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의자놀이’] 쌍용차 사태는 30년전 광주 시민학살의 재판

지역내일 2012-10-12

안종주/언론인

휴머니스트/공지영 지음/1만2000원

왜 대한민국 최고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그가 르포르타주를 썼을까? 그것도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로. 필자는 그것이 궁금했다. 책을 샀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0월5일 '와이티엔' 노조원(6명) 해고 4주년 기념식이 열린 백범기념관에서 공교롭게도 이 책을 또 받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부터 거짓말 한 점 보탬 없이 단 한 번도 책을 놓지 않고 두 시간 만에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다.

소설가 공지영.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도, 그의 작품을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도 그의 이름은 안다. 단 한편의 소설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법을 바꾸는 힘을 지닌 작가다. 바로 '도가니' 이야기다.

그가 '의자놀이'로 생애 첫 도전을 한 르포의 대상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의 부조리와 탐욕으로 가득 찬 군상들이다. 공지영은 그 동안 여러 작품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형상화하고 사회적 불합리와 모순을 드러내왔다. 그리하여 우리를 때론 슬프게 하고, 때론 분노케 하며, 때론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때론 우리의 마음을 바꾸고, 때론 우리들을 행동하게 만들었다. '의자놀이'는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이라는, 글의 형식만 바뀌었을 뿐 그가 천착해온 주제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글이다. 필자의 또 다른 관심은 르포작가나 기자가 아닌 소설가가 쓴 르포는 그들이 쓴 것과 어떻게 다를까와 그리고 그가 쓴 르포는 어떤 맛과 냄새가 날 까였다.

왜 책 제목을 의자놀이로 했는지는 책 중간쯤에 나온다. 의자를 사람 수보다 하나 덜 놓고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다가 노래가 멈추는 순간 재빨리 의자에 앉는 놀이가 바로 의자놀이다. 마지막 순간이 되면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동료를 밀어버리고 내가 앉아야 한다. 요즘 청소년들은 이런 놀이를 잘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공 작가를 포함한 지금의 40·50대에겐 그리 낯설지 않다.

◆소설가가가 쓴 르포 = 저자는 "쌍용자동차 관리자들은 이 거대한 노동자 군단에게 사람 수의 반만 되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마치 그런 놀이를 시키는 것 같았다. 기준도 없고 이유도 납득할 수 없고, 즐겁지도 않으며, 의자를 놓친 자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그런 미친 놀이를"이라며 쌍용자동차에서 벌어진 '죽음의 의자놀이'에 분노한다.

공지영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게 된 것은 2011년 어느 겨울날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잇단 자살로 졸지에 고아가 된 10대 남매의 소식을 트위터로 접하면서부터다. 남편의 사실상 해고로 생활고 등에 견디다 못해 2010년 4월 어머니가 자살하고 2011년 2월에는 아버지마저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어느 날 아침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시작된 이래 13번째 죽음이었다. 그 이후에도 죽음의 행렬은 멈출 줄을 모르고 23번째를 기록했다. 더는 이런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절박한 심정이 이 책을 태어나게 만들었다.

저자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비극을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입을 빌려 날벼락 같은 해고와 고통스런 삶, 무자비한 경찰 폭력에 몸과 마음이 망신창이가 된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실태를 보여준다. 또 대량해고로 가지 않을 수 있었던 쌍용자동차 사태를 2009년 대주주였던 상하이차가 회계조작을 하고 삼일회계법인, 삼정KPMG 등이 사실상 회사와 한통속이 되어 부실회계보고서를 만들어줘 어떻게 시나리오대로 착착 진행됐는가도 잘 보여주고 있다. 지은이는 또 "기억해야 할 사람이 또 한 사람 있다"며 해고에 맞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는 농성노동자를 단순진압이 아니라 테이저건, 발암물질 최루액, 헬기 따위를 동원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비인간적인 '인간사냥'을 했던 경찰의 지휘자, 조현오 경기경찰청장의 추악한 모습을 당시 언론 보도와 실제 벌어졌던 일을 대비하며 고발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파업이 무자비하게 경찰의 무력으로 진압된 뒤 노동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고 나선 '동아' '조선' 등 족벌언론에 대한 꾸짖음도 잊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마침표가 보이지 않는 죽음 앞에 회계법인 책임자와 관계자, 상하이차 경영진, 조현오를 비롯한 경찰, 양심 없는 언론인,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책임 있는 정치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두 다리를 죽 뻗고 편히 잠자고 있는 걸까.

이 책은 서울대 우희종 교수가 당시 어느 신문에 기고한 글을 빌려 쌍용자동차 노동자 농성 진압의 성격을 이렇게 진단한다. "약 30년 전 광주에서 있었던 시민학살의 또 다른 모습이다. 단지 총칼만 없었을 뿐이지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낸 그 폭력의 모습이 다시 일상의 얼굴로 되돌아온 것을 말한다." 이런 진단에 따르면 당시 공수부대원은 진압경찰이고 공수부대장은 조현오이며 전두환은 이명박이 되는 셈이다.

책을 모두 읽고 나니 통권 1천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은 역시 특별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르포는 생생하기는 하지만 무미건조하기 쉽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 책에서 문학성이 있는 르포를 선보였다. 주제 자체가 재미있는 것이 아니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지만 한 번 펼친 책을 놓지 못하도록 하는 힘은 오롯이 작가의 내공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은 '해고는 살인이다'를 말 그대로 증명해주었다. 공지영은 쌍용자동차 문제가 22명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이들은 아직도 죽음 앞에 있다고 외친다. "희망이, 정의가 없는 까닭이며 그것이 회복될 가능성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며, 자신들을 폭도로 몰아가는 힘센 정권과 언론과 여론이,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그들에게 억울함을 이야기할 기회조차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고는 살인임을 증명 =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쌍용자동차 노동자 이야기는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의 이야기이기며 우리가 정치와 사회를 바꾸지 않는 한 가까운 미래에도 계속될 모습이다. 죽은 자를 부활시키고, 살아있지만 산 자의 삶 같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복원하는 길은 올바른 정치지도자, 올바른 정치체제를 단단하게 세우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이 책은 만든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상처받은 그들의 영혼을 힐링(치유)하는데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싶다. 이 책의 인세와 판매 수익금 전액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기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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