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수 논설위원
하우스푸어, 워킹푸어, 실버푸어… 요즘 대한민국은 푸어 양산시대다. 자고 나면 신종 푸어가 하나씩 새로 생긴다는 웃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다.
'푸어'(Poor)는 가난하고 빈곤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다. 요즘처럼 '의식주'를 위해서 빚을 질 수밖에 없고, 그 빚을 갚느라 금융기관의 독촉에 시달리며 평생을 근근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비유한 말이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육박하면서 빚어낸 우리 사회의 심각한 단면이다.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른 집값 하락으로 어려움에 처한 집 가진 빚쟁이, '하우스푸어'에서부터 생계 빈곤층을 뜻하는 '리빙푸어', 직장은 있지만 비정규직에 장시간 아무리 일을 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푸어'까지.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의 심각한 단면
또 노후를 준비 못한 '실버푸어', 생계형 자영업에 내몰린 '소호푸어'(SOHO Poor)푸어, 전세자금대출 원리금 상환에 벅찬 무주택세입자를 뜻하는 '렌트푸어'(Rent Poor), 결혼을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고 그로 인해 빈곤해지는 '웨딩푸어', 부모님을 부양하면서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올드푸어'(롱 라이프 푸어) 등 앞으로 보다 더 다양한 '푸어'가 양산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 경제연구원은 가계가 적자 상태이거나 부채가 있는데도 평균 이상으로 교육비를 지출하는 '에듀푸어'(Edu Poor·교육빈곤층)가 전국적으로 82만4000가구에 이른다고 추산해 새로운 푸어층을 하나 보탰다.
푸어 양산은 한마디로 질 좋은 일자리가 더 이상 창출되지 않고 중산층이 붕괴되어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의 상징적인 현상이다. 흔히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3-6-9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실업자 300만명, 자영업자 600만명, 비정규직 900만명 시대에 바짝 근접한 까닭이다.
통계청 등 각종 정부 자료를 취합해 계량적으로 따져보면 우리나라는 실업자 270만명, 자영업자 580만명, 비정규직 830만명으로 사실상 3-6-9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런 식으로 일자리 기반이 붕괴되면 극심한 양극화에 따른 사회갈등을 촉발시켜 사회불안이 가중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람이 태어나서 무덤에 묻힐 때까지 맞닥뜨리게 되는 주거, 교육, 복지, 건강, 노후 등 민생의 기본문제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고 광범위한 불안에 시달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에 나서는 청년들, 직장에서 은퇴를 앞둔 은퇴자들, 소득이 높은 중산층, 소득이 낮은 빈곤층 모두가 불안을 껴안고 살아가는 그런 사회가 돼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불안 증후군 징후는 우울증과 자살자가 급증하는 사회병리 현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우울증으로 치료받는 사람은 2000년 475명에서 2010년 1071명으로 10년 사이에 2배로 늘어났다.
인구 10만명당 자살한 사람의 숫자는 2010년 31.2명을 기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거의 매일 40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한반도 남쪽은 각박한 삶의 격전장이 돼 버렸다.
OECD 최고의 자살률에 '묻지마 폭력' 등 사회병리현상
최근 우리 사회를 큰 충격 속으로 빠뜨리고 있는 '묻지마 폭력'도 결국 경제적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불안 우울 불신 분노의 감정들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도심 한복판 퇴근길에서 날벼락을 맞듯이 칼부림을 당하고, 아침에 유치원에 보냈던 사랑스런 아이가 성범죄자에 의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집에서 잠을 자던 중 느닷없이 가족 중 누군가가 참변을 당하기도 한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일 발생하는 '묻지마 폭력'과 '묻지마 범죄'가 우리를 극도로 불안하게 한다.
우리나라 헌법 '국민의 권리와 의무' 첫 조항(제2장 제10조) 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12월 대선이 다가온다. 국민과 함께 우리 사회 공동체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더욱 확대해 나갈 정당, 후보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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