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형 칼럼] 문재인 그릇

지역내일 2012-07-02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3년상을 마친 문재인의 최대 과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동안 상표 같이 달고 다녔던 '노무현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이다. '노무현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높이 날 수도 크게 울 수도 없다.
사람마다 체취가 있다. 문재인의 냄새는 담백하다. 기교와는 거리가 멀다. 말수는 어눌한 편이다. 송곳 질문에도 침착하다. 낮은 자세지만 거침이 없다. 하지만 그가 어떤 리더십의 소유자인지, 국가 지도자로서 무슨 덕목을 갖췄는지는 계속 검증되어야 할 부분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대권주자로 데뷔하는 장면들을 지켜보면서 갖는 느낌은 한 마디로 "예사롭지 않다."이다. 지난 달 17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데 이어 27일엔 관훈토론회에 나와 출사표에 따른 소신을 밝혔다.

한국사회는 과거 '수직 사회'로부터 '수평 사회'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 개발경제시대에는 카리스마에 기초한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필요했다면, 민주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지금은 타협하고 설득하는 조정자 같은 리더십이 요구된다. 늘 국민 눈높이를 생각하는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법이 아니다. 서민과 동행하는 품성은 성장 과정에서부터 태동된다.

문재인은 한국전쟁 중 흥남철수작전 때 월남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피난민의 처절한 생활을 기억하고 있다. 연탄 배달 리어카를 끌었던 소년 문재인은 그런 토양에서 자양분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강제징집의 결과였긴 하지만 특전사 공수부대에서 군복무를 마친 것도 '병역필' 보통사람의 정서와 통한다.

어눌하지만 침착하고 담백해

최근 우리 사회는 지도자의 덕목 가운데서도 유독 도덕성을 중시하고 있다. 1987년 현행 헌정체제 이후에도 역대 대통령들의 가족이나 친인척들의 인사, 이권 개입 등 국정농단현상이 끊이지 않았던 탓이다.

현 정권도 MB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억대의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 소환을 받고 있어 예외가 아니다. 문재인은 어려운 시기에 인권, 노동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첨렴성이나 도덕성에서 가점을 받을 수 있다.

대통령이 구비해야 할 덕목으로는 비전과 경륜도 들 수 있다. 사실 대권에 도전하는 사람 치고 그럴싸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이는 없다. 문재인도 '상생과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내걸고 있다. 공정한 경쟁, 정당한 보상, 대북정책 전환 등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자신이 그 동안 추구해온 가치를 그대로 국정에 담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경륜 면에서 문재인은 미지수다. 따지고 보면 그는 초선의원으로 정치신인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을 지냈지만 정치판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안철수 현상'에서 보듯이 대통령감은 오히려 정치에 물들지 않은 초년생이 더 호감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내 주요 경쟁자인 손학규 상임고문이나 김두관 경남지사와 견줘 볼 때, 장관이나 도지사 같은 의사결정권을 직접 행사하는 경력이 없다는 것은 약점이다. 그는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눈으로 행정 각 부처 업무를 파악하는 자리'라면서 자신의 비서실장 경험을 변호하고 있다.

문재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승을 떠난 지 3년만에 대선 도전에 나섰다. 그가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출마선언을 하면서 첫 머리에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여씨춘추의 고사를 꺼냈다.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았지만' 이제 높이 날고, 천지를 진동시킬 만큼 울겠다고 했다.

3년상을 마친 문재인의 최대 과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동안 상표 같이 달고 다녔던 '노무현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이다. '노무현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높이 날 수도 크게 울 수도 없다.

'문재인표' 콘텐츠 내놓아야

그가 출마선언 때 제시한 분배와 재분배를 강화한 '포용적 성장' 등도 '노무현 지우기'의 일환처럼 보인다. 과거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정책적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도로 노무현'이 아니라, 그가 출마 선언 말미에 인용한 도종환의 시처럼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듯이' '노무현'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깊숙한 데서 뭔가 떠받치고 있는 것 같은 '문재인 표' 콘텐츠를 내놓아야 한다. 대통령감으로서 '문재인 그릇'은 어느 정도 필요한 요소를 갖췄다고 보더라도 진정한 성패는 여기에 담을 콘텐츠에 달렸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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