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원의 세상탐사] 두 후보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

지역내일 2012-11-23

언론인/동국대 신방과 겸임교수

일곱 나라가 중국 제패를 다툰 전국시대(BC 475~221) 말기의 일이다.

조(趙)나라 혜문왕에게는 인상여(藺相如)라는 재상과 염파(廉頗)라는 장군이 있었다. 인상여는 내시 집안의 일을 돌보는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전격 발탁돼 당시의 최강국 진(秦)나라를 상대로 혁혁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 공으로 가장 높은 벼슬인 상상(上相)에 오른다.

반면 염파는 명문가 출신에, 젊어서부터 전장을 누비며 조국을 지킨 명장이었다. 일흔이 넘어서도 근력을 과시하느라 한끼 식사로 밥 한말에 고기 열근을 먹었다는 강골이었다.

그런 염파이니, 벼락출세해 제 윗자리에 오른 인상여가 탐탁할 리 없었다. 그래서 "세 치 혀만 놀리는 놈 밑에서 어찌 지내겠는가. 언제고 만나기만 하면 죽이고야 말리라"라고 큰소리를 쳤다.

소문을 들은 인상여는 늘 피해다녔고, 하루는 길거리에서 염파의 행차와 마주치자 황급히 뒷골목으로 숨어들었다. 이에 부하들이 격분하자 인상여는 조용히 타일렀다. "진나라의 왕도 두려워하지 않은 내가 어찌 염파가 무서워서 피하겠는가, 만일 우리 두 사람이 싸운다면 진나라는 절호의 기회라 믿고 바로 우리 조나라를 칠 것이다, 내게는 사사로운 원수보다 나라가 더욱 소중하다"고.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염파는 웃옷을 벗은 채 스스로 곤장을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인상여는 황급히 염파를 일으켜 세운 뒤 힘을 모아 나라를 지키자고 권했다. 염파는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대감과 생사를 같이하는 벗이 되겠소. 비록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 마음만은 변치 않겠소"라고 다짐했다. '상대를 위해서라면 목이 잘린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우정과 신뢰'를 뜻하는 사자성어 문경지교(刎頸之交)를 탄생케 한 고사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마음 변하지 않아"

2012년 늦가을 이 해묵은 옛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도는 까닭은, 야권 후보단일화 과정을 지켜보는 답답함, 안타까움 때문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지난 6일 국민 앞에 7가지 항목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두 후보는 '엄중한 시대상황에 대한 인식, 고단한 국민의 삶과 형편, 정치 혁신에 관한 국민의 요구에 인식을 함께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단일화를 하겠다면서 그 시한을 '후보 등록 이전까지'로 못 박았다. '단일화를 추진하는 데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지 않고 국민의 뜻만 보고 가겠다'고도 약속했다. 정권 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에게는 그야말로 복음(福音)이나 다름없는 합의였다.

그런데 그 뒤 전개된 양상은 약속과 달랐다. 국민의 뜻만 보고 가기는커녕 유리한 선정방식을 서로 고집하느라 단일화에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상대를 비난하는 목소리 또한 적잖게 터져 나와, 막판 단일화를 이루더라도 '+α'의 시너지 효과를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퍼질 지경이다.

단일화 방식을 정하지 못한 바람에 양 후보는 이를 두고 TV토론에서 티격태격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고, 다음날 급히 가진 단독회담에서조차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제 '운명의 주말'이 다가왔다. 이틀 뒤면 '12·19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의 면면이 확정된다. 그전에 단일화라는 기적을 이루면 더욱 좋은 일이고, 아니더라도 선거 전에는 단일화가 꼭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은 지레 절망에 빠져들고 미래를 포기할 터이다.

문과 안은 인상여·염파 될 생각 없나

자신보다 나라를 우선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인상여가 어찌 염파를 피해 뒷골목으로 숨었겠는가. 인상여의 충심이 부족했다면 어떻게 염파를 감동시켜 문경지교를 맺을 수 있었겠는가.

옛 시인은 두 사람의 우정을 두고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수레 몰아 골목길로 피한 인상여의 도량은 참으로 크며/ 웃옷 벗고 죄를 청한 염파의 뜻 역시 웅장했도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모두가 제 세력 위해 날뛰니/ 그 누가 나라 생각하는 자 있으리오."

문재인 후보여, 안철수 후보여. 정녕 이 시대의 인상여가 될 생각은 없는가. 그래서 상대방을 염파로 떠받들어 이 국민, 이 나라를 위해 함께 나아가지 않으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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