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이 보는 세계] 푸틴 독재에 도전한 ‘펑크밴드’의 마녀들

지역내일 2012-08-20 (수정 2012-08-20 오후 2:17:41)
언론인/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지난 주말(17일) 모스크바 법원이 세 명의 펑크 밴드 여성 멤버들에게 각각 2년 노동(수용소)형을 선고한 푸시 라이어트(Pussy Riot)재판에 세계 여론이 분노하고 있다.

푸시 라이어트는 세 여성이 속해 있는 펑크 밴드 이름이다. 국경을 넘어 사람들이 함께 분노한다는 것은 푸틴의 독재를 패로디한 펑크 밴드의 항의 퍼포먼스에 법원이 내린 판결이 너무 가혹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무성과 유럽연합의 외교 대표 캐서린 애슈턴은 모스크바 법원 판결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탄압이라고 비판하고 재고를 요구하는 논평을 냈다. 뉴욕 런던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시민단체들이 SNS를 통해 푸틴의 독재를 비난하고 있다.

작년 말부터 러시아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反)푸틴운동은 그가 꼼수로 헌법이 규정한 3선금지의 장애를 극복하고 장기독재의 길에 들어선 것이 도화선이 됐다. 젊은 지식인 예술인들이 작년 10월 푸시 라이어트를 조직하기로 뜻과 힘을 모운 것도 푸틴이 3선 출마를 발표한 것이 계기였다. '차르 푸틴'의 독재를 방관만 할 수 없다는 신념에서였다. 명문대 출신의 명석하고 발랄한 여성 지식인 예술인들로 구성된 펑크 밴드에 러시아 문화계가 뜨거운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도 그들의 순수한 목표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푸틴의 장기 독재를 위협하는 젊은 힘이다.

사건은 2월 말로 소급한다. 당시 유튜브를 보면 펑크 멤버들은 러시아 정교(正敎)의 상징인 '구세주 크리스토 성당'에 들어가 이콘(성상화)벽 앞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푸틴 축출을 비는' 기도를 올리면서 '똥, 똥, 주님의 똥' 같은 좀 상스런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이들은 곧 체포돼 6개월째 구금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푸틴의 21세기 종교재판

모스크바 법원의 시로프(여) 재판장은 세 피고의 '펑크 기도'를 '반달리즘'(야만적인 파괴행위)과 '종교적인 증오 선동죄'로 규정하고 불과 30~40초밖에 지속되지 않은 '반달리즘'에 대한 형벌로 어린 자녀를 두고 있는 20대 주부들에게 2년 간 수용소에서 '노동하며 참회하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르몽드는 비종교 국가로 신성모독죄가 존재하지 않은 러시아에서 모스크바 법원이 피고들에게 '교회의 규칙을 위반'한 '신성모독행위'를 단죄 이유로 적용했다고 비꼬았다.

재판장은 피고들이 춤출 때 '악마처럼 다리를 흔들고' '사악한 힘'의 조종을 받는 것 같았다는 증인들의 증언도 판결문에 인용했다. 그래서 반대세력을 단죄하기 위해 악마의 역할을 끌어들인 중세 종교재판을 상기시키는 재판으로 펑크 밴드 여성들을 악마의 힘을 빌린 마녀에 빗댔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정권이 반(反)정부 인물로 지목하면 검사가 그를 붙들어 정권의 의도를 논고에 반영하고 판사는 검사의 논고를 인용해 피고를 단죄하는 소련시대의 트로이카(셋이 한 조가 된)재판과 닮았다고 했다. 푸틴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재판이었다는 것이다.

푸시 라이어트 사건은 푸틴의 3선 임기가 시작한 이후 발생한 첫 반정권 시위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또 푸틴이 각종 자유제한법을 제정해서 반정부활동을 감시 제약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정권의 반정부 활동 통제에 한계가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끈다.

여성 피고들은 신성모독 혐의는 부인했지만 그들의 행동이 푸틴의 독재정권을 반대하고 푸틴의 독재를 옹호하는 러시아 정교회 우두머리 키릴 총주교의 행동을 비판하기 위해 성당에서 '펑크기도'를 연출했음을 시인했다.

마리아 알료히나(24)는 '교회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푸틴을 사랑하는 자녀들만 사랑하는 것 같다'고 교회의 푸틴 옹호를 비난했다.

구 소련의 '트로이카 재판' 판박이

푸틴이 푸시 라이어트 재판에서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펑크 밴드 여성들에게 2년 노동형이라는 중형을 선고함으로써 반대세력에 공포감을 주어 그들의 활동을 견제하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푸틴의 반체제 세력에 대한 탄압 일관 정책은 오히려 정권의 고립과 단명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탄압만으로 반 푸틴 운동을 억제할 수 없다는 경고가 깔려 있었다. 9월에 예고된 또 한 차레의 푸틴 반대 시위를 푸틴이 어떻게 다루는가를 보면 '차르 푸틴'의 미래가 좀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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