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포럼을 제안한다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경제학
‘세계…포럼’이 유행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과 ‘세계사회포럼’이 동시에 뉴욕과 브라질 Porto Alegre에서 열렸다. 전자는 유명한 정치인 경제인의 모임이다. 후자는 전자를 비평하는 NGO와 제3세계 정치·사회지도자들의 모임이었다.
전자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세계화의 표방이며 후자는 ‘세계적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는, 즉 전자를 수정하는 입장이다. 전자는 ‘강자의 모임’이라고 이해되고 있고 후자는 ‘약자의 모임’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왜 프랑스 정치의 거물들이 이러한 ‘약자의 모임’에 나타났는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가들의 프랑스 내의 소시민표를 얻기 위한 인기전술이라고 본다.
필자는 오히려 프랑스인들이 ‘세계문화포럼’(World Culture Forum)의 주도권을 잡지 않을까 우려했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이 ‘세계문화포럼’의 주도권을 갖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이 글을 쓴다. 왜 ‘세계문화포럼’이 필요하며 왜 한국이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가?
세계화는 무엇보다도 경제위주의 세계화를 말한다. 경제위주, 즉 해외투자에 기인하는 세계화는 고용효과나 소득효과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 가치관 교육 문화 행정 등등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더욱이 정보·통신기술과 마케팅의 역할은 지대하다. 소비자(우리)는 유행에 빠지고 의식주 및 일상생활이 기본적으로 바뀐다. 탈자국현상이 일어난다. 경제력에 의하여 개개인의 의식, 가치관이 달라지고 자국문화를 버리게 된다. 이미 성격 생활관 태도는 외국인이 되어버린다.
자기의 뿌리를 밑에 깐 세계화 추구
즉 표준화된 인간, 단일화된 인간이 되고 만다. ‘나오미 클라인’은 경제적 세계화는 로고(logo)가 필요 없는 현상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베크(Beck)는 ‘세계시민’‘세계문화인’이 되어버린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경제력이 강한 나라의 문화가 경제력이 약한 나라의 문화를 퇴치시키고 전자의 문화만이 지배·존속하게 된다. ‘맥도날드화’ 또는 ‘코카콜라화’ 현상이라고 부른다.
‘베버’가 생각한 자본주의에 필요한 합리적 인간은 결국 이와 같은 탈문화된 표준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과연 이러한 탈문화된 세계화를 희구할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개개 국가, 민족의 주관성(문화의 뿌리), 즉 종교 신념 가치관 윤리 도덕이 객관적으로 인증받지 않으면, 또는 다른 세력(제3자)에 의해서 지배되면 ‘갈등’이 생긴다. 즉 ‘주관성의 객관화’가 절실하다. ‘헌팅턴’의 이론이 불행스럽게도 문화 문명의 수직적인 지배관계를 전제한 것이었다.
바꿔서 말한다면 수천년동안 살아온 한국문화가 어떠한 세계화의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무나 불행한 일이 아닌가. 일제가 우리를 지배하고 신사참배 창씨개명 한글사용금지 등등을 강요했을 때 우리의 반발은 더욱 거셌다. 문화를 표준화, 단일화, 나아가서 삭제하려는 노력은 이 노력의 배 이상의 반발력을 초래하는 물리학법칙이 있다. 세계화 속에서 ‘다양성’은 불가결한 인류문명의 원칙이다.
그런데 ‘세계경제포럼’은 1971년 스위스의 시골 ‘다보스’였다. 스위스는 작은 나라이지만 다민족 다문화의 나라이다. 네 가지의 언어를 사용한다. 세계화 국제화에 선두에 서있으며 그들은 ‘스위스’라는 문화와 문명을 고수하고 있다.
우선 다보스(Davos)라는 조그만 시골이름이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얼마나 현명한 세계화 전략인가?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방)문화 슬기 환경의 특색에 부착해서 세계화를 추진하는 작은 나라의 세계화 전략이 집요했다는 것이다. 스위스는 국제회의를 하는 나라, 국제은행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으나 유명한 다국적 기업들(노바티스 네슬레, 뫼벤피크, 신들러 등등)의 고향이다. 이렇게 작은 나라,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은 나라이며 지리환경이 더욱 나쁜 나라이지만 자기의 뿌리를 밑에 깐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 주도권 잡을 조건 갖춰
동북아시아의 중심국, 오랜 문화와 주관성을 자랑하는 한국은 - 일본이나, 중국은 세계문화포럼 주도권을 잡을 수 없는 입장 - 너무나 좋은 입장이다.
그러고 현재 시행되고 경제주도의 세계화에 건설적으로 동반할 수 있는 ‘문화포럼’에 반대할 나라는 전혀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방방곡곡 문화제가 산발하고 있다. 내용은 고사하고도 질적인 문화제가 있어야 한다고 이미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다.
