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아버지의 유산

지역내일 2013-01-02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 역사상 아주 특별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역대 대통령치고 범상한 사람이 어디 있었을까마는 '박근혜 대통령'에겐 아주 특별한 수식어가 붙을 수밖에 없다. 그건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아버지를 따라 딸이 최고 권력자가 되는, 즉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여성 대통령은 장차 선출될 개연성이 높지만, 아버지를 따라 그 자녀가 청와대의 주인이 되는 경우는 다시 쉽게 볼 수 없을 성싶다.

박근혜 당선인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여러 가지 유산(遺産 legacy)을 물려받았다. 유언에 의한 부동산 또는 동산 같은 재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 아버지가 18년 동안 통치하면서 한국 역사에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남긴 유무형의 일들이 바로 그 유산이다. 또 청소년기 16년 동안 청와대에 살면서 아버지가 정치하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웠던 모든 암묵적인 지식도 역시 유산이다.

특히 1974년 총탄에 어머니를 잃은 후 5년간의 퍼스트레이디 역할, 그리고 부하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불행과 국정의 대변화를 경험한 것은 박근혜 당선인의 삶의 태도와 정치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정치적 유산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판단인지 모르나 '18대 대통령 박근혜 당선'의 큰 공로자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한국경제를 일으킨 산업화의 유산에 대한 긍정적 평가, 향수, 동정 그리고 아버지 시대에 증폭된 지역감정까지 가미된 후광이 결정적 득표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박 당선인이 정치를 시작한 후 정파의 위기 때마다 '선거의 여왕'으로 당을 구출하면서 대권의 기반을 닦게 된 힘도 아버지의 유산에서 나왔고, 오랜 청와대 생활로 체화된 절제의 미덕에서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가족의 불행과 국정의 대변화 경험

그러나 박 당선인이 물려받은 유산은 선거에 도움이 됐던 긍정적인 부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5·16쿠데타 집권에서 비롯되어 정권연장을 위한 국민기본권 제한과 인권탄압으로 이어진 부정적 유산은 선거운동과정에서 이슈가 되었듯이 새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향후 5년간 동안 어느 때고 논쟁의 불길을 당길 것이다.

어제 박근혜 당선인은 새누리당 신년 인사회에서 "지나간 과거의 모든 것은 털어버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창출해 가자"고 말했다. 이게 단순한 덕담인지 마음속에 뜻을 두고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다. 박근혜 당선인이 새해 첫 화두로 던진 말 중에 국민통합을 국정 의제(議題)로 강조한 것은 아버지의 유산 처리와 관련해서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통합은 갈등을 전제로 한다.

국민통합을 위한 첫 단추가 지역갈등 해결이다. 영호남 지역감정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현상이었지만 정치적 갈등으로 증폭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 플랜이 불러낸 분열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언론은 짐짓 이번 선거결과를 보도하면서 무시했지만 영호남의 정치적 배타성은 몸이 오싹할 정도였다.

반대표 90% 이상을 던진 광주 시민이 '박근혜 대통령'을 용인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박 당선인은 대통령후보가 되기 이전부터 호남 문제에 남달리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이 박 당선인이 진정성을 통해 지역갈등의 유산을 처리할 때이다.

두번째 해결해야 할 부정적 유산이 재벌 문제 또는 경제민주화로 연결되는 빈부갈등이다. 당선인은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재벌문제는 아버지 집권 18년 동안 씨를 뿌려놓은 정경유착의 유산이다. 재벌 키우기 정책은 국가경제에 공과(功過)가 있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으로 이제 재벌기업과 그 종업원은 부유해지는 소수가 되어가고 있는 반면, 대다수 국민은 소득, 고용, 교육기회에서 빈곤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 체제에 위험한 일이다.

국민기본권 제한과 인권탄압

박근혜 당선인이 경제민주화와 빈부갈등 해결의 초석을 깐다면 아버지가 남긴 부정적 유산을 하나 더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해결할 아버지의 유산, 즉 힘으로 재벌을 통제하던 방안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정권은 짧고 재벌은 길다. 초기에 국민의 신뢰를 얻어 재벌을 압박하여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는 길 외에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오는 2월 25일 취임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원하건 원치 않건 이와 같은 아버지의 유산을 안고 5000만 국민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 지금은 당선 분위기로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버지가 남겨놓은 산업화의 유산과 억압정치의 유산은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로 '박근혜 대통령'의 초기 행동양식에 따라 국정의 성공을 좌우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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