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의 도덕적 책무
신명식 정치담당 편집위원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무산된 후 정치권이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정치적 흥정’의 결과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가운데 여야 각 당에서 뱉어내는 말은 매우 원색적이다.
정치권은 교묘한 흥정을 통해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를 보는 국민들의 눈은 곱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주당측 감표위원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개표를 진행하지 않은 이만섭 국회의장의 처신은 ‘위험한 줄타기’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혹시 내부반란표가 나올 것을 두려워해 투표함을 열지 않은 한나라당의 ‘비겁함’은 거대야당답지 못하다. 민주당이 소속의원의 단속을 위해 투표에 참가하지 않고 일제히 퇴장한 것은 과연 그들이 요즘 당의 쇄신을 진정으로 추진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총무는 14일부터 임시국회를 열어 새해 예산안을 다루기로 했다. 10일부터는 계수조정소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시일이 촉박하여 소위원회에서 여야가 나눠먹기로 끝낼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112조원이나 되는 새해 예산과 수십개의 민생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날치기 수준’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많다. 결국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국민만 불쌍하다.
프랑스 베레고부아 전총리 자살 사건이 타산지석
당장 검찰이야 총장이 국회에 출석하는 전례를 남기지 않았고, 탄핵소추안이 무산되어 안도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검찰의 위상과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검찰총장이 “의원들의 면책특권 제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한 것만으로도 그가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현 정권 들어 최대의 비리의혹사건인 ‘3대게이트’를 검찰이 축소·은폐 수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검찰총장의 동생이 이런 사건에 연루되어 있으니 말이다. 법무부 고위간부가 진승현씨로부터 골프가방에 든 1억원을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부패사건의 냄새를 풍긴다.
지도층의 덕목에서 도덕성이 ‘법’보다 앞서야 한다는 주문은 우리 사회 지도층의 낯이 워낙 두껍기 때문에 사치스럽기조차 하다.
그래서 좀 오래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프랑스의 베레고부아 전 총리의 자살사건은 우리나라의 자칭 지도층들이 교훈으로 삼을 만한 일이 될 듯하다. 93년 5월 1일 그는 자택에서 권총자살을 했다. 베레고부아는 하원의원시절 파리에 30평짜리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대통령의 친구이자 사업가로부터 100만프랑(1억5000만원)을 무이자로 빌려 썼다는 이유로 언론으로부터 부패정치인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같은 사실을 유명한 폭로전문 주간지인 ‘르 카나르 앙셰네’가 폭로했다. 그는 빌린 돈의 절반을 92년말에 고가구와 고서로 갚았다고 해명했으나 언론의 집요한 공격을 완화시킬 수는 없었다. 우크라이나 이민의 아들로서 철도원 출신의 베레고부아는 독학으로 총리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한달 여전까지 총리를 지낸 그가 부패정치인이라는 비난에 대응해 명예를 회복한 방법은 ‘자살’뿐이었다.
이에 대해 르 카나르 앙셰네는 당당하게 주장했다. “그의 죽음은 당혹스럽다. 그러나 우리는 직업상의 오류나 도덕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다. 본지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언론의 자유를 위해 계속 봉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베레고부아나 르 카나르 앙셰네나 공히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공격이고, 방어였다.
검찰 왜 이꼴이 됐는지 DJ는 성찰해 결단 내려야
우리의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에게 이런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나라든 사회지도층에게 도덕성은 생명과 같은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검찰의 총수가 도덕성을 잃었고, 자기 조직에서도 도덕성을 의심받고 있는데, 정작 초당적 정치를 하겠다며 집권당 총재직을 사퇴한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사태를 외면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검찰총장의 임기가 보장돼야 정치적 중립도 가능하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 헌정사상 탄핵소추안은 모두 8번 있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 6번이나 되며, 모두 검찰에 집중됐다. 김태정 전 검찰총장이 두차례, 박순용 전 총장이 두차례, 신승남 현 총장이 두차례(차장시절 한차례 포함) 탄핵소추를 당했다.
지난해 11월 검찰총장과 차장의 탄핵소추안이 논란이 됐을 때 일선검사들이 정치공세에 반발 “집단행동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왜 검찰이 이 모양이 됐느냐”며 자탄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검찰이 왜 이 꼴이 됐는지 김대중 대통령이 깊이 생각하고, 결단을 내려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 당사자가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더욱 다행스러울 것이다.
