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서울사이버대 교수/부동산학
다양한 데이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사회에서 양극화는 현재 급속히 진행 중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소기업과 대기업, 서민과 부자, 노도강과 강서송, 수능생의 10%만 서울소재 대학에 진학하고 1%만 소위 SKY 대학에 진학한다. 학력의 양극화와 대물림은 심각하다.
99%의 청소년은 학력상의 충족감에서 출발선부터 소외된다. 왜 이력서에는 학력과 성적을 기록하여야 하는가. 본적을 기재하지 않기로 했으면 학력도 마찬가지다. 능력과 경력만으로 사람을 쓰는 사회구조는 불가능한가. 고위임명직 공무원이 발표될 때 왜 꼭 학력이 따라붙는가? 제도화된, 계층화된 사회의 틀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숨은 의도가 밑받침되고 있는 것인가?
기부문화 실종되고 고위공직자는 권력 남용하거나 보신주의
판검사가 아니라도, 대기업 임원이 아니라도, 고위공직자가 아니라도, 의사 박사가 아니라도 당당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는 불가능 한 것인가. 왜 가업을 이어받는 일본식 문화가 우리에게는 없는가.
왜 사회적 출세만이 오로지 젊은이들의 목표가 되었는가. 이런 의식구조는 왜 구축된 것인가? 사회의 수직적 구조 때문인가, 우리의 수직적 언어구조 때문인가. 종적으로 잘못 인식된 유교 문화의 뿌리 때문인가.
권력구조에 대한 철저한 사회적 혁신 없이 출발한 우리 민주주의의 뿌리 때문인가, 지금처럼 사회가 수평적구조로 인식되어 있는 한, 수평적 구조로 변화되지 않는 한, 이런 출세지상주의 의식은 바꾸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 공부만이 유일한 출세수단이라고 되어 있는가, 왜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가 되어 있는가.
그러나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기득권, 사회지도층은 모범을 보이지 못한다. 사회지도층의 현역 입영률은 현저히 낮고, 이중국적의 문제는 아직도 정리되지 않는다. 아니 정리하지 않는다. 기부문화는 실종되고 고위공직자는 권력을 남용하거나 보신주의에 머문다.
전관예우가 뿌리깊고, 승자독식이 정치. 사회 모든 부문에서 일반화된다. 이미 고착화된 사회구조의 견고성에는 철옹성이다. 기득권들은 그들 간의 결속은 다니고 또 결의한다. 끼리끼리 문화가 일반화된다.
사회적 루저들의 진입은 다양하게 차단된다. 아파트촌에서도 임대아파트는 멀리하고 단지 내에서도 벽을 쌓는다. 기득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존의 권력과 권리를 수성하려고만 한다.
신분상승의 사다리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 학력 간 차이 극복, 부동산 소유 극복, 기업간 경쟁구조 극복은 어렵다.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고, 권력이 권력을, 부가 부를 창출해가는 시스템에서 양극화는 해소될 기미가 없다. 그 와중에도 공부만이 유일하게 신분상승의 기회로 생각하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은 소를 팔아서라도 자녀는 대학에 보내려 한다. 과외천국, 과외학원이 성업중이다. 비 기득권의 진입노력은 눈물겹다.
현역 입영자만 그룹을 승계하게 하는 유럽의 기업문화
공생하지 않으면 공멸한다. 자연의 기본적 질서가 그렇다. 우리의 역사, 세계사가 그렇다. 기득권, 이중구조, 계층화, 구조화, 고착화 … 수입의 70~80%를 세금으로 납부해도 전혀 억울하지 않다는 스웨덴, 노르웨이, 이런 나라들을 이제는 바라볼 일이다.
자녀에 유산 남기지 않기. 90% 이상 유산 사회에 기부하기, 100만불 클럽, 현역 입영자만 그룹을 승계하게 하는 유럽의 기업문화 이런 것들을 속히 도입할 때다. 머뭇거리면 더욱 어려워진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수익자 부담. 대응성의 법칙, 응능성의 원칙, 홍익인간 … 좋은 말은 너무도 많다. 사용하지 않을 뿐, 남에게만 적용시킬 뿐.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기 위해서는 상식으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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