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섭/농촌진흥청 도시농업연구팀장
2008년부터 슬슬 불기 시작한 도시농사 열풍이 요즘 대단히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주말이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아내나 남편, 자녀들과 같이 텃밭이나 주말농장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주말농장이든 동네 텃밭이든 내 텃밭이 있는 가정도 있지만 그럴 여가나 환경이 여의치 않는 사람들은 텃밭상자로 생활공간에서 농사활동을 한다. 집안에 있는 다양한 용기나 자재를 이용해 싹 채소도 기르고 베란다에 수경재배 시설을 해 채소를 기르며 가족들의 비타민 급원을 해소하는 알뜰 주부도 많아지고 있다.
농사의 기본이 국민의 먹을거리 생산인 만큼 크게 이상하진 않지만 사실 식량생산은 도시농업이 아니라 농촌농업의 몫이다. 도시농업은 '농사를 짓되 그 목적이 여가, 학습, 취미, 체험 등을 말한다'고 도시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도 정하고 있는 이유도 따로 있다. 이것은 도시농업이 자칫 농촌농업의 활력을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그렇지 않아도 한미, 한중 FTA에 힘들어 하는 농업농촌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농업인 95%가 바로 먹을거리 생산
그런데 최근 도시농업 현황을 보면 95%가 바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즉 서울의 도시농부 2000명에게 물어봤더니 94.5%가 고추와 상추를 기르고 있어 대부분 도시농부들이 먹을거리 생산에 치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베란다나 옥상에 자연학습장도 만들고 사계절 꽃이나 잎, 열매를 볼 수 있는 정원을 만드는 등 도시원예 분야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긴 하지만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현재 전 세계 8억명이 도시농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들 중 1/3만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나머지 60% 이상은 교육, 환경, 일자리, 공동체 회복, 나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된다. 이같은 도시농업은 농업의 가치와 역할을 확대시킨다. 농업의 기본 역할이 국민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산업이지만 농사가 도시를 만나면서 그 역할이 훨씬 커졌다.
즉 식량 생산은 기본이고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에 대한 생명교육의 수단,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심신의 건강 유지, 다양한 환자들에 대한 치료효과, 개인화되어 있는 도시민들에게 공동체 의식의 회복, 나비나 풀씨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한 건강한 도시 생태계 유지 등 도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매우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농작물을 포함한 식물은 우리 인간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즉 우린 생존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산소를 마시는 일의 반복이지만 식물은 반대로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준다.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끊임없이 음이온을 발산해주고 증산활동을 통해 온습도를 조절해 주며 고유 향기까지 아낌없이 제공해 준다. 그러니 우린 식물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극히 나약한 존재이다.
식량 생산을 넘어 자연과 공존하고 교감하기
그래서 미래 도시농업의 최종 목적은 먹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이를 넘어 자연과 공존하거나 교감하는데 있다. 농촌진흥청 도시농업연구팀에서 우리나라 도시농업연구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면서 많은 고민과 숙의 끝에 비전을 '식물-인간-환경이 공존하는 도시농업 모델 개발'로 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도시농업이 농촌농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겠지만 도시농업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시각도 이젠 조금씩 바꿔야 한다. 도시농업이 단순한 먹을거리 중심에서 먹을거리는 물론 볼거리나 느낄 거리, 체험이나 교육거리 등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돼야 한다.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지친 도시민들에게 녹색이 주는 쾌적함, 생명이 주는 희망, 사랑과 배려, 자발적인 참여정신이 도시농업을 통해 하나씩하나씩 싹터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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