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 낙하산 내려보내면서 관리감독 소홀
제일과 솔로몬, 한국에 이어 진흥과 서울저축은행마저 상장폐지됨에 따라 이제 유가증권시장에서 저축은행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들 저축은행들이 증시에서 퇴출될 정도로 부실이 커지는 동안 내부통제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금융감독당국의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저축은행 부실의 일차적인 원인은 대주주와 경영진에 있지만 금융감독당국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낙하산으로 내려가 바람막이 역할만 = 상장폐지된 저축은행은 상근 감사와 사외이사 등 형식적으로는 그럴듯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갖춰놓고 있었다. 이중 상당수는 감사원과 금융감독원 등 정부부처와 감독기관 고위인사들로 채워졌지만 저축은행 불법·부실경영은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진흥저축은행의 경우 모회사인 한국저축은행 부실문제가 불거질 때까지 정현조 전 감사원 고위공무원이 감사를 맡았다. 한국저축은행도 2009년 8월부터 신재극 전 감사교육원 부장이 상근 감사위원로 근무했다. 전임자는 김기섭 전 금감원 부국장이었다. 이성로 전 금감원 국장, 임영철 전 서울고법 판사는 이 저축은행의 사외이사로 참여했다.

<전국저축은행비대위 회원들이 지난 5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 앞에서 예금자보호법 엄정한 해석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솔로몬저축은행의 사외이사진은 더 화려하다. 장태평 전 농식품부 장관, 강상백 전 금감원 총괄부원장보. 문원경 전 행안부 차관 등이 사외이사를 지냈고, 김강현 전 금감원 팀장과 윤익상 전 금감원 부국장 등 금감원 출신들이 이어가며 감사로 근무했다.
제일저축은행에는 이종남 전 감사원장, 김창섭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이국희 전 감사원 공무원이 사외이사를, 김상화 전 금감원 팀장이 감사를 지냈다.
이처럼 고위관료들이 감사와 사외이사로 있었지만 이사회에서 중요한 안건이 부결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감독기관과 정부부처 출신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가 바람막이 역할만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제 터진 후 '문제있다'는 회계법인 = 저축은행 부실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문제를 지적하는 회계법인들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안진회계법인은 솔로몬저축은행에 대해 3년 연속 '적정'하다고 해놓고는 올 6월 결산에서야 의견거절하며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9월 서울저축은행의 2011회계연도(2011년7월~2012년6월) 결산 회계처리에 대해 '적정의견'을 냈다가 이달 12일 '의견거절'로 정정하는 일도 있었다. 또 자산건전성을 재분류, 당기순손실과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 기본적인 지표도 다시 공시했다.
이와 관련 안진회계법인 관계자는 "예금보험공사 검사과정에서 일부 자산에 대한 건전성분류가 수정됐고, 모회사인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변화가 있어 이를 반영하느라 감사의견을 수정 제시한 것"이라며 "감사과정에 잘못은 없다"고 설명했다.
진흥저축은행 회계감사를 맡았던 한영회계법인은 지난해까지도 '적정'의견을 제시하며 회계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부실 문제가 불거진 올 6월에서야 '계속기업으로서 존속능력이 의심스럽다'며 '의견거절'했다. 한국저축은행에 대해서도 지난해6월까지 '적정' 의견을 제시하다가 12월에서야 '기업존속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일저축은행 회계감사를 맡은 신한회계법인도 적정의견을 내다가 영업정지 직전에서야 의견거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시로 말바꾼 금융당국 = 저축은행 부실의 원인이 됐던 대규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을 허용해주는 등 견제장치 없이 규제를 풀어준 정부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금융감독당국의 책임은 더 크다.
금융당국은 특히 저축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시로 말을 바꿔 고객과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하반기 대대적인 경영진단을 벌여 제일과 토마토 등 7개 저축은행을 영업정지시켰다. 당시 솔로몬과 한국, 미래저축은행 등도 부실이 심각했지만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했다. 유상증자와 사옥매각 등 자구계획을 통해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금융당국은 '유상증자에 필요한 자금력은 충분한지, 자산 매각 계약이 실제 이뤄졌는지 등을 확인했다'며 대부분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시장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자구계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추가점검 과정에서 부실이 더욱 커지면서 이들 저축은행들도 문을 닫았다. 반년 넘게 시간만 끌어버린 결과가 됐다.
