이후 최대의 인파였다고 한다. 뚜렷한 탈핵계획도 없이 멈춰 섰던 핵발전소를 재가동하기 시작한 정부에 대한 항의가 폭발한 것이다.
적어도 일본의 여론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이 탈핵으로 기운 듯하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던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날 연단에 올라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겨우 전기입니다. 겨우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단 말입니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킵시다. 일본의 국토를 지킵시다!"
일본 국민들은 이제 대규모 전력생산, 그걸로 만들어냈던 고도성장과 풍요 대신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지난 3월 '원전 없는 미래로, 출구는 자연에너지다'의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저자 이이다 데츠나리가 한국에 왔다. 지금 일본은 근현대사에서 '제3의 역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부국강병의 길을 닦은 일본은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결국 2차대전 패전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패전을 딛고 이룬 경제대국의 꿈은 20년의 경기침체 끝에 후쿠시마 핵사고라는 파국에 부닥쳤다.
이 파국으로부터의 출구는 자연에너지라고 이이다는 주장한다. 여기서 자연에너지는 평화와 민주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몰락선진국 쿠바가 옳았다'라는 책이 있다. 일본인 저술가 요시다 타로가 쓴 이 책의 원제목은 '몰락선진국-일본이 쿠바를 모범으로 삼아야하는 이유'다. 북한과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에 사회주의권 몰락으로 하루아침에 동맹국의 원조와 값싼 석유공급이 끊긴 두 나라다.
"출구는 자연에너지다"
석유를 기반으로 한 산업, 특히 농업이 붕괴된 북한이 어떤 끔찍한 몰락을 겪었는지는 우리가 잘 안다.
그런데 쿠바는 조금 달랐다.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가능에너지 보급, 그리고 무엇보다 에너지 절약교육을 통해 석유 없는 세상에 대처하는 적극적인 개혁운동을 펼친 것이다.
또 도시농업을 활성화하고 품종다양화 등 전통적 지혜에 뿌리를 둔 생태농업으로 식량자급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 결과 세계자연보호기금으로부터 '지구상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나라'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생활수준이 높은 선진국들은 지구환경에 너무 큰 부담을 주고, 대부분의 저개발국들은 환경에는 부담을 덜 주지만 국민의 기본생활도 보장하지 못한다. 물론 쿠바에도 문제는 많고, 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가난하다.
하지만, 미래세대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국민의 의식주는 물론 의료 교육 문화 등 기본적인 복지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다가올 석유 고갈의 시대에 일본, 아니 모든 나라가 쿠바를 모범으로 삼아야 할 이유다.
올해는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발표한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근대 이후 속도를 더해 온 개발과 경제성장은 유한한 지구 환경 때문에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석유를 비롯한 지구의 비재생가용자원의 공급은 1970년대부터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2020년을 전후해서는 1인당 식량생산과 산업생산 및 서비스가 감소하기 시작하며, 2030년엔 경제붕괴에 따른 세계인구감소가 시작되리라는 비관적인 예측을 이 보고서는 담고 있다.
'성장의 한계'와 석유 고갈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런 낙관 속에 산다.
그런데 나쁜 소식이 있다. '성장의 한계' 출판 4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열렸는데, 미국의 스미소니언협회가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서 1972년의 예측과 지난 40년의 실제 상황을 비교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그런데, 예측과 현황이 놀랄만큼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장의 한계'의 예측이 맞는다면, 석유고갈의 고통은 쿠바만의 특수사정이 아니다. 쿠바의 실험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갖가지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우리의 대선주자들이 환경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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