산발된 노력이 집결해야 한다고 본다. 얼마 있지 않으면 월드컵이 거행된다. 스포츠 행사자체가 ‘문화’행사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더욱 폭넓게 세계 모든 문화가 전시되고 개개문화가 보존, 발전될 수 있는 철학이 뒷받침하는 ‘세계문화포럼’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경제학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경제학
‘세계…포럼’이 유행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과 ‘세계사회포럼’이 동시에 뉴욕과 브라질 Porto Alegre에서 열렸다. 전자는 유명한 정치인 경제인의 모임이다. 후자는 전자를 비평하는 NGO와 제3세계 정치·사회지도자들의 모임이었다.
전자는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세계화의 표방이며 후자는 ‘세계적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는, 즉 전자를 수정하는 입장이다. 전자는 ‘강자의 모임’이라고 이해되고 있고 후자는 ‘약자의 모임’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왜 프랑스 정치의 거물들이 이러한 ‘약자의 모임’에 나타났는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가들의 프랑스 내의 소시민표를 얻기 위한 인기전술이라고 본다.
필자는 오히려 프랑스인들이 ‘세계문화포럼’(World Culture Forum)의 주도권을 잡지 않을까 우려했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이 ‘세계문화포럼’의 주도권을 갖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이 글을 쓴다. 왜 ‘세계문화포럼’이 필요하며 왜 한국이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가?
세계화는 무엇보다도 경제위주의 세계화를 말한다. 경제위주, 즉 해외투자에 기인하는 세계화는 고용효과나 소득효과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 가치관 교육 문화 행정 등등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더욱이 정보·통신기술과 마케팅의 역할은 지대하다. 소비자(우리)는 유행에 빠지고 의식주 및 일상생활이 기본적으로 바뀐다. 탈자국현상이 일어난다. 경제력에 의하여 개개인의 의식, 가치관이 달라지고 자국문화를 버리게 된다. 이미 성격 생활관 태도는 외국인이 되어버린다.
자기의 뿌리를 밑에 깐 세계화 추구
즉 표준화된 인간, 단일화된 인간이 되고 만다. ‘나오미 클라인’은 경제적 세계화는 로고(logo)가 필요 없는 현상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베크(Beck)는 ‘세계시민’‘세계문화인’이 되어버린다고 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경제력이 강한 나라의 문화가 경제력이 약한 나라의 문화를 퇴치시키고 전자의 문화만이 지배·존속하게 된다. ‘맥도날드화’ 또는 ‘코카콜라화’ 현상이라고 부른다.
‘베버’가 생각한 자본주의에 필요한 합리적 인간은 결국 이와 같은 탈문화된 표준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과연 이러한 탈문화된 세계화를 희구할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개개 국가, 민족의 주관성(문화의 뿌리), 즉 종교 신념 가치관 윤리 도덕이 객관적으로 인증받지 않으면, 또는 다른 세력(제3자)에 의해서 지배되면 ‘갈등’이 생긴다. 즉 ‘주관성의 객관화’가 절실하다. ‘헌팅턴’의 이론이 불행스럽게도 문화 문명의 수직적인 지배관계를 전제한 것이었다.
바꿔서 말한다면 수천년동안 살아온 한국문화가 어떠한 세계화의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무나 불행한 일이 아닌가. 일제가 우리를 지배하고 신사참배 창씨개명 한글사용금지 등등을 강요했을 때 우리의 반발은 더욱 거셌다. 문화를 표준화, 단일화, 나아가서 삭제하려는 노력은 이 노력의 배 이상의 반발력을 초래하는 물리학법칙이 있다. 세계화 속에서 ‘다양성’은 불가결한 인류문명의 원칙이다.
그런데 ‘세계경제포럼’은 1971년 스위스의 시골 ‘다보스’였다. 스위스는 작은 나라이지만 다민족 다문화의 나라이다. 네 가지의 언어를 사용한다. 세계화 국제화에 선두에 서있으며 그들은 ‘스위스’라는 문화와 문명을 고수하고 있다.
우선 다보스(Davos)라는 조그만 시골이름이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얼마나 현명한 세계화 전략인가?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방)문화 슬기 환경의 특색에 부착해서 세계화를 추진하는 작은 나라의 세계화 전략이 집요했다는 것이다. 스위스는 국제회의를 하는 나라, 국제은행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으나 유명한 다국적 기업들(노바티스 네슬레, 뫼벤피크, 신들러 등등)의 고향이다. 이렇게 작은 나라,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은 나라이며 지리환경이 더욱 나쁜 나라이지만 자기의 뿌리를 밑에 깐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 주도권 잡을 조건 갖춰
동북아시아의 중심국, 오랜 문화와 주관성을 자랑하는 한국은 - 일본이나, 중국은 세계문화포럼 주도권을 잡을 수 없는 입장 - 너무나 좋은 입장이다.
그러고 현재 시행되고 경제주도의 세계화에 건설적으로 동반할 수 있는 ‘문화포럼’에 반대할 나라는 전혀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방방곡곡 문화제가 산발하고 있다. 내용은 고사하고도 질적인 문화제가 있어야 한다고 이미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다.
산발된 노력이 집결해야 한다고 본다. 얼마 있지 않으면 월드컵이 거행된다. 스포츠 행사자체가 ‘문화’행사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더욱 폭넓게 세계 모든 문화가 전시되고 개개문화가 보존, 발전될 수 있는 철학이 뒷받침하는 ‘세계문화포럼’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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