당시에도 금융당국은 '앞으로는 추가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며 계열저축은행은 독자적으로 생존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반년도 안돼 한국계열인 진흥과 경기는 자본잠식상태에 들어갔고 결국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정리절차를 밟고 있다. 당국의 말을 믿었던 소액주주들은 미처 주식을 처분할 틈도 없이 휴지조각을 떠안는 신세가 됐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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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축은행, 증시에서도 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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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과 솔로몬, 한국에 이어 진흥과 서울저축은행마저 상장폐지됨에 따라 이제 유가증권시장에서 저축은행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들 저축은행들이 증시에서 퇴출될 정도로 부실이 커지는 동안 내부통제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금융감독당국의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저축은행 부실의 일차적인 원인은 대주주와 경영진에 있지만 금융감독당국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낙하산으로 내려가 바람막이 역할만 = 상장폐지된 저축은행은 상근 감사와 사외이사 등 형식적으로는 그럴듯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갖춰놓고 있었다. 이중 상당수는 감사원과 금융감독원 등 정부부처와 감독기관 고위인사들로 채워졌지만 저축은행 불법·부실경영은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진흥저축은행의 경우 모회사인 한국저축은행 부실문제가 불거질 때까지 정현조 전 감사원 고위공무원이 감사를 맡았다. 한국저축은행도 2009년 8월부터 신재극 전 감사교육원 부장이 상근 감사위원로 근무했다. 전임자는 김기섭 전 금감원 부국장이었다. 이성로 전 금감원 국장, 임영철 전 서울고법 판사는 이 저축은행의 사외이사로 참여했다.

<전국저축은행비대위 회원들이 지난 5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 앞에서 예금자보호법 엄정한 해석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솔로몬저축은행의 사외이사진은 더 화려하다. 장태평 전 농식품부 장관, 강상백 전 금감원 총괄부원장보. 문원경 전 행안부 차관 등이 사외이사를 지냈고, 김강현 전 금감원 팀장과 윤익상 전 금감원 부국장 등 금감원 출신들이 이어가며 감사로 근무했다.
제일저축은행에는 이종남 전 감사원장, 김창섭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이국희 전 감사원 공무원이 사외이사를, 김상화 전 금감원 팀장이 감사를 지냈다.
이처럼 고위관료들이 감사와 사외이사로 있었지만 이사회에서 중요한 안건이 부결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감독기관과 정부부처 출신들이 낙하산으로 내려가 바람막이 역할만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제 터진 후 '문제있다'는 회계법인 = 저축은행 부실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야 문제를 지적하는 회계법인들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안진회계법인은 솔로몬저축은행에 대해 3년 연속 '적정'하다고 해놓고는 올 6월 결산에서야 의견거절하며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9월 서울저축은행의 2011회계연도(2011년7월~2012년6월) 결산 회계처리에 대해 '적정의견'을 냈다가 이달 12일 '의견거절'로 정정하는 일도 있었다. 또 자산건전성을 재분류, 당기순손실과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 기본적인 지표도 다시 공시했다.
이와 관련 안진회계법인 관계자는 "예금보험공사 검사과정에서 일부 자산에 대한 건전성분류가 수정됐고, 모회사인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변화가 있어 이를 반영하느라 감사의견을 수정 제시한 것"이라며 "감사과정에 잘못은 없다"고 설명했다.
진흥저축은행 회계감사를 맡았던 한영회계법인은 지난해까지도 '적정'의견을 제시하며 회계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부실 문제가 불거진 올 6월에서야 '계속기업으로서 존속능력이 의심스럽다'며 '의견거절'했다. 한국저축은행에 대해서도 지난해6월까지 '적정' 의견을 제시하다가 12월에서야 '기업존속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일저축은행 회계감사를 맡은 신한회계법인도 적정의견을 내다가 영업정지 직전에서야 의견거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시로 말바꾼 금융당국 = 저축은행 부실의 원인이 됐던 대규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을 허용해주는 등 견제장치 없이 규제를 풀어준 정부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금융감독당국의 책임은 더 크다.
금융당국은 특히 저축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시로 말을 바꿔 고객과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하반기 대대적인 경영진단을 벌여 제일과 토마토 등 7개 저축은행을 영업정지시켰다. 당시 솔로몬과 한국, 미래저축은행 등도 부실이 심각했지만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했다. 유상증자와 사옥매각 등 자구계획을 통해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금융당국은 '유상증자에 필요한 자금력은 충분한지, 자산 매각 계약이 실제 이뤄졌는지 등을 확인했다'며 대부분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시장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자구계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추가점검 과정에서 부실이 더욱 커지면서 이들 저축은행들도 문을 닫았다. 반년 넘게 시간만 끌어버린 결과가 됐다.
당시에도 금융당국은 '앞으로는 추가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며 계열저축은행은 독자적으로 생존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반년도 안돼 한국계열인 진흥과 경기는 자본잠식상태에 들어갔고 결국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정리절차를 밟고 있다. 당국의 말을 믿었던 소액주주들은 미처 주식을 처분할 틈도 없이 휴지조각을 떠안는 신세가 됐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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