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성공회대 교수/사회학
2011년 봄에 대학가의 깨어 있는 젊은이들은 여야 정치인들에게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촛불 집회를 열었다. 순식간에 '반값 등록금'은 모든 국민이 합의하는 정책 목표가 되었다. 젊은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당은 물론 교과부도 대학 등록금을 인하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 만들어지고 집행되는 최초의 교육 정책이라고 표현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교과부는 2012년부터 대학이 등록금을 해마다 5% 정도 인하할 것을 종용한다. 등록금 인하율과 졸업생의 취업률 지표가 좋지 않으면 순식간에 엉터리 대학으로 발표된다. 이와 동시에 정부의 각종 재정지원이 중단되고 학생들은 학자금 융자를 받지 못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학생이 기피하는 대학은 퇴출될 수밖에 없다. 물론 평가 기준에는 재단이 대학에 들여놓는 전입금이나 교수 충원율도 들어가 있지만 이러한 지표는 대부분의 사립대학이 비슷한 처지이니 옥석이 쉽게 가려지지 않는다. 대학 경영자들은 각종 수단을 동원해 등록금 인하율을 정부 가이드라인에 맞춘다.
결국 인위적 조작이 어려운 취업률이 대학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가장 큰 변별력을 가질 것이다. 물론 예술계 대학에서는 맹렬한 반발을 하고 있고 일부 대학들은 자체 예산을 들여 졸업생의 건강보험료를 지불해가며 구직자를 취업자로 위장하는 꼼수를 부린다.
명문대도 아니고 정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만큼 재단이 튼튼하지도 않은 대부분의 사립대가 실질적으로 고등교육의 기반을 형성한다. 퇴출되지 않으려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대학은 취업을 지원하는 조직과 프로그램을 만들고 강의도 신설하며 교수 개인의 취업 소개 실적도 따진다.
적정한 대학 진학률의 책정도 중요
그러나 대학이 아무리 취업에 정성을 기울여도 원천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결국 기업체 인사 담당자에게 각인되어 있지 않은 비명문대나 지방대의 취업률은 곧 한계에 도달한다.
이러한 경로를 거쳐 부실 대학을 퇴출시키려는 교육개혁론자들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겠지만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게 발생한다. 출산율 저하로 고교 졸업생은 계속 줄어드니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도 늘어날 것이다.
고등교육에 관심을 가진 논객들은 김영삼 정권 시절에 대학 설립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었을 때부터 이런 사태를 우려했다. 그러나 교육관료, 사학재단, 지역 정계 인사로 구성된 이익연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대학 구조조정 비용을 시민에게 부담시키는 사태가 와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다.
현재 교육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질서를 유지하며 대학조직을 축소 조정하는 일이다. 정책 당국도 어설프게 국제 경쟁력이나 시장원리를 원용하며 도망가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반값 등록금으로 졸업을 해도 취업 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제로는 반값 등록금만이 아니라 적정한 대학 진학률의 책정도 중요하다. 대학을 나오면 사회적으로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어야 하며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도 크게 손해볼 일은 없어야 한다. 즉, 대학이 사회적으로 수행해야 할 역할과 기능에 대해 정면으로 논의해야 한다.
정책 입안자가 이와 같은 거시적 문제를 회피하고 얄팍한 인기를 따라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입시제도 개선이나 반값등록금에 집착하면 취업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대선후보, 직업학교·평생교육기관 찾아야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은 하지만 대학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는 것이 현재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나선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의 공통점이다. 모두 대학 정책은 잘해야 본전이니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세 후보가 대학의 거품을 빼고 개선책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을 가지고 정책 토론에 나서면 유권자들도 재미있어 할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시민에게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같이 고생하자는 호소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대나 직업학교를 찾아 실용적 기술을 익히는 젊은이들을 격려하거나 평생교육 기관을 찾아 제2의 인생을 같이 찾아보자고 제안하는 '트인 대선후보'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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