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본다.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백이면 백, 토익 아니면 고시다. 나처럼 한가하게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그 많은 사람 중에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원래 도서관은 조용한 곳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는 딴 생각이 든다. 모두들 고개 숙이고 공부하는 모습에서 ‘한국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들 너무 힘이 없게만 보이는 것이다.
방학중의 도서관 풍경은 우리 대학을 지배하는 권력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보여주는 증거다. 80년대의 학생들을 통제했던 것은 독재권력이었다. 이들은 학교에 들어와 학생들을 감시하고, 잡아가고, 군대에 보내고, 고문하고, 몰래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권력은 혐오감을 일으키고 반발을 부른다. 80년대의 활발한 학생운동과 독재정권의 몰락은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오늘, 학교에 들어와 있는 권력은 어떤 학생들도 잡아가거나 고문하거나 죽이지 않는다. 그 권력은 ‘무슨무슨 정권’이란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실체도 없지만, 거의 모든 학생들의 신체 속에 각인돼 있는 권력이다. 학생들은 1, 2학년까지는 그 권력으로부터 대체로 자유로운 듯 하나,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권력의 힘을 느끼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하나 둘씩 해외연수를 떠나거나 학점관리를 하고, 학생회 활동을 후배에게 넘기고, 휴학을 하고, 동아리를 나오고, 영어책을 편다.
일단 학벌은 서류전형에서 걸러지고, 토익점수와 학점 등에서 통과하면 면접에서 최소한 어학연수 경력이라도 있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취직 시험은 학생들을 학교와 영어와 학점과 경험에 따라 세부적으로 분류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 통과하기 위해 학생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즉, 기업이 권력이라면 학생은 피권력자가 되는 것이고, 이런 권력구조는 오늘의 대학생활을 결정짓는 하나의 ‘원리’ 비슷하게 돼있다.
며칠 전 교육부장관은 국무회의에서 대기업 입사서류에 학력란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했다가 국무위원들에게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기업은 그대로 있어도 학생들이 자발적이고 군말없이 자신들의 분류기준에 맞춰주고 적극적으로 따라오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기업이 ‘학력란을 없애라’거나 ‘나이 제한을 폐지하라’는 식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그저 세련되고 우아한 이미지광고에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조용하게 영어공부를 하고, 나는 갑자기 숨이 막혀 도서관을 나와 버린다.
/ 문강형준 중앙대 영문 4
방학중의 도서관 풍경은 우리 대학을 지배하는 권력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보여주는 증거다. 80년대의 학생들을 통제했던 것은 독재권력이었다. 이들은 학교에 들어와 학생들을 감시하고, 잡아가고, 군대에 보내고, 고문하고, 몰래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권력은 혐오감을 일으키고 반발을 부른다. 80년대의 활발한 학생운동과 독재정권의 몰락은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오늘, 학교에 들어와 있는 권력은 어떤 학생들도 잡아가거나 고문하거나 죽이지 않는다. 그 권력은 ‘무슨무슨 정권’이란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실체도 없지만, 거의 모든 학생들의 신체 속에 각인돼 있는 권력이다. 학생들은 1, 2학년까지는 그 권력으로부터 대체로 자유로운 듯 하나,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권력의 힘을 느끼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하나 둘씩 해외연수를 떠나거나 학점관리를 하고, 학생회 활동을 후배에게 넘기고, 휴학을 하고, 동아리를 나오고, 영어책을 편다.
일단 학벌은 서류전형에서 걸러지고, 토익점수와 학점 등에서 통과하면 면접에서 최소한 어학연수 경력이라도 있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취직 시험은 학생들을 학교와 영어와 학점과 경험에 따라 세부적으로 분류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 통과하기 위해 학생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즉, 기업이 권력이라면 학생은 피권력자가 되는 것이고, 이런 권력구조는 오늘의 대학생활을 결정짓는 하나의 ‘원리’ 비슷하게 돼있다.
며칠 전 교육부장관은 국무회의에서 대기업 입사서류에 학력란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했다가 국무위원들에게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기업은 그대로 있어도 학생들이 자발적이고 군말없이 자신들의 분류기준에 맞춰주고 적극적으로 따라오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기업이 ‘학력란을 없애라’거나 ‘나이 제한을 폐지하라’는 식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그저 세련되고 우아한 이미지광고에만 신경 쓰면 되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조용하게 영어공부를 하고, 나는 갑자기 숨이 막혀 도서관을 나와 버린다.
/ 문강형준 중앙대 영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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