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금융교실] 신용민주화의 빛과 그림자

지역내일 2012-08-10

박철/국민은행 인재개발원 팀장

필자가 사회초년생 시절인 90년대만 해도 개인이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특권이나 다름 없었다. 대출신청을 하면 퇴짜 맞는 게 당연할 만큼 금융기관 문턱을 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돈을 빌리기가 손쉬워졌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우리사회를 강타한 IMF금융위기가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당시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대출을 받아간 기업들이 잇따라 부도를 내고추풍낙엽처럼 쓰러지면서 돈을 떼인 금융기관들은 큰 곤혹을 치러야 했다.

이렇게 기업대출의 위험(Risk)이 부각되면서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개인대출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2000년대 중반부터는 가계대출규모가 기업대출 규모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 저금리기조가 정착되면서 대출금리도 한결 싸졌다. 덕분에 사람들은 돈이 없어도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자동차 등 값비싼 소비재를 마음껏 사들일 수 있었다.

또 소위 지렛대 효과를 노리고 빌린 돈으로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도 흔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돈 빌리기가 수월해졌음을 실감하게 만드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요즘 생활의 필수품처럼 되어 버린 신용카드다.

우리나라는 2011년 말 현재 국민 1인당(경제활동인구 기준) 보유하고 있는 평균신용카드 수가 4.9장에 이른다. 누구나 지갑 안에 신용카드 몇 장씩은 꽂고 다닌다는 얘기다.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 1위다. 또 국민총소득(GNI) 대비 신용카드 사용금액은 지난20년 사이 13배 가량 늘었다. 가히 신용카드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우리나라는 신용카드 공화국

신용카드는 일정한 한도 내에서는 언제든지'신용'을 제공한다는 즉, 돈을 빌려주겠다는 금융기관의약속인 셈이다.

그래서 신용카드만 있으면 필요할 때 외상으로 물건을 사고 현금서비스를 이용해서 급전을 땡길 수도 있다. 마이너스통장도 마찬가지다. 일단 한번 만들어 놓으면 한도 내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예전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특권처럼 주어졌던'신용'을 이제는 손만 뻗으면 누구나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혹자는 요즘을신용민주화(Democratization of Credit)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런 것처럼 신용민주화는 우리생활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리웠다. 예전보다 신용에 대한 접근이 훨씬 수월해지면서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그만큼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 앉을 수 있는 위험도 커진 것이다.

온갖 푸어(Poor)들 넘쳐나

그러다 보니 요즘 주변에 하우스 푸어, 허니문 푸어, 베이비 푸어, 럭셔리 푸어 등 온갖 푸어(Poor)들이 넘쳐나고 있다. 푸어(Poor)는 "가난한, 빈곤한" 이라는 뜻의 영어단어로 빈곤층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그만큼 상환능력을 벗어난 신용사용이 일상화된 되었다는 얘기다. 신용민주화가 부자가 아닌 사람도 부자처럼 소비할 수 있도록 소비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먼저 저축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신용카드로 일단 긁거나 대출을 받아 사 버린다. 저축이 아니라 일단 소비부터'지르고' 보는 것이다.

요즘을 신용이 모든 사회생활의 근간을 이룬다고 해서 신용사회라고 부른다. 따라서 신용에서 소외되거나 멀어지는 것은 기회의 박탈이나 상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용민주화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용의 혜택을 누리는 사회가 건강하고 공정한 사회다.

"신용이 소수의 부자들한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는 잘못된 신화는 사라져야 한다. 신용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신용의 혜택을 제공하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해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무하마드 유누스의 말이다.

하지만 신용의 다른 이름은 책임이다. 신용을 잘 못 사용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 지를 우리는 이미IMF금융위기와 카드대란을 겪으며 뼈저리게 경험했다.

진짜 신용은 갚을 능력

신용문제는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신용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진정한 신용민주화는 대출과 신용카드발급이 수월해졌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신용을 "돈을 빌릴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신용은"(빌린)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다. 신용민주화에 걸 맞는 신용의식과 신용관리가 몸에 배어야 한다. 신용민주화가 만든부채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사회에 이보다 더 절실한 과제는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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