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득/서울 성동구청장
'교통이 빈번하고 장래의 대발전이 예상되는 곳'. 1937년 한 신문에서 표현한 왕십리다. 근 한세기 전부터 왕십리 전성시대는 이미 예고돼 있었. '왕십리'란 이름이 무학대사가 조선왕조 터를 잡을 때 '10리만 더 가라'는 늙은 농부의 말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이젠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왕십리(往十里)라는 한자처럼 '열 십(十)자의 정중앙에서 어디든 갈(往) 수 있는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라면 왕십리의 긴 역사를 대표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가 조해일의 1974년 작 '왕십리'에는 남자 주인공이 1960년대 왕십리를 추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왕십리 역 광장은 전차의 종점이 있던 곳이다 … 동대문에서 청계천 변을 끼고 달려 나와 뚝섬까지 이르는, 시에서 운행하던 성동의 명물 중 하나였던 단선의 궤도차가 역 앞 광장 한 복판을 통과했다…'.
소설을 나지막이 읊어보니 그 시절 왕십리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넓게 펼쳐진 미나리밭, 시내 각처로 나가는 전차와 뚝섬 광나루를 다니던 기동차가 분주하게 오가며 먼지를 풀썩이던 왕십리는 언제나 활기찬 도시였다.
'ITX-청춘열차'의 왕십리역 중간정차를 제안하며
또 하나 떠오르는 1970년대 왕십리의 익숙한 풍경은 논산훈련소로 떠나던 입영열차 기적소리다. 입영열차에 몸을 싣고 차창 밖 가족과 연인을 뒤로 한 채 눈물을 훔치던 청춘들에게 왕십리는 그야말로 '눈물의 이별 정거장'이기도 했다. 하루에도 수백명씩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으로 붐비던 왕십리는 예나 지금이나 꼭 거쳐야 하는 교통 요충지다.
이러한 긴 역사를 가진 교통의 요충지 왕십리의 더 큰 발전을 위해 춘천∼용산을 운행하는 'ITX-청춘열차'의 왕십리역 중간정차를 제안하려한다. 용산역과 청량리역에만 정차해서는 서울 동부권과 강남권, 경기 동·남부 이용객들의 환승 편의성을 모두 충족시키기 어렵다. 평일 통근시간대 ITX-청춘열차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왕십리에 정차한다면 직장인들에겐 환승으로 인한 시간 절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주말 여행지로 가장 많이 손꼽히는 춘천이나 강촌 등 경춘선 여행지들에는 열차를 타고 더 많은 여행객들이 발걸음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십리가 여러 노선과 연결되는 만큼 청춘열차와 연계된 관광 상품도 다양한 노선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이달 초 9년이 넘는 공사 끝에 왕십리에서 선릉까지 연장된 분당선이 개통됐다. 첫 열차를 시승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2호선을 타고 돌아가야 했던 강남도 10분이면 갈 수 있다. 특히 분당선 개통으로 왕십리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철도 노선 4개가 교차하는(quadruple) 역세권이 됐다. ITX-청춘열차까지 정차하게 된다면 왕십리는 서울시내 동서남북과 경기지역 수도권, 강원도까지 어디로든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될 것이다.
서울 부도심으로서 최적의 입지와 긴 역사가 축적된 교통 기반시설을 갖춘 왕십리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이다. 성동구는 그동안 '왕십리 지도'를 바꾸기 위해 힘써왔다.
한강과 청계천 중랑천을 따라 3개 자전거 도로가
2004년에는 옛 미군부대 자리에 구청 구의회 교육청 등을 한 곳에 모아 종합행정마을을 만들었고 2008년엔 염원하던 왕십리 민자역사가 완공됐다. 이듬해 한양대부터 민자역사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젊음의 거리로 조성하고 역사 앞에 왕십리광장을 열어 벌써 4년째 시민들 사랑을 받고 있다.
왕십리의 발전 가능성은 아직도 끝이 없다. 한강과 청계천 중랑천을 따라 3개 자전거 도로가 맞물려 있고 강변북로와 내부순환도로 올림픽도로로의 접근성도 뛰어나다.
분당선 '서울숲역'의 신설로 왕십리를 거쳐 주말마다 서울숲을 찾는 시민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고 왕십리 뉴타운 완성도 머지 않았다. 왕십리 전성시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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