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수 편집위원
금융기관들에 대한 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유럽발 재정위기에 일본식 장기 저성장의 공포가 밀려오는 와중이다.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다 못해 하루하루가 불안의 나날이다. 그런 서민들을 상대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은행들이 거의 약탈에 가까운 행위를 했다. 최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조작 의혹에 이어 감사원의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감사 결과는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눈과 귀를 의심케 한다.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면 소위 대한민국의 '리딩뱅크'라고 자임하는 은행들이 특히 문제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다는 신한은행을 보자.
신한은행은 학력에 따라 고객을 차별 대우해왔다. 고객의 신용 평점을 매기면서 석·박사 출신에게는 54점, 고졸 이하에게는 13점을 줬다. 그 결과 2008~2011년 신용대출을 받은 15만1600여명 중 절반 가까운 7만3800명은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이자 17억원을 더 냈고, 1만4100여명은 아예 대출을 받지도 못했다.
학력 낮다고 이자 더 매기고 대출계약서까지 위조
은행들이 고객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직업·소득·재산을 따지는 것에 대해 특별히 뭐라 하지 않는다. 소위 신용도를 조사해서 리스크를 최대한 피하는 것이 은행대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한은행은 거기에 더해 우리 사회의 가장 민감하고 심각한 문제이기도 한 학력차별의 금도를 넘었다. 고등학교 이하의 학력을 가진 것이 경제적 열등함의 징표이거나 무슨 죄나 되는 것처럼 고객에게 또 다른 불이익을 가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 시책에 협조해 고졸학력자를 우선 채용했다고 말하는 것은 낯간지럽다. 설립 23년만에 '리딩뱅크'로 도약한 은행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2010년 이백순 행장의 전임행장 고소로 촉발된 경영진 내분사태에 이어 이번 '학력차별 대출금리'는 신한의 도덕성에 씻을 수 없는 흠집을 남겼다.
KB국민은행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최근 국민은행 일부 지점에서 아파트 중도금 대출 기한을 조작한 사건이 드러난 데 이어 대출 계약서의 고객 서명과 금액을 위조한 의혹까지 터져나왔다.
한국은행은 2008년 10월부터 작년 말까지 기준금리를 5.25%에서 3.25%로 2%포인트 낮췄다. 그러자 은행들이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막으려고 신규 대출을 받거나 기존 대출을 연장하려는 고객들에게 온갖 이유를 대가며 가산금리를 얹어 받는 등 약탈적인 이자수익을 거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은행들은 20조원의 이자 수입을 추가로 챙겼다. 공공성을 망각한 채 오직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금융권의 탐욕은 '브레이크'가 없는 듯하다.
이렇게 담합과 약탈로 서민들의 등을 쳐 챙긴 돈으로 금융지주 회장들은 '4대 천왕'으로 군림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료들, 금융감독기구 출신 공직자들은 감사와 사외이사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퇴임 후 자리를 챙기고 향응을 즐겼다.
금융권이 CD와 가산금리 조작 등으로 이자를 더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은행산업을 과점적 담합구조로 만들어 주고 또한 이런 관행들을 방관해왔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금감원과 금융위원회의 지도감독이 부적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렇잖아도 금감원 직원들이 저축은행 비리사태에 연루돼 줄줄이 사법처리되면서 '금융강도원'이라는 비난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관치금융의 우산 아래 금융권의 횡포가 결합돼 금융의 공공성을 해치는 악순환이다.
감사원 "금감원과 금융위의 지도감독도 부실"
저축은행 사태로 금융당국에 대한 개혁 요구가 거셌지만 크게 변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감독당국이 바로 서야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지키고 금융사의 일탈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IMF 외환위기에 다 망해버린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혈세로 조성된 16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 투입을 감내했던 서민들로서는 허탈하다.
12월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재벌경제의 폐해를 바로잡자는 '경제민주화'가 어느덧 대세가 됐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에 해당한다. 그런 혈맥이 썩어들어가는데 경제가 건강해질리 없다. 국민 위에 군림하고 착취하는 금융권의 행태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경제민주화도 금융강국도 다 부질없는 헛공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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