신명식 정치담당 편집위원
신명식 정치담당 편집위원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무산된 후 정치권이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정치적 흥정’의 결과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가운데 여야 각 당에서 뱉어내는 말은 매우 원색적이다.
정치권은 교묘한 흥정을 통해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를 보는 국민들의 눈은 곱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주당측 감표위원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개표를 진행하지 않은 이만섭 국회의장의 처신은 ‘위험한 줄타기’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혹시 내부반란표가 나올 것을 두려워해 투표함을 열지 않은 한나라당의 ‘비겁함’은 거대야당답지 못하다. 민주당이 소속의원의 단속을 위해 투표에 참가하지 않고 일제히 퇴장한 것은 과연 그들이 요즘 당의 쇄신을 진정으로 추진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총무는 14일부터 임시국회를 열어 새해 예산안을 다루기로 했다. 10일부터는 계수조정소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시일이 촉박하여 소위원회에서 여야가 나눠먹기로 끝낼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112조원이나 되는 새해 예산과 수십개의 민생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날치기 수준’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많다. 결국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국민만 불쌍하다.
프랑스 베레고부아 전총리 자살 사건이 타산지석
당장 검찰이야 총장이 국회에 출석하는 전례를 남기지 않았고, 탄핵소추안이 무산되어 안도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검찰의 위상과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검찰총장이 “의원들의 면책특권 제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한 것만으로도 그가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현 정권 들어 최대의 비리의혹사건인 ‘3대게이트’를 검찰이 축소·은폐 수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검찰총장의 동생이 이런 사건에 연루되어 있으니 말이다. 법무부 고위간부가 진승현씨로부터 골프가방에 든 1억원을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부패사건의 냄새를 풍긴다.
지도층의 덕목에서 도덕성이 ‘법’보다 앞서야 한다는 주문은 우리 사회 지도층의 낯이 워낙 두껍기 때문에 사치스럽기조차 하다.
그래서 좀 오래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프랑스의 베레고부아 전 총리의 자살사건은 우리나라의 자칭 지도층들이 교훈으로 삼을 만한 일이 될 듯하다. 93년 5월 1일 그는 자택에서 권총자살을 했다. 베레고부아는 하원의원시절 파리에 30평짜리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대통령의 친구이자 사업가로부터 100만프랑(1억5000만원)을 무이자로 빌려 썼다는 이유로 언론으로부터 부패정치인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같은 사실을 유명한 폭로전문 주간지인 ‘르 카나르 앙셰네’가 폭로했다. 그는 빌린 돈의 절반을 92년말에 고가구와 고서로 갚았다고 해명했으나 언론의 집요한 공격을 완화시킬 수는 없었다. 우크라이나 이민의 아들로서 철도원 출신의 베레고부아는 독학으로 총리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한달 여전까지 총리를 지낸 그가 부패정치인이라는 비난에 대응해 명예를 회복한 방법은 ‘자살’뿐이었다.
이에 대해 르 카나르 앙셰네는 당당하게 주장했다. “그의 죽음은 당혹스럽다. 그러나 우리는 직업상의 오류나 도덕적인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다. 본지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언론의 자유를 위해 계속 봉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베레고부아나 르 카나르 앙셰네나 공히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공격이고, 방어였다.
검찰 왜 이꼴이 됐는지 DJ는 성찰해 결단 내려야
우리의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에게 이런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나라든 사회지도층에게 도덕성은 생명과 같은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검찰의 총수가 도덕성을 잃었고, 자기 조직에서도 도덕성을 의심받고 있는데, 정작 초당적 정치를 하겠다며 집권당 총재직을 사퇴한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사태를 외면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검찰총장의 임기가 보장돼야 정치적 중립도 가능하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 헌정사상 탄핵소추안은 모두 8번 있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 6번이나 되며, 모두 검찰에 집중됐다. 김태정 전 검찰총장이 두차례, 박순용 전 총장이 두차례, 신승남 현 총장이 두차례(차장시절 한차례 포함) 탄핵소추를 당했다.
지난해 11월 검찰총장과 차장의 탄핵소추안이 논란이 됐을 때 일선검사들이 정치공세에 반발 “집단행동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왜 검찰이 이 모양이 됐느냐”며 자탄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검찰이 왜 이 꼴이 됐는지 김대중 대통령이 깊이 생각하고, 결단을 내려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 당사자가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더욱 다행스러울 것이다.
신명식 정치담당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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